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15. 역대 월드컵 이색 기록
축구 15. 역대 월드컵 이색 기록
종착점을 알 수 없는 둥근 공의 향방, 키커의 의지와 전술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경기 양상, 예측불허의 돌발변수 출몰, 객관적인 전력 지표가 무색해지는 우연성의 상시 작동…….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규칙의 틀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승부의 이면에는 호시탐탐 이변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쇼가 벌어지는가 하면 진기명기를 방불케 하는 명승부가 펼쳐지기도 한다.
스포츠의 세계는 선수들이 흘린 땀과 투지와 노력과 열정을 환희와 감동과 탄식과 눈물로 탁본(拓本)한 각본 없는 드라마다. 절대 강자가 절대 약자를 누르는 뻔한 승부도, 희박하지만 절대 약자가 절대 강자를 쓰러뜨리는 기적 같은 뒤집기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성이라는 이름의 무작위성이 잠재된 스포츠 세계, 특히 축구 경기의 속성 때문이다.
*6-1경기의 의외성
월드컵 현장에서 특이한 승부와 이색적인 기록이 눈에 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령 좀처럼 나오기 힘들 것 같은 6-1 승부가 11차례나 된다는 사실이다. 6-1경기는 낯설다. 한 팀이 한 경기에서 6골을 넣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5골 차로 상대 팀을 누르기는 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다. 6-1경기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다.
브라질이 스페인을 6-1로 대파한 19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 결선리그.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아르헨티나 : 미국, 우루과이 : 유고, 이상 준결승) 때부터 1950년대(19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 결선리그 브라질 : 스페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준결승 서독 : 오스트리아,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조별리그 체코 : 아르헨티나)~60년대(1962년 칠레 월드컵 조별리그 헝가리 : 불가리아), 80년대(1986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덴마크 : 우루과이)~90년대(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 : 카메룬,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스페인 : 불가리아)는 물론 2018년 러시아 대회(조별리그 잉글랜드 : 파나마)와 가장 최근의 2022년 카타르 대회(16강전 포르투갈 : 스위스)까지 망라돼 있다.
더구나 한 팀이 한 경기에서 6골 이상 넣은 대량 득점 경기(38회)의 29%가 6-1경기(11회)라는 점은 뜻밖이다. 6-1경기의 뒤를 잇는 대량 득점 경기가 6-0, 7-0경기인데 둘 다 5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6-1경기의 특이성은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6-1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벌어진 현상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축구 경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우연성이 작용한 결과라 논리적인 분석이 허용되지 않는다.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승부의 세계에서 이변이 속출하고 모두의 예상을 깨는 돌발변수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6-1경기의 의외성은 또 있다. 6-1경기는 3-3경기(6회)와 4-3경기(3회)보다도 많고 4-4경기(2회)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3이나 4-3경기의 현실성이 6-1경기보다 높을 것이란 선입견과는 다른 결과다. 6-1경기는 5-0과 5-1(이상 7회), 5-2(9회), 5-3(1회) 경기 등 5점대 승부보다도 많았다. 역시 우연성의 원리는 알 수 없는 퍼즐 게임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브루차가가 후반 38분 마라도나의 도움을 받아 우승을 결정짓는 세 번째 골을 넣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서독을 펠레 스코어인 3-2로 물리쳤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펠레 스코어
역대 월드컵 통산 960경기를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한 경기에서 5골 이상 터진 경기는 모두 163회로 확인됐다. 한 경기에서 5골 이상 나온 다득점 경기 중 3-2는 ‘펠레 스코어’로 불린다. 펠레가 가장 재미있는 축구 경기는 3-2 승부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월드컵에서 3-2 경기는 모두 42회 펼쳐졌다. 제법 많아 보이나 월드컵 전(全) 경기와 비교하면 4.4%에 불과해 자주 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승부임을 알 수 있다.
월드컵 결승에서 3-2로 승부가 갈린 것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서독-헝가리)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아르헨티나-서독), 단 두 차례뿐이다. 5골 이상의 골이 기록된 월드컵 결승은 펠레 스코어를 포함해 모두 8차례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우루과이 4-2 아르헨티나), 1938 프랑스 월드컵(이탈리아 4-2 헝가리), 1958년 스웨덴 월드컵(브라질 5-2 스웨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잉글랜드 4-2 서독), 1970년 멕시코 월드컵(브라질 4-1 이탈리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아르헨티나 3-3 프랑스).
*한 팀의 한 경기 최다 골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 한 팀이 10골 이상을 넣은 경기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차 조별리그 3조 경기에서 헝가리가 엘살바도르를 10-1로 격파한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헝가리는 1승1무1패 조 3위로 12강이 겨루는 2차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단일 대회 개인 최다 득점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1933~2023)은 혼자서 무려 13골을 터뜨리며 독보적인 득점왕에 올랐다. 득점 공동 2위인 브라질의 펠레(1940~2022)와 서독의 헬무트 란(1929~2003 이상 6골)에 7골이나 앞선 압도적인 골 결정력이었다. 퐁텐은 조별리그에서부터 3, 4위전까지 두 차례나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6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이어가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했다.
한 대회 득점 기록만으로 월드컵 통산 득점 공동 4위를 지키고 있다. 단일 월드컵 최다 득점 2위는 헝가리의 산도르 콕시스(1929~1979,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1골), 3위는 독일의 게르트 뮐러(1945~2021,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0골).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득점왕 쥐스트 퐁텐의 경기 모습. 퐁텐은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6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며 13골을 터뜨렸다. 퐁텐의 13골은 단일 월드컵 개인 최다 골 신기록으로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역대 월드컵 통산 득점 순위는 1위 미로슬라프 클로제(1978~ 독일, 16골), 2위 호나우두(1976~ 브라질, 15골), 3위 게르트 뮐러(14골), 4위 리오넬 메시(1987~ 아르헨티나), 쥐스트 퐁텐(이상 13골), 6위 펠레, 킬리안 음바페(1998~ 프랑스, 이상 12골), 8위 산도르 콕시스, 위르겐 클린스만(1964~ 독일, 이상 11골)의 순이다.
클로제는 4차례(2002, 2006, 2010, 2014), 호나우두는 3차례(1998, 2002, 2006), 뮐러는 2차례(1970, 1974), 메시(2006, 2014, 2018, 2022)와 펠레(1958, 1962, 1966, 1970)는 각각 4차례, 음바페는 2차례(2018, 2022), 클린스만은 3차례(1990, 1994, 1998)의 월드컵을 통해 각각 해당 골을 기록했다.
*2경기 연속 해트트릭
월드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단 2명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조별리그 2조 경기에서 헝가리의 산도르 콕시스가 한국(9-0승)을 상대로 3골을 넣은 데 이어 서독전(8-3승)에서는 4골을 기록해 월드컵 사상 첫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의 주인공이 됐다. 두 번째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D조 불가리아전(5-2승)에 이어 페루전(3-1승)에서 연거푸 3골을 작렬시킨 서독의 게르트 뮐러가 재현했다. 콕시스와 뮐러 모두 해당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 결선리그 3차전에서 우루과이의 후안 스키아피노가 후반 21분 동점 골을 터뜨리는 장면. 우루과이는 후반 34분 알시데스 기지아가 역전 결승 골을 넣은 데 힘입어 2-1승을 거두며 두 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최소 경기 월드컵 우승
1950년 브라질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월드컵 사상 최소 경기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우루과이는 조별리그 한 경기, 4강 결선리그 세 경기 등 단 네 경기만 치르고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브라질 월드컵은 16개 본선 진출국 중 기권하는 팀이 속출하는 바람에 기형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본선행이 결정된 튀르키예(당시 터키)와 인도, 스코틀랜드가 기권하고 이들의 대체 국가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던 프랑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마저 기권 등의 이유로 불참하자 13강 조별리그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경기가 벌어졌다.
결국 조별리그 대진은 1조와 2조 각각 4팀, 3조 3팀, 4조 2팀으로 확정됐다. 4조에 속한 우루과이는 볼리비아를 8-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한 경기만 치른 채 조 1위로 4강 결선리그에 진출하는 행운을 안았다. 조별리그 한 경기만으로 조 1위에 오른 것도 우루과이가 유일하다.
4강 결선리그 1차전에서 스페인과 2-2로 비긴 우루과이는 2차전에서 스웨덴을 3-2로 누른 데 이어 우승이 걸린 마지막 3차전에서 절대 열세의 예상과 달리 홈팀 브라질에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두며 2승 1무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루과이는 1930년 초대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월드컵 정상 고지를 밟았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 결선리그 홈팀 브라질과 우루과이전이 열린 마라카낭 경기장. ⓒArquivo Nacional / 브라질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비기기만 해도 월드컵 첫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의 역전패는 나라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라 마라카낭의 비극이라 불린다. 브라질은 4강 결선리그 1차전에서 스웨덴을 7-1로, 2차전에서 스페인을 6-1로 격파하는 막강한 전력에다 홈그라운드의 이점까지 안고 있어 우승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브라질은 조별리그 포함, 결선리그 2차전까지 5경기에서 4승1무 21골 게임당 4.2골의 최강의 공격력을 기록하고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스포츠계의 격언은 틀린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