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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14.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10. 계란국

10. 계란국

     

#달걀과 트림

 중고등학교 시절 배가 출출할 때 형들과 약속처럼 한 행동이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날달걀을 하나씩 꺼내 이빨로 깨 먹는 것이었다. 뾰족한 달걀 윗부분에 작은 구멍을 낸 뒤 입을 대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들이마시는 날달걀 깨 먹기였다. 달걀을 쥐고 아래쪽 앞니에 톡톡 치거나 젓가락으로 쿡 찔러 구멍을 냈다. 날달걀을 마시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났고, 트림을 하면 역한 향이 퍼져 나갔다. 냄새의 원인은 달걀노른자에 황(黃)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날달걀 속 점액질의 내용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비린내가 싫어 종지에 달걀을 깬 뒤 참기름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마시는 일도 잦았다. 먹은 것 같지 않으면서도 날달걀 하나를 먹고 나면 희한하게도 허기가 가셨다. 간식거리도 되지 않을 날달걀 하나지만 당시만 해도 귀한 달걀을 먹었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낳은 착시 현상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날달걀을 먹고 트림하면 비릿한 냄새가 난다


트림은 음식물을 삼킬 때 빨려 들어간 공기가 가스로 변해 위에 정착했다가 식도를 통해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생리 현상이다. 위장질환이 있어 음식물을 잘 소화하지 못하거나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을 먹어도 음식물이 위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생성된 가스가 입으로 올라온다. 장(腸)에 머물던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방귀보다 냄새가 덜 거북하고 소리도 약하지만 옆 사람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방귀

 장 속에 우물처럼 고여 있던 가스가 발효된 음식물의 기운을 뒤집어쓰고 항문으로 탈출한 방귀 냄새는 구린내라 고약하다. 일반적으로 방귀는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다. 방귀는 장운동과 소화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방귀와 트림 냄새는 음식물에 함유된 단백질이나 지방이 장 내에서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유황 가스가 원인이다. 


그러나 방귀를 뀌는 횟수가 지나치거나 냄새가 유달리 독하다면 장 속 가스의 과잉 축적 등 장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한다. 섭취한 음식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방귀 냄새가 달라진다. 발효 식품이나 고단백 식품일수록 악취를 유발하는 황(黃) 성분이 많아 방귀 냄새도 지독하다.     


 집사람과 둘이 먹는 계란국 요리에는 달걀 세 개면 충분하다.


내 주변에도 유달리 방귀를 자주 뀌는 사람이 있다. 40년 넘는 지기(知己)로 서로 술을 좋아해 술친구이기도 한데 만날 때마다 루틴처럼 그 행동을 일삼는다. 친한 친구 앞이라 무안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루틴이 진행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친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듯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천연덕스럽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코를 자극하는 이상 징후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다. 평소 식습관이 탄수화물 위주라 그런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방귀보다 트림 냄새가 덜 고약한 것은 음식물이 제대로 된 소화 과정을 덜 거쳤기 때문이다. 트림할 때 꺽, 하는 트림 소리가 나는 이유는 위에서 올라온 가스가 성대(聲帶)를 울린 진동의 청각적 현상이다. 방귀 소리도 장에서 나온 가스가 항문괄약근(肛門括約筋)을 때리면서 울려 퍼진 공기의 파동이 원인이다. 


방귀처럼 트림 냄새도 음식물의 영향을 받는다. 고단백 식품이나 청국장처럼 향이 강한 음식일수록 트림 냄새도 강하다. 날달걀을 먹고 트림하면 비린 냄새가 나는 것도 고단백 식품이라 그렇다.      


계란을 푼 달걀물 


#트림의 원인

 트림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략 다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소화력이 약해 위 운동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 음식물이 위에 장시간 머물게 되면서 가스가 차 트림을 통해 배출하는 것이다. 위궤양이나 역류성 식도염 등 위장질환이 있으면 트림을 자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두 번째는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을 섭취했을 때다.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가공 음식 등이 그렇다. 과식을 해 배가 더부룩해도 위에서 소장, 대장으로 음식물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음식을 먹을 때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물과 함께 공기도 그만큼 많이 빨려 들어가 위에 가스가 축적되는 이유가 된다. 비염(鼻炎)도 트림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아무래도 코로 숨쉬기가 어렵기에 음식을 먹을 때 공기가 위 안으로 많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음식물에 딸려 들어가는 공기가 많을수록,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을수록, 위장질환이 있을수록 트림 발생의 가능성이 증가한다.     


송송 썬 대파


#소리 없는 방귀

우스갯소리로 소리 없는 방귀가 더 지독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단백질 성분이 많은 음식이 장 속에서 분해되면서 배출하는 가스의 양은 탄수화물 음식보다 적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대신 방귀 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음식을 먹었건 항문괄약근(肛門括約筋)이 움직이는 진동에 의한 방귀 소리는 날 수밖에 없으며 다만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미해 소리 없이 뀐다는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어쨌거나 방귀 소리와 냄새가 반비례한다는 말일진대 재미있는 현상이다.     


#갓난아기의 트림

 트림을 일부러 꼭 유도해야 할 때도 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다. 제왕절개 수술로 세상에 나온 아들은 일주일 후 집사람과 함께 집으로 왔다. 아들은 열 달 동안 익숙해진 엄마의 체취(體臭)의 원형(原形)인 모유(母乳)를 먹었다. 갓난아기인 아들의 일상은 지극히 단순하면서 반복적이었다. 아들이 하루 동안 하는 행동은 먹고 자고 우는 것, 세 가지였다. 배가 고파도 울었고 배설을 해도 울었다. 


달걀물에 잘게 썬 대파를 넣고 잘 섞는다


아들은 눈을 감은 채 엄마의 가슴팍에 입을 대고 본능적 욕구에 충실했다. 모유를 다 먹인 집사람이 빠뜨리지 않고 하는 행동이 있었다. 아들을 안은 채 목덜미에서 등 위쪽 언저리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 어루만지는 일이었다.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등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두드리고 나면 아들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트림 소리가 났다.      


나는 집사람의 행동이 갓난아기의 소화 작용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직 위의 발달 상태가 미숙해 먹은 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에 구토하는 일이 흔하다. 모유를 받아들여 부풀어 오른 위는 트림이 나오면서 가스가 빠져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 트림을 할 수 없는 아기에게 인위적인 트림 유도는 필수적이다. 여러 번 등을 쓰다듬었는데도 간혹 트림이 나오지 않는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토하곤 했다.     


끓는 육수에 달걀물을 넣고 5분 만에 완성한 계란국


#계란국의 매력

 미쳐 국거리를 준비 못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나만의 국을 후다닥 끓인다. 달걀을 풀어 끓이는 계란국이다. 달걀 세 개로 만든 달걀물에 쪽파나 대파를 송송 썰어 잘 섞은 뒤 끓는 물에 넣으면 끝이다. 멸치로 육수를 내면 더 좋고 쇠고기 다시다 1/2 작은술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계란국은 육수를 낸 뒤 요리 시간이 5분 이내로 아주 짧아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때 즉석에서 바로 끓여 먹기에 제격이다. 흐물흐물한 덩어리가 된 부드러운 달걀이 혀에 착착 감기는 감미로운 식감을 잊을 수 없다. 주의할 점은 달걀물을 냄비에 부은 뒤 중불보다는 약하고 약불보다는 강한 상태에서 요리용 주걱으로 잘 저어 가며 익히는 것이다. 


영양가가 많고 국물이 깔끔하고 담백한 계란국. 자고 일어나 입맛이 돌지 않을 아침 식사로 그만이다


젓는 것을 깜빡하면 달걀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고 달걀 덩어리끼리 뭉쳐지기 때문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후추를 뿌려주면 된다. 기호에 따라 양파를 썰어 넣기도 한다. 계란국에 감자가 들어가면 감자 계란국, 두부가 들어가면 두부 계란국이다.     


달걀로만 끓인 계란국은 만만하고 가벼워 보이나 의외로 맛있다. 내가 생각하는 계란국의 장점은 재료 손질부터 요리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5분~20분 이내로 짧으면서 국물 맛이 고소하고 맑아 자고 일어나 입맛이 돌지 않을 아침 식사로 어울린다는 것이다. 


계란국과 게맛살 부침으로 차린 주말 아침 밥상


부드럽게 씹히는 달걀 덩어리의 말랑말랑한 식감 때문에 아이들도 좋아한다. 후다닥 만들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남녀노소 호불호의 편차가 크지 않은 음식이다. 오로지 소금으로만 최소한의 간을 내 국물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식재료이면서 가장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국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쌀밥은 음식 궁합으로도 잘 맞는다. 


 계란국은 호락호락한 음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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