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통조림의 추억은 둘이다. 하나는 어릴 때 별미 간식으로 또래의 아이들이 다 좋아했던 복숭아 통조림이고 다른 하나는 김치만 있으면 즉석에서 찌개를 끓여 먹을 수 있는 꽁치통조림이다. 짙은 노랑의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황도(黃桃) 슬라이스는 반백 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다.
1970년대의 복숭아 통조림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술을 한잔 걸친 아버지가 흥에 겨워 귀갓길에 사 들고 들어오거나 받아쓰기 시험을 잘 본 날 먹을 수 있었고, 몸살감기에 걸려 콜록거릴 때 기력 회복용으로도 먹었다. 실제로 복숭아 통조림은 1970년대 병문안(病問安)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 먹거리가 흔해 빠진 요즘에도 복숭아 통조림은 마트 진열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호프집의 맥주 안주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호락호락한 군것질거리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를 소환하는 추억의 음식으로 꽁치통조림에 대한 향수는 더 진하다. 으레 통조림이 다 그렇듯, 꽁치통조림은 즉석에서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편의성 외에 보존기간의 우수성이 장점이다. 통조림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진행형의 음식인 이유도 바로 비교 불가의 압도적인 보존성 때문일 것이다. 유효기간이 수년은 기본이고 보관 상태가 양호하다면 수십 년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먼저 김치를 냄비에 넣고 볶는다.
#통조림과 전투식량
통조림은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가열해 살균한 음식을 금속제의 용기에 밀봉해 장기 보존할 수 있도록 처리한 가공식품이다. 내용물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난 통조림이 전투식량으로 위력을 떨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조림은 프랑스의 제과업자 겸 발명가인 니콜라 아페르(1749~1841)에 의해 처음 발명됐다. 아페르는 1804년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을 넣고 가열 살균 처리한 뒤 코르크 마개로 밀봉한 병조림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통조림은 병조림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페르가 발명한 병조림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때 프랑스군의 전투식량으로 보급됐다. 이후 1810년 양철로 만든 용기가 개발되면서 현재의 통조림으로 발전하게 됐다.
식품의 내구성 유지와 장기 보존이 목적인 통조림의 원리는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을 죽여 사라지게 하고(가열 살균) 미생물의 침입을 막는 데(밀봉) 있다. 초창기 통조림은 망치와 못을 이용해 뚜껑을 열었다. 지금처럼 손으로 고리를 들어 올려 당기는 원터치 캔은 1960년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 때 통조림이 군납품으로 선보이면서 통조림이 역사가 시작됐다. 국내에 유통되는 통조림은 크게 과일 통조림과 곡물 통조림, 생선 통조림, 육류 통조림으로 구분된다. 깻잎김치 통조림은 반찬으로, 번데기 통조림은 술안주로 인기가 많다.
꽁치를 넣고 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꽁치 통조림 두 개 분량이다. 다시마 한 장도 넣고 통조림 속의 국물도 함께 붓는다. 통조림 국물은 선택사항.
#팔공산 산행과 꽁치통조림
캠핑지로 여행을 떠날 때 꽁치통조림만큼 유용한 먹거리도 없다. 내게 꽁치통조림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입대(入隊)를 앞둔 1980년대 중반 대구 근교 팔공산을 자주 찾은 산행(山行)의 기억 때문이다. 친구 몇 명과 어울려 입대 전까지 여러 번 산행을 떠났는데 빠지지 않고 챙긴 물건이 꽁치통조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도립공원이던 팔공산 계곡 곳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찌개를 끓여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계곡물에 쌀을 씻어 밥을 짓고 가져간 통조림과 김치로 꽁치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 맛은 비교 불가의 꿀맛이었다. 배가 출출해질 때쯤이면 라면을 끓여 허기를 채우고 기분 좋게 하산하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이 끓으면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설탕을 넣고 중불에서 자작하게 졸인다.
팔공산 자락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찰 동화사(桐華寺)와 갓바위가 있어 산행의 즐거움이 더했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와 경북 경산시, 군위군, 칠곡군, 영천시에 걸쳐 있는 해발 1,192m의 산으로 202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갓바위란 이름은 통일신라 시대 때의 석조 불상 머리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얹어진 모습에서 유래됐다. 영험(靈驗)한 불상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수능시험 철만 되면 전국 각지에서 수험생들의 학부모가 갓바위 앞에 몰려들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마트 진열대에서 꽁치 통조림을 볼 때마다 팔공산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이 어른거려서일 것이다. 40년 전의 아련하고도 그리운 풍경을 흑백사진처럼 소환한다는 점에서 하찮은 꽁치 통조림이 내게는 결코 하찮을 수가 없다.
대파와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1분 후 불을 끈다.
#과메기와 관목청(貫目鯖)
겨울철 별미(別味)로 많이 먹는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靑魚)를 겨울 바닷바람에 꾸덕꾸덕하고 차갑게 말린 것이다. 정약전(1758~1816)은 해양생물 백과사전인 저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꽁치를 관목청(貫目鯖)이라고 이름 지었다.
일반적으로 말린 청어인 건청어(乾靑魚)를 모두 관목(貫目)으로 부르는데 정약전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기록했다. 왜 그런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꽁치를 관목청이라고 작명(作名)한 데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약전은 관목청의 특징으로 청어보다 맛있고 말리면 더욱 맛있다고 적었다. <자산어보, 정약전 · 이청 지음,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21, p53에 나오는 내용을 참조>
과메기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님을 추정할 수 있는 기술(記述)이다. 꿸 관(貫), 눈 목(目)이라는 한자어 관목은 생선의 눈을 꿰어서 말린 것에 유래를 두고 있다.
완성된 꽁치 김치찌개. 계란말이나 계란찜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다.
통조림 하나만 있으면 바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꽁치 김치찌개의 편의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꽁치는 등 푸른 생선 중 심혈관계질환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3 지방산이 가장 많고 무엇보다 값이 싸다. 꽁치통조림에 든 꽁치는 고온 고압으로 요리한 특성 때문에 뼈가 흐물흐물해 뼈째 먹어도 이물감(異物感)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꽁치 김치찌개를 요리하는 데에는 20분이면 충분하다.
1. 식용유와 들기름을 냄비에 두르고 김치를 볶는다.
2. 꽁치를 넣고 물을 붓는다. 다시마 한 장도 넣는다. 통조림 속의 국물도 함께 붓는다. 끓였을 때 국물 맛이 더 깊어진다. 물의 양은 김치와 꽁치가 살짝 덮일 정도면 충분하다.
3. 물이 끓으면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한 큰술, 설탕 한 작은술을 넣고 중불에서 10분간 자작하게 졸이고 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