오징어는 여러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1970~1980년대 시내 극장가 주변 노점(露店)에서는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팔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짭짤한 번데기를 비롯해 얇게 채 썬 고구마를 튀긴 고구마 과자, 삶은 달걀, 김밥, 볶음 땅콩, 사이다, 껌, 사탕 따위의 군것질거리였는데 손님들이 가장 선호한 아이템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탄불에 구워 파는 마른오징어였다.
1970~80년대 길거리 주전부리로 인기가 많았던 번데기
먹거리가 변변치 않던 그 시절 마른오징어는 서민들이 없어서 못 먹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뜨거운 불에 익힌 마른오징어를 손으로 길게 찢어 질겅질겅 씹어 먹는 그 맛은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징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짭조름하고 고소한 특유의 풍미(風味)가 침샘을 자극해 중독성이 강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른오징어의 미감(味感)은 땅콩과 한 몸이 될 때 급격히 솟구쳤다. 땅콩 한 알을 오징어살로 둘둘 말아 입속에 넣고 먹는 식이었는데 미각적 궁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노점상들은 오징어와 땅콩을 한 세트처럼 끼워 파는 경우가 많았고 행인들은 못 이기는 척 지갑을 열었다. 주로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고객이었고 호객 행위의 대상도 그들이었다. 영화관 매표소에 들리기 전 지나가던 사람들은 노점에서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샀다.
추억의 고구마 과자
극장가뿐 아니라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열차 안, 유원지, 운동회가 열리는 학교 주변, 시장통에서도 마른오징어 장수는 늘 진을 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마른오징어는 치아의 저작(咀嚼) 능력을 시험하는 딱딱한 음식의 상징과 같았다. 오징어 가공 기술이 발달한 지금처럼 반건조 오징어가 있을 리 없었고, 먹기 편하도록 말랑말랑하게 손질한 촉촉 오징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구운 마른오징어는 아주 질겼다. 어금니로 질겅질겅 씹을 때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른오징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용을 쓰면서 오징어를 씹는 행위 자체가 그저 즐겁기만 했고 입속 가득 퍼지는 짭짤하고 고소한 맛에 한없이 끌렸다.
술안주로 여전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마른오징어
먹을 것도, 웃고 즐길 것도 별로 없던 그때 마른오징어와 함께라면 그까짓 고역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마른오징어는 군것질거리를 넘어 소확행(小確幸)을 누릴 수 있는 서민들의 몇 안 되는 위안거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징어와 술안주
마른오징어는 또 어른들의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았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 때라 해거름에 허름한 노변(路邊) 주점(酒店)에 모여 앉아 마른오징어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술안주로 즐긴 오징어 요리로 오징어숙회도 빼놓을 수 없다. 오징어 한 마리를 통째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칼로 썰어 내놓는 오징어숙회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오징어 맛의 신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오징어숙회의 맛은 매콤 새콤하고 씹히는 질감은 쫄깃하면서 말랑해 부드럽다. 씹을 때 첫맛은 초장의 기(氣)를 받아 상큼하고 매콤 새콤하지만, 씹을수록 오징어 본래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고 특유의 바다 내음이 올라온다. 마른오징어와 땅콩처럼, 오징어숙회와 초장도 오묘한 미각적 화음(和音)을 만들어냈다. 오징어숙회는 밥반찬으로도 식탁에 자주 올라 마른오징어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서민들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나박썰기한 무와 다시마, 멸치를 넣고 끓이는 중인 육수
#오징엇국의 미각적 존재감
몸이 으스스해지는 찬 바람 부는 날 저녁이면 어머니가 끓이는 국이 있었다. 오징어만 넣고 끓이거나 오징어와 나박썰기한 무를 넣고 끓이는 오징엇국이다. 오징엇국은 오징어에 대한 향수가 모두 들어 있는 정겨운 음식이다. 오징엇국 국물을 한술 떠 삼키면 속이 확 풀린다. 국물에서는 바다 향이 강하게 난다. 나박썰기한 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이 더 강해진다.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는데 이렇게 끓이면 국물 맛이 시원하면서 칼칼하다.
손질한 생물 오징어
오징엇국의 국물은 맑고 깨끗하다. 오징엇국의 시원한 맛은 콩나물국이나 배춧국의 시원함과는 다른 맛이다. 오징어의 기원은 바다에 있고, 콩나물과 배추는 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생물에게서는 바다향이 나고, 땅에서 성장한 생물은 흙냄새를 풍긴다. 오징엇국을 먹을 때 바다가 떠올려지는 것도 국물에서 퍼져 나오는 오징어 특유의 향이 그 이유일 것이다. 오징어숙회에서도 오징어 몸에 밴 바다향이 혀끝에 전해지는데 생물 오징어에서 우러난 국물 맛만큼 진하지가 않다.
육수가 끓을 동안 먹기 좋게 썬 오징어
오징어는 바다가 고향이다. 오징어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인간의 식탁에 올려진다. 바다에서 태어난 오징어가 바다가 아닌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다. 육지 생명의 역사도 시초(始初)는 바다라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출발해 바다에 생존한 것과 뭍에 올라와 진화한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오징어 몸에서 빠져나온 진액이 육수와 어우러져 펄펄 끓고 있다.
#오징어 요리의 성찬(盛饌), 오징엇국
오징엇국에서는 오징어 요리가 발산하는 거의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 끓인 오징엇국의 오징어 살을 입에 넣고 씹으면 심심하고 고소한 맛과 쫄깃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난다. 시원하고 칼칼한 육수 맛에 더해 바다의 향이라는 후각적인 자극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군침을 돌게 하는 바다 냄새를 느끼면서 미각적인 맛, 촉각적인 맛, 국물 맛을 한꺼번에 음미할 수 있는 음식이 오징엇국이다. 오징엇국에 없는 맛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숙회나 오징어무침의 매콤 새콤한 맛뿐이다.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오징엇국은 가히 오징어 요리의 성찬(盛饌)이라 할 수 있다.
오징어의 체액이 눈에 와 닿는 국물에서 바다의 향이 느껴지는 오징엇국
요리 방법은 단순하다. 먹기 좋게 채 썬 생물 오징어 한 마리와 나박썰기한 무, 청양고추 세 가지가 식재료의 전부다. 무를 넣고 육수를 끓인 뒤 오징어와 청양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5분 남짓 지나 불을 끄면 요리가 완성된다. 조리 방식이 지극히 간단한 오징엇국이 여섯 가지 맛을 내는 육미(六味)의 마술을 부린다니,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