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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15.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11. 김치 국밥

11. 김치 국밥     


#김치와 밥만 있으면 OK  

 끼니를 차리려는데 마땅한 식재료가 없을 때가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텐데 재료를 사러 가자니 시간이 촉박하고 그렇다고 끼니를 건너뛸 수도 없어 난감하다. 이럴 때 메뉴 걱정을 단숨에 털어버릴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별도의 식재료가 필요 없고 금방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어 천군만마(千軍萬馬)가 부럽지 않은 든든한 지원군이나 다름없는 고마운 음식이다.      


김치와 밥만 있으면 즉석에서 뚝딱 요리할 수 있는 김치 국밥이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김치는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는 상용(常用) 먹거리다. 김치 없는 밥상은 식당에서도 상상할 수 없고 끼니때마다 김치의 존재감은 소리 없이 반짝반짝 빛난다.     


육수 만들기


국밥을 즐기는 집사람과 나는 김치 국밥을 애용한다. 앞서 말한 대로 미처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거나 끼니를 때우기에 적당한 먹거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요리하는 음식이다. 김치에 밥만 넣고 푹 끓인 김치 국밥은 소박하고 보잘것없지만 간편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먹어본 사람은 알지만 김치 국밥은 생각보다 맛있다.     


국밥용으로 잘게 썬 김치


#김치 국밥과 김의 궁합

 김치 국밥 관련 추억이 몇 있다. 1970년대 대구의 기와집에 살 때, 한파(寒波)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아침에 자주 먹은 음식도 김치 국밥이었다. 김치에 밥을 말아 끓인 김치 국밥은 뜨끈뜨끈해서 급하게 먹으면 입천장을 데었다.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레 국밥 한 숟갈을 떠 넣으면 속이 따뜻해졌고 한기(寒氣)도 달아났다.


김치 국밥을 먹는 날, 빠지지 않는 반찬이 있었다. 참기름과 소금을 발라 연탄불에 거슬리듯 구워낸 김과 뚝배기에 소담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달걀찜이었다. 콩자반도 하나씩 집어 먹었다. 김치와 밥으로만 이루어진 김치 국밥의 소탈한 성정(性情)에 어울리게 상차림도 단출했다. 익숙한 김치맛과 더불어 미음처럼 부드럽게 풀어진 밥알 덩어리가 빚어낸 순박한 모습 그대로 국밥은 술술 잘 넘어갔고 소화도 잘됐다.      


육수가 끓으면 준비한 김치를 넣는다.


맨 처음 김치 국밥을 먹을 때였다. 김은 맨밥에 싸서 먹는 줄로만 알았던 나와 형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멈칫거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국밥 한술을 떠 그 위에 김을 올리고 입에 넣었다. 김을 몇 조각으로 잘게 찢어 국밥 위에 뿌린 채 드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김치 국밥과 김을 그렇게 먹었다.


짭짤하면서 고소한 김의 풍미 덕분에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가로세로 20cm 크기로 정사각형 형태의 생김을 갓 구워 먹는 맛은 지금의 완제품 조미김과는 달랐고 바다의 향도 진했다. 지금 생각해도 김치 국밥과 김은 궁합이 잘 맞았다.


둘이 먹을 밥 두 덩어리도 넣는다.


콩나물국밥이나 콩나물해장국에 김 가루를 고명으로 올려 먹는 것도 국밥과 김의 연분(緣分)을 말해주는 징표가 아닐까. 콩나물해장국의 본고장 전주에 가면 콩나물국밥에 김을 얹어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김치 국밥이나 콩나물국밥에 김을 올리거나 뿌려서 먹는 방식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 음식 문화의 하나로 짐작되는 이유다.     


#카투사와 김치 국밥

 1980년대 중반 카투사로 근무할 때도 김치 국밥을 질리도록 많이 먹었었다. 카투사 생활 1년쯤 되면 삼시세끼 양식(洋食)에 물리기 마련이라 부대 내 식당을 마다하고 룸 형태의 막사(幕舍)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이 많았다. 당시 카투사들이 기거하는 룸에는 인덕션 스타일의 조리기기가 있어 가능했다.


밥알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여 완성한 김치 국밥


외출 외박이 자유로운 카투사들은 집에서 쌀과 김치, 밑반찬을 가져와 직접 밥을 해 먹었다. 주로 김치 국밥을 한 냄비 끓여 나눠 먹었는데 조리 방법이 손쉬웠고 전날 과음으로 쓰린 속을 푸는 데도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일과 후 부대 밖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온 선임병(先任兵)들은 밤늦게 꼭 후임병들에게 국밥 사역(使役)을 강요해 해장술을 마셨다.


김치 국밥은 국밥이라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선임병들은 라면 사역도 많이 시켰다. 그때 카투사들이 막사 룸에서 즐겨 마신 술은 주전자에 소주와 콜라를 2대 1 또는 1대 1의 비율로 섞은 소콜(소주+콜라), 이라는 국적 불명의 칵테일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의 음주 문화였다.     


 김치 국밥은 찬거리가 마땅치 않은 휴일 아침 늦잠을 잤을 때 해 먹기 딱 좋은 음식이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는 조리 방법은 이렇다.      


냄비에 물을 붓고 찐 달걀찜. 김치 국밥과 먹으면 금상첨화다.


#초간단(超簡單) 요리 김치 국밥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맛국물을 만들 동안 김치를 잘게 썰어 준비한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김치와 밥, 다진 마늘 한 작은술, 고춧가루 한술, 국간장 한술에다 후추를 두세 번 치고 중불로 맞춘다. 팔팔 끓는 소리가 나면 밥이 눌어붙지 않도록 주걱으로 냄비 밑바닥을 한 번씩 저어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밥알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김치와 밥을 넣고 15분 남짓. 주의할 점은 밥알이 퍼지면서 국물을 먹기 때문에 물은 내용물이 푹 잠길 정도로 넉넉하게 부어야 한다. 불을 끄기 직전에 참치액젓 3분의 1큰술을 가미하면 감칠맛이 더해지나 취향의 문제라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김치 국밥과 달걀찜, 조미김 으로 차린 초간단(初簡單) 주말 아침 밥상


 김치 국밥 한술을 떠 조미김 한 장을 얹어 먹다 보면 김 한 봉지가 금방 없어진다. 달걀찜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김치 국밥은 벼락치기로 부담 없이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초간단(超簡單) 요리다. 국밥이라 식으면 맛이 없고 식은 국밥을 다시 끓여도 맛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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