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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의 미학(美學)

축구 14. 진기록의 산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by 박인권

축구 14. 진기록의 산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무작위성의 원리가 여러 곳에서 수시로 꿈틀대는 축구에서 한 팀이 6골 이상을 득점하는 대량 득점 경기가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100년 동안에 벌어진 22차례의 월드컵에서 일어난 대량 득점 경기는 모두 38회. 월드컵 통산 960경기 대비 3.96%의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 100경기당 4경기꼴이다. 그런 점에서 고작 26경기가 열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 대회에서 대량 득점 승부가 7차례나 벌어진 점은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대사건이다. 파상적인 공격 축구가 위세를 떨친 1950년대의 다른 두 월드컵(1950년 브라질 월드컵,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상 3회) 보다도 두 배가 넘는 기록적인 수치다.


스위스 월드컵의 대량 득점 경기 비율은 자그마치 26.9%로 두세 경기마다 골 잔치가 벌어져 팬들을 열광시켰다. 게임당 평균 5.39골로 축구의 묘미인 골 세례가 이례적으로 과잉 생산된 대회이니만큼 각종 진기록도 홍수를 이뤘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3조 우루과이-스코틀랜드전. 우루과이가 7-0으로 완승했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한 경기 최다 골(12골)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최다 골은 12골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8강 결선 토너먼트에서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7-5로 물리친 경기로 현재까지 유일하다. 아마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이다. 한 경기 11골은 세 차례(▲1982년 스페인 월드컵 조별리그 3조 헝가리 10-1 엘살바도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2조 헝가리 8-3 서독, ▲1938년 프랑스 월드컵 토너먼트 1회전 브라질 6-5 폴란드), 10골은 한차례(▲1958년 스웨덴 월드컵 조별리그 2조 프랑스 7-3 파라과이), 9골은 다섯 차례(▲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2조 헝가리 9-0 한국, ▲1974년 서독 월드컵 조별리그 2조 유고슬라비아 9-0 자이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2조 플레이오프 서독 7-2 터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조별리그 1조 아르헨티나 6-3 멕시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3, 4위전 프랑스 6-3 서독).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12골 경기뿐 아니라 11골 경기와 9골 경기도 세 차례 벌어져 골 풍년 대회를 실감케 한다.


한 경기에서 양 팀이 12골을 주고받으려면 얼마 만에 한 골씩 터져야 할까. 인 플레이 상태에서의 실제 경기 시간(Actual Playing Time)은 전 후반 90분의 경기 시간보다 훨씬 짧다. 경기 시간에는 코너킥과 프리킥 등 세트 피스 준비, 골 세리머니와 킥오프 준비, 터치 아웃, 파울 상황, 페널티킥 상황, 선수 교체 상황까지 실제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는 시간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서독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준결승에서 오스트리아를 6-1로 완파하고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 오스트리아는 3, 4위 결정전에서 우루과이를 3-1로 누르고 월드컵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인 3위를 차지했다.


축구 규칙과 경기 방식을 정하는 의사결정 기구인 IFAB(국제축구평의회)에 따르면 전 후반 90분 경기에서 세트 피스 상황, 골 세리머니와 킥오프 상황, 터치아웃, 반칙 상황, 페널티킥 상황, 선수 교체 상황 등을 뺀 실제 경기 시간은 60분 남짓이라고 한다. 역대 월드컵 한 경기 최다 골인 12골(7-5경기)이 성립하려면 산술적으로 5분 만에 한 골씩 터져야 하는 셈이다. 골키퍼의 선방과 골대 또는 크로스바 징크스, 키커의 실축 등의 변수로 득점 기회가 무산되는 것까지 고려하면 5분보다 더 짧은 주기로 골을 넣어야 12골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분데스리가에서 전반에만 8골이 쏟아진 이례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2025년 4월 20일(한국시간) 베를린-슈투트가르트전에서 전반에만 8골(4-4)이 터져 분데스리가 전반전 신기록을 세웠다. 전반전 최다 득점 종전 기록은 7골. 한 경기 최다 골 기록 경신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으나 양 팀 모두 후반에 한 골도 추가하지 못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기대감으로만 끝났다. 분데스리가 한 경기 최다 골도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12골이다. 월드컵에서 한 차례뿐인 한 경기 12골은 분데스리가에서 다섯 차례나 작성됐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브라질-멕시코의 조별 라운드 경기. 브라질이 5-0으로 완승하며 조 1위로 8강에 올랐으나 헝가리에 2-4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 본선은 아니지만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승부는 31-0이다. 2001년 4월 11일 벌어진 2002년 한일 월드컵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호주가 아메리칸 사모아를 상대로 기록했다.


*최다 점수 차 경기(9점 차)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 라운드 2조 경기에서 당대 최강 헝가리는 한국을 9-0으로 꺾었다. 9-0 경기는 1974년 서독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20년 만에 재현됐다. 유고가 아프리카의 축구 변방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 9-0승을 거뒀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조별리그 3조 경기에서 헝가리는 엘살바도르를 10-1로 녹아웃시켰다.


8골이 터진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4조 잉글랜드-벨기에 경기 장면. 두 팀은 4-4 무승부를 기록해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4-4 경기는 역대 월드컵에서 단 두 차례만 기록됐다. 나머지 한 경기는 1962년 칠레 월드컵 조별리그 1조 소련-콜롬비아전.


*한 대회 최다 대량 득점 경기(7회)

스위스 월드컵에서 작성된 대량 득점 경기의 유형은 9-0, 8-3, 7-5, 7-2, 7-0(2회), 6-1 여섯 가지로 횟수는 7회다. 조별리그 2조 경기에서 터키가 한국을, 3조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스코틀랜드를 각각 7-0으로 따돌렸다. 준결승에서 서독은 오스트리아를 6-1로 물리쳤다. 9-0, 8-3, 7-5, 7-2는 위 *한 경기 최다 골 내용 참조.


*게임당 평균 최다 골 대회(5.39골)

26경기에서 무려 140골이 나와 게임당 평균 5.39골을 기록했다. 역대 월드컵 통산 게임당 평균 2.83골(960경기 2,712골) 보다 두 배(1.9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7차례의 대량 득점 경기 외에 5-0(조별리그 1조 브라질-멕시코, 조별리그 3조 오스트리아-체코), 4-1(조별리그 2조 서독-터키, 조별리그 4조 이탈리아-벨기에, 조별리그 4조 플레이오프 스위스-이탈리아), 펠레 스코어인 3-2(조별리그 1조 프랑스-멕시코, 결승 서독-헝가리), 4-4(조별리그 4조 잉글랜드-벨기에), 4-2(8강전 우루과이-잉글랜드, 헝가리-브라질, 준결승 헝가리-우루과이) 등 5골 이상의 다득점 경기가 11차례 펼쳐졌다. 대량 득점 경기와 다득점 경기의 비중이 69.2%(26경기 중 18경기)를 차지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11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오른 헝가리의 산도르 콕시스.


*2경기 연속 해트트릭

1950년대 헝가리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산도르 콕시스(1929~1979)가 수립한 월드컵 최초의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이다. 콕시스는 조별리그 한국전과 서독전에서 각각 3골과 4골을 작렬시키는 등 4경기 연속 득점을 올리며 11골로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혼자서 팀 득점(27골)의 40.7%를 책임진 것이다. 스위스 월드컵 한 대회의 득점만으로 역대 월드컵 통산 득점 순위 8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골 감각을 발휘했다.


*조별리그 참패 후 결승전 리턴매치에서 승리

서독은 조별리그 2조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헝가리에 3-8로 참패했으나 결승에서 다시 만나 0-2로 뒤지다 3-2로 뒤집는 기적 같은 역전 우승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역대 월드컵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두 차례나 맞붙은 서독과 헝가리. 조별리그에서 3-8로 참패를 당한 서독은 결승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3-2로 헝가리를 눌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초의 TV 녹화중계

1954년 스위스 대회는 최초로 TV 녹화중계가 이뤄진 월드컵이다. 월드컵 축구의 위성 생중계는 1966년 잉글랜드 대회 때부터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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