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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거장에서

28. 부모는 자식의 119 구조대

by 박인권

28. 부모는 자식의 119 구조대


#부모의 마음

자식은 부모가 되어 제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상대방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실상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출산(出産)할 때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안간힘을 쓴다. 산통(産痛)은 배에서 쥐가 나고 끊어질 듯 아픈 느낌이라 복통을 유발한다는데 통증의 강도가 죽을 만큼 심하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볼 때는 밤잠을 설치며 애간장을 태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는 또 어떤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마음은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그때와 다를 바 없다. 모성애(母性愛)의 애틋함에는 유효 기간이 없다. 부성애(父性愛)라고 다르지 않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내리사랑이다. 천륜지정(天倫之情)이란 그런 것이다.


5월 5일 어린이날, 모처럼 네 식구가 다 모였다. 열 달 만이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으련만 다들 사는 게 바빠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아들은 툭하면 프로젝트에 매달리느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딸은 근무일과 쉬는 날이 들쑥날쑥해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다. 각자 직장 근처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는 아들과 딸이 1시간 남짓 거리인 집을 함께 찾는 날은 그래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딸이 준비한 어버이날 기념 카네이션꽃. 카네이션꽃을 고르면서 딸은 아마 집사람과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들과 딸의 마음 씀씀이

집 근처 식당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어버이날이 코앞이라 딸이 화사하고 멋진 카네이션꽃을 준비했다. 꽃병에서 길게 고개를 내민 카네이션 꽃잎의 붉은빛에 시선이 뺏겼다. 작년에 딸이 건넨 카네이션 꽃다발은 풍성하면서 화려했고 이번의 카네이션 꽃병은 소담스러우면서 정이 갔다. 딸은 카네이션을 고르면서 엄마 아빠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들보다 먼저 온 딸이 갑자기 대형서점 문화상품권 얘기를 꺼낼라 치자, 옆에 있던 집사람이 손사래를 쳤다. 그것은 곧 하던 대로 하라는 무언(無言)의 신호였고 딸도 이내 수긍하는 눈치였다. 아마 딸은 마음속으로 상투적인 배려보다는 나름 뭔가 속정이 담긴 선물을 생각했을 듯싶은데 실용성에 무게를 둔 엄마의 뜻이 더 그럴듯해 이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선호하는 내 취향과 달리 디지털 방식의 선물 주고받기가 더는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아들과 딸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느낄 때마다 혼탁한 세파(世波)에 할퀴여 도드라진 생채기와 멍도 잊을 수 있어 고마웠다.


가끔 들르는 장어구이 식당은 갈 때마다 빈자리가 없었고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연휴 기간이라 평소보다 사람들로 더 붐볐다. 반주(飯酒)를 곁들여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장어를 네 식구가 모처럼 배불리 먹었다. 근처 카페에 들를까, 했으나 아들의 제안으로 맥주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취기(醉氣)가 올랐다.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집사람 대신 나를 닮아서인지 아들과 딸은 웬만큼 술을 마신다.


집 근처 장어전문점에서 네 식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장어구이를 배불리 먹었다.


흥에 겨워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사이 맥주가 동이 났다. 진열장 속 양주를 꺼냈다. 아들은 술이 센 편이고 딸도 약한 편은 아니다. 딸은 생각보다 양주를 잘 마셨다. 순한 술보다 독주(毒酒)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딸의 표정에서 가끔 내비치던 이직(移職)에 대한 고민이 읽혔다. 학창 시절부터 영리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해온 딸의 심성과 판단을 지지해 왔기에 어떤 길을 택하든, 이번에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응원할 참이다. 딸처럼 아들도 분명 혼자만의 고민이 없지는 않을 터인데 이렇다 할 내색을 하지 않아 짐작만 할 뿐이다.


아들과 딸은 평소보다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손수 차를 몰고 데려다주려는 집사람을 만류한 아들이 콜택시를 불렀다. 밤이 이슥한 시간, 괜스레 고생할 엄마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였을 것이다. 아들과 딸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대문 밖을 나서는 막내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듯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아들과 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딸과 심야(深夜) 드라이브 데이트를 할 수 없게 된 집사람이 못내 서운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아들과 딸을 자주 보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나도 아들과 딸의 나이 때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러려니 한다. 자식이 있는 곳이면 부모는 어디든지 달려간다. 부모는 자식의 119 구조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속내는 다 똑같을 것이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아들과 딸의 어릴 때 사진에 눈길이 갔다. 아들과 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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