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거장에서

31. 손 편지

by 박인권

31. 손 편지


빨간 우체통의 추억

창조와 도전 정신의 결실은 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삶의 질을 개선한다.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고 사람들이 열광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이 낳은 업적은 세상의 판을 뒤흔든다. 컴퓨터가 그렇고 인터넷이 그렇고 스마트폰이 그렇다. 의사소통 수단에도 변화의 물결이 넘실댄다. 휴대 전화의 등장으로 공중전화가 설 땅을 잃은 지 오래다.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이라는 디지털 메신저의 보급으로 손 편지는 구시대의 희귀한 유물이 됐다. 그렇다고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마저 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느림의 미학과 낭만적 운치의 흔적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된다.


강릉 바닷가에서 빨간 우체통을 보았다. 몇 해 전,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길에서다. 안목 해변 백사장 가운데에서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체통은 온종일 바다만 바라본다. 떠밀리듯 밀려오는 파도 너머로 과거의 영광이 주마등처럼 스쳐서일까. 빨간 옷을 차려입은 우체통이 옛 추억을 토해낸다.

메신저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공공 시설물인 빨간 우체통에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아날로그 시절, 의사소통과 정서적 교감의 요람(搖籃)이었던 우체통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거리 곳곳에서 강렬하게 시선을 끈 빨간 우체통이 아니던가. 존재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이심전심의 징검다리인 우체통은 우편 문화의 상징이요 생활 속 온 국민의 벗이었다.


우체통 주입구에 방금 쓴 편지를 밀어 넣을 때의 짜릿한 성취감을 잊을 수 없다. 손끝을 떠난 편지가 우체통 밑바닥에 안착했다는 청각 증거인 툭, 소리가 들리는 순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밤새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워 완성한 편지다.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잠 못 이루는 밤은 며칠이고 계속된다. 편지가 무사히 배달되기를 바라고 편지를 읽고 난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바심을 내며 하루속히 답장을 받아보고자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것이다.


몸으로 새긴 지적 호소

우체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손 편지인 이유다. 편지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 편지는 몸을 굴려 새긴 지적 호소로 국민적 소통 채널이었다. 쓰는 이의 절절한 마음과 감정, 정성을 편지지 위 손 글씨에 탁본을 뜨듯이 이입한 손 편지에는 낭만과 멋, 따스한 온기가 깃들어있다. 사람마다 글씨의 모양새가 다르듯, 손 편지는 개성과 끼의 결정체이자 감성의 언어다. 예쁘고 멋진 타고난 재능 덩어리의 글씨체, 획의 꺾임이 두드러져 의도적인 노력의 낌새가 엿보이는 글씨체, 세로획이 걀쭉해 편지지의 칸을 넘나드는 글씨체, 반듯하고 뭉툭한 글씨체, 깨알과도 같은 작은 글씨체, 큼직큼직하게 편지지의 칸을 꽉 채운 글씨체, 빠르게 흘려 쓴 글씨체처럼 글씨체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기질이 증명서처럼 반영돼 있다.


학창 시절, 편지를 쓰는 학생들은 문학 소년이고 문학소녀였다. 좋아하는 시나 수필의 구절을 자기 것처럼 가져다 쓰고, 속담과 서양의 격언을 늘어놓았다. 흑백 편지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일까. 강조하고 싶은 구절을 색색의 컬러 볼펜으로 써 내려가 읽는 이의 시선과 관심을 잡아두고자 했다. 갈고닦은 재능으로 편지 구석구석에 기발하고 깜찍한 손 그림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 모두가 손 편지에 서정적 감흥을 불어넣는 발랄하고 풋풋한 청춘의 모습이고, 진솔한 심정의 맨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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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의 영화(榮華)

손 편지의 사연도 다양하다. 친구끼리의 유대감을 다지는 우정의 편지, 연인 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연애편지, 혼자만의 속내를 마침내 고백하는 짝사랑 편지,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할 이별의 편지, 가족이나 친지의 근황을 묻는 안부 편지, 감사의 마음을 담은 답례 편지,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신년 하례 편지, 이름 모를 국군 장병에게 띄우는 위문편지, 업무상 정보를 주고받는 비즈니스 편지까지 손 편지는 각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육필(肉筆) 메신저였다. 전성기 시절, 손 편지는 개인의 인생사요 파편화된 역사였다. 사실과 정보, 주장과 의견, 느낌과 소망, 희로애락의 애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손 글씨에 용해된 감정의 용광로였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기술의 파생상품, 이메일이 등장하면서 손 편지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식기 시작했고 우체통의 쓸모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다. 빛의 속도로 쌍방 대화가 가능한 카카오톡과 문자 메시지가 개발되면서 손 편지의 기력은 더욱 힘에 부쳤다. 아날로그의 번거로움을 일거에 덜어낸 편의성과 실시간 소통이라는 정보의 유통 방식 앞에서 손 편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손 편지의 영화(榮華)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위안이라면 옛것을 밀어낸 새것도 언젠가는 옛것이 되고,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있어도 정서적 위안과 감동마저 내몰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굴지의 대형 서점이 해마다 개최하는 손 글씨대회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열한 번째인 올해 참가자가 역대 최고치인 7만 5천여 명을 기록했다니, 사위어 가는 아날로그 문화의 불씨를 지피는 듯 해 다행이다. 따뜻한 감성과 세상에 하나뿐인 독창성, 인간미와 정감, 설렘과 심미성이 응축된 손 글씨의 낭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효용성이 떨어졌다고 가만있을 우체통이 아니다. 편지 등 일반 우편물은 물론 작은 소포도 부칠 수 있게끔 기능성이 확장되고, 폐의약품과 다 쓴 커피 캡슐을 수거하는 분리수거함 역할까지 해내는 친환경 에코 우체통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체통 속 내용물의 용량과 위치추적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우체통도 등장했다. 2025년부터 시작된 빨간 우체통의 변신이다. 아날로그 시절의 정취와 흥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방식으로 해석한 우체통의 생존 전략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아버지의 손 편지

대학 시절, 고향의 아버지는 한 달 걸러 한 번씩 서울 하숙집으로 손 편지를 부쳐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공부도 한 때니, 공부 열심히 해라.” 사사롭지만 아들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은 아버지의 손 편지를 읽을 때마다 속내를 들켰다 싶어 당혹감이 들다가도 스스로와의 다짐은 매번 그때뿐이었다. 아버지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썼고 나는 간헐적으로 답신을 보냈다. 아버지는 진심이었고 나는 진심인 척했다.

아버지는 말보다 글의 힘을 믿었다. 말기 암과 투병 중일 때도 아버지는 손 편지를 남겼다.

“덧없는 인생이다. 열심히 살아라. 담배는 끊는 게 좋겠다….”

장례식이 끝나고 어머니가 전해준 편지를 읽고서도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낼 수가 없어 목이 메었다. 한자투성이인 아버지의 글씨는 모진 세파를 헤쳐온 듯, 꺾이고 휘어진 모양새다. 자수성가한 젊은 나이에 생각지도 않은 인생의 쓴맛을 본 뒤 이어진 기나긴 곡절이 몸으로 반응한 결과일 것이다. 보관 중인 아버지의 인생 일지(日誌) 노트를 꺼냈다. 부모님과 우리 3형제의 삶이 축약된 기록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굴곡진 역정이 화석처럼 새겨진 육필 증언이다. 노트 속에서 대학생일 때와 신입 사원 때 내가 쓴 편지가 철해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세상 아버지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주말마다 동네 산책로를 걷는다. 오는 길에 우체국 앞 빨간 우체통을 늘 지나친다. 멀리서 찾아온 옛 친구를 보는 것처럼 반갑다. 지난 주말 산책길은 조금 더 특별했다. 기억 속에 박제된 그리운 향수를 하나씩 불러내 추억을 되새기고 새 생명을 꿈꾸는 우체통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물질문명의 질주를 다독이는 정서적 풍요의 시대가 네 잎클로버처럼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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