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장모와 세 딸의 동반 여행
21. 장모와 세 딸의 동반 여행
#대구 동성로
나는 고향이 대구다. 처가(妻家)도 대구다. 결혼 후 친가(親家)에 갈 때마다 처가를 방문했다. 집사람과 함께 친가에서 명절 차례를 지낸 뒤면 어김없이 처가 어른들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맏사위인 나는 집사람을 결혼한 해 봄에 만났다. 출장지이자 고향인 대구 중구 동성로(東城路)의 한 카페에서였다.
동성로는 대구 최대의 번화가로 젊음의 거리다. 동성로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1907년 171년 전에 세워진 대구 읍성(邑城)의 동쪽 성벽을 철거하고 뚫은 약 1km의 길이 지금의 동성로다. 동성로는 대구 상권의 중심지답게 각종 상업시설이 즐비하고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망 덕분에 현재까지도 대구를 대표하는 메인스트리트로 각광받고 있다.
#장모의 첫인상
어머니의 계(契) 모임 회원의 주선으로 이뤄진 첫 만남의 자리에서 장모(丈母)를 처음 뵈었다. 34년 전 일이다. 말투와 행동거지에서 맏딸의 배필(配匹)로 싫지 않은 기색이 느껴졌다. 사실이었다. 연애 초창기, 집사람이 그 점을 귀띔해 주었다. 장모는 후덕해 보였고 말수가 적지도 많지도 않았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오래지 않아 원래 성품이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기보다 듣는 편이었고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고 신중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속정을 드러냈다. 집사람은 장모의 성정(性情)을 닮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눈치 빠른 것은 닮았는데 속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닮지 않았다.
#45분 지각이 맺어준 인연
나라는 존재를 처음 본 순간, 집사람은 배시시 웃었다. 자칫 어색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속셈에서인지, 첫인상에 대한 속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전자(前者)일 가능성은 비현실적이라 나도 덩달아 웃었다. 집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집사람에 대한 호감이 신뢰로 굳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만난 지 한 달쯤 된 1991년 5월, 대구로 출장을 갔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나는 직업상 출장이 잦았다. 집사람은 대구의 한 회사에 다녔다. 데이트는 주로 대구에서 이뤄졌다.
내가 출장 중일 때였다. 출장 2일째 되던 날, 출장 업무는 오후 늦게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전날, 이날 오전에 집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집사람의 회사 근처 대로변. 숙소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약속 시간에 빠듯할 것 같아 택시를 잡아탔다.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워가 훨씬 지난 느지막한 오전 시간인데도 이상하게 도로가 막혔다. 도로 상황을 알 수 있는 교통 정보 방송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때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를 뿐, 속수무책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로 언저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집사람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고,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떠나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앞섰다.
택시가 사거리를 돌자, 저만치 약속 장소가 보였다. 자그마치 45분이나 지각. 놀라운 일이었다. 그곳에 집사람이 서 있었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인연의 유효기간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자책하며 전전긍긍하던 조바심이 눈 녹듯이 풀렸다.
집사람은 내가 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집사람에게 인생을 걸어도 될지, 이리저리 두드리던 미심쩍은 노크를 스스로 무장 해제시키는 순간이었다. 첫 만남 6개월 후 우리는 결혼했다. 인연의 결실(結實)을 이렇게 거둘 수도 있는 법이다.
내가 집사람과의 인연을 뜬금없이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집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예민함이 덜해졌지만, 오랫동안 그랬다. 밥 먹듯이 야근하고 출장을 가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장모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산다. 장인이 돌아가신 후부터다. 벌써 15년째다. 집사람은 장모가 혼자서도 잘 지낸다고 한다. 무덤덤하고 집착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런 면이 없지만도 않다. 한편으로는 장모 스스로 내색을 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럴 수 있겠다는 것 자체가 기질과 분리될 수 없어 집사람의 유권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어쨌거나 장모의 이런 점을 집사람은 닮지 않았다.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로 자란 장모는 다섯 살 위 장인과의 사이에서 4남매를 낳아 키웠다. 위로 딸 셋에 아들 하나. 지금과 달리 아들을 선호하던 시대라 장모는 집사람이 아홉 살이던 해, 늦둥이를 출산했다. 누나만 셋인 처남은 중학교 후배이자 대학교도 후배다. 아들도 나의 대학 후배라 대학 동문만 셋인 셈이다.
장모의 인간관계 원칙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살갑지도 않고 데면데면하지도 않다. 정을 쉽게 주지도 않지만, 싫은 내색도 잘하지 않는다. 말이 앞서지 않고 뒤끝을 흐리는 법도 없다. 이런 유형은 말의 앞뒤가 달라지지 않는다.
흡인력이 뛰어난 감성적 호감형이 아닌 대신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게 상대를 챙기는 신중한 배려형이다. 쉽게 끓어오르지도, 쉽게 식어버리지도 않아 갈등의 소지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장모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은 지혜로운 인간 스타일이다.
#혹한으로 무산된 경주 여행
며칠 전, 집사람이 장모에게 전화했다. 경주 여행을 연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혹한(酷寒)의 추위 때문에 여든 넘은 노인이 혹여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에서였다. 장모는 여행 짐을 이미 다 꾸려놓았다는 말로 집사람을 안심시켰다. 장모와 세 딸과의 1박 2일 여행은 예정대로 진행되는가, 싶었다.
다음 날, 장모가 집사람에게 전화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진다는데 여행은 다음에 가자고 바로 전날 집사람에게 한 말을 뒤집는 전언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장모의 마음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마 TV 뉴스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장모의 TV 시청은 일과(日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일거리다. 방송에서 연일 맹추위가 불어닥친다는 예보를 쏟아냈다. 노인들의 외출 자제를 권고하는 방송에 장모의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이다.
#친정어머니와 딸의 관계
홀로 노년(老年)을 보내는 장모에게 딸 셋과의 동반 여행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낙(樂)이자 보람이다. 집사람과 두 처제는 몇 년 전부터 수시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국내 여행을 다녔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딸들과 함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을 장모는 손꼽아 기다린다. 문득,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한 말이 생각난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딸 가진 부모가 부럽다고. 어머니는 아들만 셋을 낳았다.
어머니와 딸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마땅한 천륜적(天倫的) 도리에 더해 여성성(女性性)으로 규정되는 성적 동질성의 관계다. 나이 든 노모(老母)의 구석진 속내까지 살뜰하게 헤아리고 보살피기에는 아무래도 딸이 아들보다 비교우위에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합리적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친정어머니와 딸들의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同行)일 것이다.
#장인어른의 빈자리
나처럼 장인어른도 술을 좋아했다. 반주(飯酒)를 끼고 살았고 소주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명절 때 처가에 가면 언제나 술상이 차려졌다. 소주와 맥주, 나의 최애(最愛) 안주 땅콩에다 오징어와 쥐포, 대구포, 과일까지. 주안상(酒案床)을 앞에 둔 장인어른과 손아래 두 동서와의 대작(對酌) 시간은 흥겨웠다. 돌아가시기 수년 전, 큰 병(病)에 걸리고 나서야 장인어른과 술과의 오랜 인연은 어쩔 수 없이 끝났다.
내가 젊었을 때 집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장인어른의 술 사랑이 깊어질 때마다 장모의 시름도 깊어졌을 것이다. 장인어른의 빈자리가 일상에 어색하게 파고들 즈음, 장모는 유품(遺品)을 정리하다가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50년 가까이 한 이불을 덮고 살았던 옆자리의 상실감을 실감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신 줄을 놓아 슬픔과 허망함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결과일 것이다.
죽음은 운명이나 죽음의 빈자리는 현실이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지만 현실은 부딪혀 이겨내야 하는 생존의 문제다. 결국 산 자에게 죽음과 죽음의 빈자리는 가혹한 것이다.
장모와 세 딸과의 동반 여행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도록 딸들과의 행복 여행을 기다리는 설렘에 밤잠을 설칠 장모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