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일기

25. 카투사 선임 병장(SENIOR KATUSA)

by 박인권

25. 카투사 선임 병장(SENIOR KATUSA)


자재관리 중대와 본부중대의 통합

병장으로 진급하고 두 달쯤 지날 무렵, 중대 카투사들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신경전의 배경은 신임 카투사 선임 병장 추천을 둘러싼 힘겨루기. 그 사연은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대의 카투사 편제 확대 개편설이 현실화하면서 자재관리 중대와 본부중대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새 중대의 이름은 본부 자재관리 중대. 서로 다른 중대 소속이던 카투사들이 느닷없이 한 지붕 아래 한 식구가 됐으니 다툼의 여지가 없을 리 없었다.


우선 각기 20여 명이던 중대 카투사 규모가 거의 50명 수준으로 비대해졌다. 통상적인 1개 중대의 카투사 인원이 15~20명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중대원들에 대한 효율적인 통솔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계급 분포의 과부하는 더욱 심각했다. 이병과 일병보다 상병과 병장이 더 많은 역피라미드형. 무엇보다 병장만 20명이 넘는 기이한 구조는 상하 계급 간의 효과적인 소통과 생활관 규율 확립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일과 후 활동 공간인 생활관 풍습이 다른 점도 또 다른 마찰의 원인이었다.


두 중대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복무 환경이 해체돼 생소한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내무반장 역할을 하는 선임 병장의 권한과 책임이 더욱 막중해지게 됐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중대 카투사에 대한 전반적인 통솔권을 행사하는 선임 병장이 누구인지는 중대원들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중대 통합 전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 카투사가 선임 병장인 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일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선임 병장 선출에 중대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시의 관행은 전임 선임 병장이 후임 선임 병장을 미군 중대장에게 추천하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후임 선임 병장의 임명 여부가 전임 선임 병장의 의중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통합 후 초대 선임 병장이 된 전임 선임 병장은 본부중대 출신이었다. 그가 내심 본부중대 후배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자재관리 중대 출신 카투사들은 궁리 끝에 형평성에 바탕을 둔 기회균등이라는 명분론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번에 본부중대 출신이 선임 병장이 됐으니, 이번에는 자재관리 중대 출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성에도 부합하고 통합의 취지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건의했다. 본부중대 일부 카투사들이 반발했으나 전임 선임 병장으로서도 원칙론의 대세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선임 병장으로 보임(補任)

옛 자재관리 중대원들의 지지 속에 병장 3호봉 때 통합 중대의 2대 선임 병장으로 보임된 나는 이날부터 제대할 때까지 미군 중대 인사과 사무실(Orderly Room)에서 근무했다. 카투사 선임 병장은 미군 중대 인사과에서 유일한 한국군이다. 카투사들의 근태와 근무 환경 점검, 생활관 실태, 미군들과의 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직책이다. 부사관급 분대장 예우를 받는다. 그러나 선임 병장 휘하의 카투사 인원이 50명이나 돼 사실상 소대급이라 할 수 있다.


미군들은 카투사 선임 병장을 시니어 카투사로 불렀다. 부대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업무강도는 대체로 느슨한 편이다. 카투사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게 주 임무라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원들의 일탈 행위만 없다면 꿀 보직이라 할만하다. 직속상관은 주임 상사와 중대장. 그 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 운신의 폭이 넓고 자유로워 시간적 여유가 많다. 특히 재량권을 대폭 인정한 주임 상사와 중대장 덕분에 PT(Physical Training) 등 각종 훈련이나 행사에 대한 참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신경 쓴 대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대원들 간의 이질감을 시급하게 해소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하 계급 간의 역삼각형 구조에서 초래될 수도 있는 선임급들의 기강 해이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일과 후 단체미팅과 전체 회식 등 중대원 모두가 참여하는 소통의 자리를 수시로 마련하고 병장을 갓 단 예닐곱 명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계급별 책임자를 지정해 주례 및 월례 모임을 열고 중대원들의 민원을 파악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의 소지가 유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다행히 중대원들 모두 생활관 규율 준수에 적극 협조하고 병장을 중심으로 한 선임들이 솔선수범한 덕택에 통합 중대는 빠르게 원팀으로 연착륙했다.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음습한 생활관 문화에도 변화를 꾀했다. 군기 확립 목적의 최소한의 얼차려만 허용하고 일체 체벌을 금지했다. 신병에게 강요한 단체미팅 주선 관행도 폐지했다.


기묘한 메모

선임 병장 말년에 흥미로운 일도 있었다. 인사과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책상 위에 이런 내용의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If you are rich, call me.” 메모 아래에 적힌 연락처를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메모한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선임 병장 임기를 마치고 전역 예정 카투사들을 대상으로 한 2박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끝으로 27개월 간의 군 복무를 마감했다. 휴전선 근처의 땅굴과 모 전자 회사 견학 등으로 꾸며진 오리엔테이션 행사 때 육군훈련소에서 만난 옛 전우들을 다시 만났다.


전역 인사차 선임 병장 보임 전까지 근무한 팀을 방문했을 때 중사 계급의 미군 팀장은 이런 농담을 걸어왔다.

“박 병장, 내가 볼 때 너는 군대 체질이다. 원한다면 미군 부대에 남게 해주겠다.”

한 번으로 족한 군 생활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카투사 일기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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