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소야 볶음
15. 소야 볶음
딸은 고등학교 때 기숙학교에 다녔다. 주중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금요일 방과 후 통학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일요일 저녁, 다시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공립 외국어고등학교인 전교생 모두 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을 했다.
입학 후 첫 주 수업을 마친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온 딸은 자기 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하염없이 울었다. 생전 처음 겪는 기숙사 공동생활이 낯설고 불편해 엄마 품이 그리운 나머지 감정이 북받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딸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딸처럼 아이들 모두 새삼 집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 보금자리인지 실감하는 기회도 됐을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한 달쯤 지나자, 공동체 생활에 적응한 딸은 예전의 평상심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때 딸이 유난히 좋아한 음식이 있었다. 소시지와 베이컨, 김치, 데쳐서 무친 콩나물을 넣고 자작하게 졸인 음식이다. 줄여서 소야 볶음이라고 부른다. 소시지를 양파, 당근 따위의 야채와 함께 볶은 일반적인 소야 볶음과는 다르다.
제일 먼저 베이컨을 팬에 깐다. 식감을 돋우기 위해 두툼한 베이컨으로 골랐다.
#무교동 낙지볶음
딸이 소야 볶음을 유달리 좋아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집사람이 딸을 임신했을 때였다. 2000년 무렵 작은 처제 식구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낙지볶음을 좋아해 무교동 낙지 골목에서 포장 구매한 음식을 집에서 자주 나눠 먹던 시절이었다.
낙지볶음은 꼭 사는 집에서만 샀는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낙지볶음 맛집이었다. 직장 근처라 나도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심심찮게 들리는 곳이었다. 그 집의 메뉴는 낙지볶음과 베이컨 소시지, 조개탕, 계란말이 네 가지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비주얼이 시뻘건 낙지볶음은 보기만 해도 매운 기세가 솟구쳤고 실제로 엄청 매웠다. 낙지볶음과 세트처럼 꼭 시켜 먹는 메뉴가 있었다. 손님들은 불판 소시지구이라고 불렀고 식당 메뉴판에는 베이컨 소시지라고 적힌 음식이다. 베이컨 소시지 메뉴는 불판에 베이컨과 소시지, 김치, 무친 콩나물, 양파, 감자 등을 올려 끓여서 익혀 먹는 음식이다.
베이컨 위에 김치를 얹는다.
별것 없어 보이는 식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맛은 묘하게 끌림이 있어 손님들의 식탐(食貪) 욕구를 부추겼다. 낙지볶음은 접시에 따로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나면 놀란 위가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라 매운 음식에 약한 나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처제의 제안과 엄마표 소야 볶음
어느 날 처제가 아이디어를 냈다. 흉내 내기에 만만해 보이는 베이컨 소시지 요리를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어떻겠냐고 집사람에게 제안한 것이다. 실제로 낙지볶음 식당의 베이컨 소시지 메뉴는 요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집사람은 직접 베이컨과 소시지, 김치, 데쳐서 무친 콩나물을 팬에 넣고 요리하기 시작했고 딸을 출산할 때까지 식탁에 수시로 올려 네 살이던 아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고 회상했다.
엄마 뱃속의 딸은 태어나기 전부터 일찌감치 소야 볶음의 풍미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필연적 귀결이 아닐까, 싶다.
집사람은 딸을 임신하고서 먹은 소야 볶음 요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는데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한 기운이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딸의 최애(最愛) 음식 중 하나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대로 임신부(姙娠婦)가 억지로 먹은 음식의 달갑지 않은 기운은 뱃속의 태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엄마와 태아는 말 그대로 한마음 한뜻의 일심동체(一心同體)란 옛말은 털끝만큼의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김치 위에 소시지를 깐다.
태아 때부터 소야 볶음의 입맛에 길들인 딸이 기숙학교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게 되자 엄마표 소야 볶음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야 볶음 요리는 만들기가 어렵지 않고 소시지와 김치, 콩나물의 조합이 은근히 매력적인 미각으로 다가와 아이나 어른 모두 한 끼 식사로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특히 나처럼 나이 든 연배에게 소시지는 각별한 기억의 반찬으로 남아 있다.
#소시지 반찬의 추억
지금 아이들이 소시지를 좋아하는 것처럼, 예전의 아이들에게도 소시지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1970년대의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도시락을 싸 다녔다. 그 시절의 소시지는 도시락 반찬으로 단연 최고 인기였다. 값이 비싸 먹기가 쉽지 않았고 맛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소시지 반찬을 싸 오는 아이는 대개 정해져 있었고 점심시간만 되면 그 아이 주변으로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소시지 반찬으로 티를 내는 깍쟁이 같은 아이도 있었고 사이좋게 나눠 먹는 인정 많은 아이도 있었다. 나도 가끔 달걀물을 입힌 소시지 부침을 밥상에 올리는데 어쩌다 먹으면 옛 추억도 떠오르고 맛도 있다.
살짝 데친 콩나물
주말에 동네 마트로 장을 보러 가면 식품 진열대에 수많은 종류의 소시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먹거리가 확실히 풍성해졌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소금에 절이는 염장(鹽藏)과 연기로 그슬리는 훈연(燻煙) 방식으로 만든 소시지는 보존성이 뛰어나고 요리법도 다양하다.
소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밥상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고 맥주 안주로도 인기가 많다. 소시지의 나라 독일에서는 무려 1,500가지가 넘는 무궁무진한 종류의 소시지를 생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무친 콩나물을 소시지 위에 포갠다.
#소야 볶음 요리
비엔나소시지
우리집에서는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원통 모양의 비엔나소시지를 사용해 소야 볶음 요리를 만든다. 소시지에 칼집을 내면 소시지의 속까지 골고루 익고 양념도 잘 스며든다. 느끼한 맛이 거슬려 호감이 갈리는 베이컨은 볶을 때 우러나는 기름이 김치의 매콤한 맛과 뒤섞여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증가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둘이 먹을 분량이면 작은 봉지 기준으로 비엔나소시지 한 봉지면 충분하다. 베이컨은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고 김치도 먹기 좋게 썬다. 콩나물은 데친 뒤 미리 무쳐 놓는다. 무쳐서 볶은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이 입맛을 돌게 하고 소시지와 베이컨의 기름지고 텁텁한 맛을 묽게 하기에 넉넉하게 넣으면 좋다.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끓인 뒤 내용물을 살며시 한 번 섞어 준다.
베이컨과 김치, 소시지와 무친 콩나물
요리 방법은 간단하다. 움푹 들어간 큰 팬에 식용유와 들기름을 두르고 베이컨을 깔고 그 위에 김치를 얹는다. 김치 위에 소시지와 콩나물을 차례대로 포갠 뒤 콩나물을 데친 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켠다. 콩나물을 데친 물은 콩나물의 수분이 빠져나와 시원한 맛이 살아 있고 몸에도 좋아 육수 대용으로 사용하기에 그만이다. 조림 요리를 한다는 기분으로 종이컵으로 한 컵 정도만 붓는다.
베이컨과 소시지가 익을 때까지 센불로 가열하고 국물이 자작해지면 중불로 낮춘 뒤 전체 내용물을 살며시 섞은 다음 불을 끈다. 추가로 넣는 양념은 일절 없다. 김치 양념과 무친 콩나물 양념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소야 볶음을 팬 채 식탁에 올려놓고 덜어 먹거나 큰 접시에 담아 나눠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팬 아래에서부터 베이컨과 김치가 충돌해 빚어낸 자작한 국물 향이 소시지와 콩나물에 전해져 알싸하면서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각기 다르게 입맛을 자극한다.
접시에 옮겨 담은 소야 볶음
#자만이 불러온 낭패
딸이 독립해 나간 뒤로 소야 볶음 요리는 우리집 식탁에서 사라졌다. 엊저녁에 아주 오랜만에 소야 볶음을 밥상에 올렸는데 집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알던 소야 볶음과 모습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낭패였다. 기억의 착오가 불러온 독단적인 판단이 원인이었다.
오래전에 소야 볶음을 한두 차례 요리한 적이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알량한 요리 솜씨만 믿고 상상 속의 나만의 레시피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소야 볶음 맛의 성미가 거칠고 사나웠다. 한마디로 양념 맛이 너무 강했다. 김치를 빼먹은 상태에서 고춧가루와 간장 따위의 과잉 양념이 소야 볶음 본연의 풍미를 해친 것이다.
나만의 상상의 레시피로 만든 소야 볶음. 실패작이다. 한눈에 봐도 양념이 강하고 사납다.
기분이 상해 혼자 식식대다가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 콩나물 한 봉지를 얼른 사 와 늦은 밤에 요리를 다시 했다. 다행히 소시지와 베이컨은 여분이 있었다. 자존심을 꾹 누르고 집사람의 의견을 경청한 뒤 후다닥 소야 볶음을 만들어냈다. 그제야 집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모르면 물어봐야 하고 자만은 금물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다고 가본 지 꽤 오래된 낙지볶음 식당은 종로의 한 대형 건물로 자리만 옮겼을 뿐, 지금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딸이 주말에 집에 오는 날, 소야 볶음 요리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