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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Jan 07. 2025

삶의 정거장에서

20. 처조카의 취업에 즈음해

20. 처조카의 취업에 즈음해     


#늦은 밤기쁜 소식

 약 3주 전, 2024년이 며칠 남지 않았던 늦은 밤에 기쁜 소식을 들었다. 느지막이 집에 온 나에게 집사람은 처조카의 취업이 확정됐다고 알려주었다. 처조카는 집사람의 둘째 여동생, 즉 작은 처제(妻弟)의 아들이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처조카도 입사를 위해 올 한 해 내내 노심초사,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번듯한 대기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수도권 소재 회사의 문을 잇달아 두드렸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가 싶었는데 12월의 밤이 짙어갈 무렵, 전해진 최종 합격의 낭보(朗報)에 식구들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칫 취업 재수(再修)의 길을 걸을까, 불안감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처제와 처제의 남편인 손아래 동서(同壻)는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환호성을 내지르며 만감이 교차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으리라. 


피붙이 간 우애(友愛)가 남다른 처제는 집사람에게 큰 짐을 던 안도의 심정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처제의 아들 사랑이 어떠한지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나는 처제의 마음이 십분(十分) 이해되고도 남았다.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야 어느 어머니인들 다를까마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련한 눈길에 묻어둔 가슴앓이는 오롯이 처제 혼자만의 몫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었으나 집사람의 성화가 싫지는 않아 동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들뜬 감정이 실려 있었다. 곧장 축하 인사를 건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는 처조카가 입사한 회사에 대해 줄줄 꿰고 있었다. 자상하고 꼼꼼한 성격대로였다. 동서는 마치 자신이 취업한 양, 처조카의 입사 과정을 수기(手記)처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기쁨의 크기와 무게가 어떠한지 동서는 스스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일주일 연기된 2018학년도 수능(修能)

 처조카의 동년배들은 대학 입시 때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경북 포항에서 리히터 규모 5. 4의 역대급 피해 규모를 기록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결국 지진 발생에 따른 안전 문제가 부각하면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볼 수도 없었으나 처조카와 수험생들은 이날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처제의 마음고생

재수를 택한 처조카는 2019년 2월 대입 정시 추가 합격자 발표 마지막 날 밤 11시가 넘어 가까스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2년 간의 대입 수험생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합격 통보를 받기 전, 설 연휴 때 처가(妻家)의 형제 자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초조한 기색이 얼굴에 뚜렷한 처제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입시 수험생을 뒷바라지하는 애끊는 모정(母情)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큰 산의 고비를 두 번이나 어렵사리 넘긴 처제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을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처조카의 축구 사랑

 처조카는 어릴 때부터 심성이 순하고 착했다. 초등학교 시절, 처조카는 유달리 축구를 좋아했다. 처제와 동서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 달에 한두 번씩 우리집을 찾은 것도 축구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시설이 꽤 괜찮은 체육공원이 있다. 정식 경기를 할 수 있는 인조 잔디 구장 한 면과 보조 잔디 구장 한 면을 갖춘 곳이다. 둘 다 조명 시설이 설치돼 밤에도 공을 차고 뛰어놀 수 있다. 그곳에서 동서와 나, 처조카와 그보다 세 살 위의 내 아들 넷이 모여 2대 2 미니 축구 게임을 즐긴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손아래 동서(同壻)에게 진 빚

 나는 손아래 동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아들이 유년기(幼年期)일 때 나는 몹시 바빴다. 직장 생활을 핑계로 야근이 잦았고 주말에도 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의 손이 필요할 나이에, 동서는 나 대신 기꺼이 아들의 놀이 동무를 자청했다. 동서는 철없고 짓궂은 어린 내 아들을 친자식처럼 살갑게 보듬었다. 친인척이라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동서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가 내게 빚인 이유다.     


지나고 나면 생각난다고, 자식들 모두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옛 시절이 더욱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전화 통화가 끝날 즈음, 동서가 말했다. 처조카의 직장 소재지가 비수도권인 점이 못내 아쉽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우회도로를 거쳐 돌아가는 것이 더욱 야무지고 지혜로운 사회인으로 가는 보약(補藥)이 될 수 있어 굳이 마음에 담아둘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고. 처조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작은 처제의 정서적(情緖的) 내비게이션인 사회 초년병 처조카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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