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돼지고기 수육
41. 돼지고기 수육
#수육과 보쌈
수육은 삶은 고기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소고기를 삶아도 수육이고 돼지고기를 삶아도 수육이다. 소고기 수육에는 소의 가슴살인 양지머리가 주로 쓰인다. 양지머리는 육질이 질기고 기름져 수육을 비롯해 국과 탕, 전골 요리에 많이 사용한다. 지방 성분이 많은 돼지고기는 부위에 상관없이 수육용으로 두루 무방해 선택의 폭이 넓다.
굳이 꼽자면 살코기를 좋아하면 목살, 지방이 섞인 맛을 좋아하면 삼겹살이 알맞다. 마트에 가면 덩어리째 포장 판매하는 수육용 삼겹살을 볼 수 있다. 대중적인 선호도에 따른 판매 전략일 것이다. 앞다리 부위로 수육을 요리하기도 한다.
냄비에 양파와 생마늘, 대파, 월계수 잎, 청양고추를 넣는다.
돼지고기 수육의 용례 중 대표적인 실례(實例)가 있다. 잔칫상이나 개업식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로 외식 메뉴로도 잘 알려진 보쌈이다. 보쌈의 사전적 정의는 삶은 소머리나 돼지머리의 살에서 뼈를 발라내 보(褓)에 싸서 눌렀다가 얇게 썰어 먹는 음식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돼지고기 수육을 보쌈김치와 곁들여 먹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규정한 보쌈의 정의 두 번째 항목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삶은 돼지고기를 편육으로 썰어서 배춧속이나 보쌈김치 따위와 함께 먹는 음식. 절인 배춧잎이나 상추에 싸 먹기도 한다.’ 보쌈의 광의적(廣義的) 정의와 상관없이 돼지고기 수육을 보쌈의 동의어로 인정하는 셈인데 언어의 사회성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겠다.
물을 붓고 된장 두 큰술과 소주잔 기준으로 소주 두 컵, 맛술 한 큰술, 후추, 소금 한 작은술을 넣는다.
수육의 본딧말은 숙육(熟肉)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언어적 풍화(風化) 작용으로 인해 앞 글자를 부르기 쉽도록 자음 탈락 현상이 일어나 ‘ㄱ’이 떨어져 나가면서 수육으로 굳어졌다. 흔히 삶은 고기가 구운 것보다 몸에 좋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고기를 삶으면 단백질 성분은 남고 지방과 나트륨이 배출된다. 삶은 고기가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맛이 나는 이유다.
#돼지고기 수육 요리의 특징
돼지고기 수육은 삶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고 부재료 손질도 간단하나 맛있게 요리하기는 의외로 까다롭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세 가지 점만 유의하면 평균 이상의 꽤 괜찮은 맛을 즐길 수 있어 집밥으로 도전해 볼 만한 메뉴다. 첫째는 검증된 부위의 신선한 고기를 사는 것이고 둘째는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와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삶는 방식이다.
핏물을 뺀 돼지고기를 얹는다.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의 확보
다른 음식처럼 돼지고기 수육도 일단 고기의 질이 우선이다. 고민할 것 없이, 마트 정육 판매대에 전시 중인 보쌈용 한돈 삼겹살을 선택하는 게 무난하다. 돼지고기 수육은 여러 부위로 요리할 수 있으나 삼겹살 부위가 상대적인 만족도가 높다. 보쌈용 삼겹살이 별도의 상품으로 유통되는 이유다.
누린내와 잡내 제거
돼지고기에서 나는 기름 냄새인 누린내와 잡내는 육수를 끓일 때 넣는 부재료와 양념, 향신료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된장과 생마늘, 양파, 대파, 월계수 잎, 소주, 맛술, 후추 따위가 그것이다. 생강까지 포함하면 더 좋으나 없으면 생략해도 상관없다. 앞서 언급한 육수용 재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월계수 잎은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 데에 유용한 향신료라 수육 요리의 단골 부재료다. 이도 저도 성가시고 미처 부재료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된장 하나로만 삶아도 기본적인 맛은 살릴 수 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5분쯤 지나 중불로 낮춘다.
삶는 방식
삶는 방식은 적절한 불의 세기로 오래 삶아야 한다. 육수가 끓은 뒤 고기를 삶기 시작하는 방법과 처음부터 고기를 함께 넣고 삶는 방법이 있다. 우열의 논쟁이 있으나 불의 강도와 삶는 시간만 준수하면 어느 쪽이든 맛의 차이는 오십보백보일 듯싶다. 어느 방식이든 육수가 비등점을 돌파한 뒤 5분쯤 지나 강한 불에서 중불 또는 중 · 약불로 낮추고 45~50분을 계속 삶아야 한다.
고기를 삶는 정도는 취향에 따라 결정할 일이다.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선호한다면 젓가락으로 고기를 찔렀을 때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는 순간에 꺼내면 된다. 부드러운 식감을 바란다면 젓가락이 고기 몸속으로 빨려들 듯이 쉽게 들어갈 때가 건지는 타이밍이다. 수육을 익힌 뒤 불을 끄고 뚜껑을 닫은 채 5분간 뜸을 들이면 윤기가 흘러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30분 후 중 약불에서 20분을 더 삶는다.
한 가지 보태자면 삶기 전에 돼지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는 과정을 거치면 누린내와 잡내 제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냉동고기일 경우에는 핏물을 빼는 작업을 꼭 진행해야 한다. 고기 몸속에 핏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1년에 세 번 지내는 우리집 제사상에도 돼지고기 수육을 통째 올린다. 식구 중에서 아들은 제사음식을 두루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돼지고기 수육과 문어숙회다. 제사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복(福)을 받는다고 하니 이래저래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찔러 부드럽게 들어가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은 채 5분간 뜸을 들인다.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새우젓, 쌈장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는 알려진 바대로 찰떡궁합이다. 지방과 단백질 성분의 삶은 돼지고기와 발효식품으로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면서 매콤한 김치는 영양학적으로나 미각적으로나 소화 기능적으로나 상호 보완적이다. 돼지고기 수육이 가는 곳에 김치가 있고 김치가 있는 곳에 돼지고기 수육이 따라붙는 일종의 콤비 음식인 셈이다.
김장 김치를 집에서 담그는 일이 일상이던 시절에 빠뜨리지 않은 것 중의 하나도 돼지고기를 삶는 것이었다. 막 담근 김장 김치를 손으로 찢어서 돼지고기 수육을 싸서 먹는 모습은 김장철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돼지고기 수육을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새우젓과 쌈장이다.
접시 둘레를 따라 수육을 촘촘하게 펼치고 가운데에 김치를 수북이 담는다.
우선 둘 다 발효식품이라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 있어 더부룩한 포만감에 빠지기 쉬운 돼지고기의 소화를 도와준다. 깊은 감칠맛과 짠맛이 나는 새우젓은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을 순화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 된장과 고추장, 마늘, 참기름을 섞은 쌈장은 고소하고 짜고 매우면서 단맛이 어우러져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누그러뜨리며 담백한 풍미를 자아내는 효과가 있다. 돼지고기와 김치, 새우젓, 쌈장의 조합에는 그럴만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알 배춧잎과 오이고추도 준비한다.
#돼지고기 수육 만들기
지난 주말 오랜만에 동네 마트에서 보쌈용 삼겹살을 사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어 먹었다.
1. 돼지고기를 찬물에 10~15분 담가 핏물을 빼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다.
2. 냄비에 된장 두 큰술과 소주잔 기준으로 소주 두 컵, 맛술 한 큰술, 후추, 소금 한 작은술, 생마늘 일고여덟 개, 양파 한 개, 대파 한 대, 월계수 잎 대여섯 장, 청양고추 한 개와 물을 붓고 육수를 끓인다. 나는 이때 돼지고기도 같이 넣는다. 물의 양은 고기가 잠길락 말락, 하는 정도다.
3. 육수가 끓으면 5분쯤 후 중불로 낮추고 30분, 다시 중 약불에서 20분을 더 삶는다.
4. 젓가락으로 고기를 찔러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들어가면 불을 끈 뒤 5분간 뜸을 들인다.
5. 고기를 들어내고 채반에 받쳐 식힌다.
6. 위생 장갑을 낀 손으로 고기를 잡고 먹기 좋은 두께로 자른다.
7. 큰 접시 둘레를 따라 수육을 보기 좋게 촘촘하게 펼치고 가운데에 김치를 수북이 담는다.
8. 수육을 찍어 먹을 새우젓과 쌈장 외에 알 배춧잎, 오이고추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