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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27.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16. 오징어숙회

16. 오징어숙회     


#무교동 포장마차

 광화문 한복판의 직장에 다닐 때 무교동 먹자골목은 밤마다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다. 샐러리맨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 해가 지면 먹자골목은 술꾼들로 떠들썩했다. 1차 소주, 2차 맥주로 취기가 돌만큼 돌았는데도 술꾼들은 만족할 줄을 몰랐다. 술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때쯤 마지막으로 가는 데가 길거리 포장마차였다. 


새벽까지 야근(夜勤)한 직장인들도 목을 축이러 고단한 몸을 이끌고 포장마차를 즐겨 찾았다. 새벽녘에 일과가 끝나는 무교동 일대의 술집 종업원들도 단골손님들이었다. 밤새도록 술 시중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그들은 술기운이 거나하게 돌면 아무렇지 않게 상소리를 내뱉었다.      


포장마차(布帳馬車)는 손수레가 점포(店鋪)인 길거리 간이주점을 말하는데 원래 어원(語源)과는 다르게 그곳에는 말(馬)도 없고 차(車)도 없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등받이가 없는 둥근 플라스틱 의자에 삼삼오오 끼여 앉은 취객들은 새벽 늦게까지 포장마차를 떠날 줄 몰랐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문을 연 포장마차는 이튿날 동이 틀 때 서야 파장(罷場)했다. 직장 동료들과 즐겨 찾았던 무교동 포장마차는 프레스센터 뒷골목에서 코오롱 빌딩(지금의 더익스체인지서울) 옆길로 난 길목에 두 집이 나란히 붙어 날마다 영업했다.      


손질한 오징어 몸통과 다리.


#포장마차의 안줏거리와 술값

 포장마차에서 파는 안줏거리는 술꾼들의 취향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소라찜과 멍게, 해삼, 닭발 양념 볶음, 생선구이, 새우구이, 가락국수 따위였다. 포장마차에서 술꾼들이 즐겨 먹는 술안주로 오징어숙회를 빼놓을 수 없다. 나도 무교동 포장마차의 단골손님이었다. 


어릴 때 고향집에서 먹었던 오징어숙회 맛을 잊을 수 없기도 했고 포장마차의 술안주로 오징어숙회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징어숙회는 소주 안주로도, 맥주 안주로도 잘 어울리는 무난한 메뉴다. 오징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치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어 성질 급한 술꾼들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소탈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달리 포장마차의 안줏값은 만만치 않았다. 소주와 맥주 네댓 병에 두세 가지 안주를 시켜 먹으면 괜찮은 음식점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와 비슷한 값을 치러야 했다. 술꾼들도 그런 점을 모를 리 없겠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취할 수 있는 포장마차는 늘 시끌벅적했다. 프레스센터 뒷골목을 오랫동안 지켰던 무교동 포장마차는 2000년대 초중반 자취를 감췄다.     


끓는 물에 오징어를 넣고 1분 내로 건져낸다.


#생물 오징어 손질  

 오징어를 데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징어 배를 갈라 내장을 덜어내는 것이다. 생물 오징어를 집에서 손질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흐르는 물에 오징어를 씻은 다음 다리 부위를 잡아당기면 몸통과 분리되면서 내장이 빠져나온다. 내장의 일부가 몸통 속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손가락을 집어넣고 잡아 빼내야 한다. 


안주의 미감(味感)을 거스르는 오징어 등뼈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떼 내는 게 좋다. 오징어 눈과 입도 불필요한 부위라 제거 대상이다. 다리 부위를 손질할 때 조심할 점은 먹물이다. 다리 맨 위의 두툼하게 뭉친 곳을 통째로 잘라내면 안전하게 먹물주머니를 분리할 수 있다. 손질이 끝난 오징어는 흐르는 물에 속까지 잘 헹궈야 한다.      


탱글탱글하게 데쳐진 오징어


데치는 물을 끓일 때 소금을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무방하다. 삶은 오징어는 풍선처럼 살이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한입에 먹기 알맞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숙회의 맛은 다 아는 그대로다. 초고추장에 다진 마늘을 섞고 참기름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면 감칠맛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칼집 효과에 매료돼 오징어에 칼집을 내기도 한다. 내장을 덜어내고 손질한 오징어 다리 부위를 떼 낸 뒤 몸통을 펼쳐 칼집을 내 데치면 먹을 때 칼집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칼집은 데친 오징어의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고 해 따라 해 봤는데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시각적 장식 효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징어숙회말랑말랑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오징어 데치기

 오징어를 데칠 때 주의할 점은 늦어도 1분 이내에 오징어를 냄비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데치면 오징어 살이 억세져 부드러운 질감이 반감된다. 물이 완전히 끓은 상태에서 오징어를 넣고 건져내는 타이밍은 40~45초가 적당하다. 말랑하면서도 쫄깃해 씹히는 식감이 기분 좋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먹다 남은 오징어숙회는 냉장고의 냉장 칸에 보관했다가 차가운 상태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쌈을 좋아한다면 상추에 오징어숙회 한 점을 올려 싸 먹어도 별미다.      


배춧국과 오징어숙회 상차림.


오징어숙회는 오징어 요리 중 오징어 본래의 맛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음식이다. 술안주로 먹어도 그만이고 밥반찬으로 먹어도 맛있다. 오징어볶음과 오징어무침 안주 하나만 있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추억의 힘은 녹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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