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매미
32. 매미
매미의 울음소리
매미 울음소리는 집요하다. 성격 탓이 아니다. 7일간의 삶, 짧은 생의 절박감을 토하느라 결기에 차 있다. 불볕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8월 초순, 매미의 사자후(獅子吼)도 덩달아 노골적이다.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온몸이 부서지라 쥐어짜 내지르는 매미 울음소리에 힘이 떨어지면 먼발치의 가을이 실루엣처럼 어른거린다. 매미 떼의 울음은 독립적이면서 경쟁적이다. 종(種)마다 울음소리가 독특하고 우렁차다. 한 놈이 악을 쓰면 다른 놈도 악을 쓰고 또 다른 놈은 더 크게 소리 지른다.
울음소리는 종족 번식을 위한 수컷들의 구애(求愛) 행위라 처절하고 절실하다. 꾀부리고 한눈팔 시간이 없다. 행여 자기보다 목청 큰 딴 놈이 사랑의 과실을 차지할까, 잠시도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울어댄다. 허공을 휩쓸며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매미 떼의 울음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영원할 것만 같던 매미 떼의 장엄한 합창도 입추가 물러가고 처서가 길게 목을 빼 고개를 내밀 때쯤 밑바닥을 드러낸다.
7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 세상으로 나온 지상의 삶이 아니던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성취라 매미인들 소중하지 않을까. 다만 매미에게 주어진 시간은 운명적이라 그들 스스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 슬퍼하고 한숨짓느니 차라리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이고 자족할 반전의 기회로 삼아 다음 생을 기약한다. 뻣뻣하면 부러진다고, 삶의 무상(無常)과 맞서는 무모한 저항 대신 자연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생태계의 지혜다.
인간의 삶
길고 짧은 것이 대수이던가. 인간의 삶도 무상하기는 매한가지일 터. 젊은 나이의 지인이 죽었다는 부고를 받았다. 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후덥지근한 바깥 날씨와 달리 장례식장은 서늘했다. 외동아들 홀로 지키는 빈소다. 영정 사진 속에서 고인은 웃고 있다. 시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해맑은 눈길과 마주치자 참았던 슬픔이 울컥한다. 생전의 모습이 그와의 추억을 되살려서다.
간암 말기의 병마와 씨름한 마지막 1년은 몹시 외롭고 무서웠을 것이다. 고인(故人)의 일상이 멈춘 지금, 육신의 고통도 사라진 걸까. 죽은 이를 뒤로 한 문상객들의 일상은 그대로라 무상함이 더하다. 삶과 죽음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장례식장 풍경은 모순적이라 당혹스럽다. 고인의 부모는 상주(喪主) 대기실에서 새어 나오는 곡소리로 내키지 않는 기척만 할 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학생 아들도 눈물을 감추려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설움이 복받쳐 들썩이는 어깨는 어쩔 수 없다.
문상을 마친 귀갓길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더위를 먹어 펄펄 끓는 아스팔트 열기에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럴 땐 차라리 한숨을 돌리는 게 낫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물먹은 솜처럼 녹초가 된 몸도 식히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옛 동료와 맥주잔을 기울였다.
슬픔은 슬픔을 낳는 것일까.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새벽 야근을 끝낸 직장 동료의 소식이 끊겼다. 귀가했을 집에 동료는 없었고 이튿날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실종 신고한 다음 날, 동료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회사 근처 사우나의 수면실 간이침대에 반듯이 누운 동료는 잠든 모습이었다. 서른둘의 나이. 회사장(會社葬)으로 치르진 발인식에서 죽은 동료의 홀어머니는 외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가난한 농부의 삶에서 벗어났다 싶은 촌로(村老)의 단꿈도 무너졌다. 쓰러지기 며칠 전 괜한 일로 얼굴을 붉힌 기억이 가시처럼 돋아나 마음을 찌른다.
매미의 일생
때로 곤충의 생애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비장한 매미의 일생이 그러하다.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수주, 수개월~1년, 땅속에서 애벌레인 유충(幼蟲)으로 6~7년, 성충(成蟲)으로서의 수명은 길어야 한 달이 될까 말까. 생애 대부분을 애벌레로 산다. 알 속과 땅속의 삶은 미완성이라 인간도 미처 매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유충기를 꽉 채우고 세상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매미다워진다. 기나긴 인고(忍苦)의 터널을 뚫고 나와 어렵사리 어른벌레가 된 매미는 울음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매미의 울음은 자의식의 발로이자 짝짓기를 갈망하는 몸부림이다. 발성 기관이 없어 울지 못하는 암컷이 나무껍질 틈에 알을 낳는 시기도 이때다.
매미는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생물이다. 체온이 높아질수록 생기가 돌고 큰 소리로 울 수 있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한철 세상에 나와 종족 번식의 본분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수컷은 짝짓기에 성공한 뒤 죽고, 암컷은 산란한 뒤 죽는다. 매미의 짝짓기는 로맨틱한 애정 행각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사랑을 생명과 맞바꿔야 하는 절체절명의 선택이다.
맹렬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여름이 저물 때 울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던 매미 소리도 사라진다. 여름을 알리는 계절의 전령사 매미가 2억 년 전부터 이어온 한결같은 삶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매미의 성충기는 왜 이다지도 짧은 걸까. 매미는 나무에 붙어살아 활동 반경이 제한적이다. 수컷이 온종일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쉽게 위치가 노출된다. 사방에 널려있는 천적(天敵)을 만나도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다. 이럴 때 유전자 진화론이 힘을 발휘한다. 한꺼번에 대규모로 떼를 지어 출현해 잠깐 머물다 가도록 진화한 집단적이고 절제적인 삶. 개체 유지를 위한 매미만의 생존 방식이자 후손 보존의 방편이다.
매미가 지금보다 더 오래 살 욕심을 부렸거나, 번식 시기를 자의적으로 선택했거나, 암컷에 대한 구애 활동을 게을리했다면 그들의 삶도 온전치 못했을 것이고 생태계의 법칙에도 균열이 일어났을 것이다. 비움과 희생, 헌신의 개가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0여 종의 매미 중 개체 수로는 참매미가 으뜸이다. 매미란 이름도 참매미의 울음소리인 ‘맴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매미는 유충 때나 성충이 되어서도 이슬처럼 정갈한 나무줄기의 수액만 빨아먹고 성장한다. 탐내지 않고 헛짓하지 않는 매미의 성정(性情)대로다. 울음은 목숨이 다해야 끝나는데 그 기간이 세간에 알려진 7일보다는 길어 2~3주에서 한 달에 이른다고 한다.
유전자 보존의 숭고한 가치가 숨어 있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발성 기관인 복부의 진동막이 부르르 세차게 떨리면서 발생한다. 울 때마다 진동막이 들썩거린다. 소리를 내는 파동 에너지의 극대화를 위해 몸통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명실(共鳴室)을 텅 비운다. 현악기의 울림통과 같은 원리다. 진화론적으로 매미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서정적인 울림이 있는 이유다. 암컷을 홀리는 이중 장치다.
참매미는 낮고 느리나 길게 울고 덩치가 큰 말매미는 높고 빠르게 운다. 참매미의 사랑은 진득하고 말매미의 사랑은 성급하다. 참매미는 기온이 상승하는 새벽부터 아침에 울고, 말매미는 오후에 운다. 오랜 세월 유지돼 온 매미의 울음 공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열대야 현상과 밤을 낮처럼 비추는 조명등의 열기 탓이다. 한밤의 매미 울음은 수면 방해의 불청객이라 할만한데, 인간이 초래한 것이라 매미를 꾸짖을 일이 아니다. 짝을 찾는 간절한 사랑의 노래인 수컷 매미의 애잔한 울음은 여름 정취의 맨얼굴이자 계절의 언어다. 매미가 울면 여름이 오고 울음이 그치면 가을이 찾아온다.
생명체의 숙명
생전에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인간은 다 자기 명(命)대로 살다 간다고. 먼저 간 큰아들이 마음에 걸려서일까. 죽고 사는 것이 팔자소관이라는 말로 들린다. 심장 스턴트 시술이 끝나고 퇴원을 하루 앞둔 날, 어머니는 평소 바람대로 바람처럼 먼 길을 떠났다. 여름이 물러가고 매미도 자취를 감출 때였다.
문상객들은 장례식장에서 잠시나마 죽음을 화두로 생각에 잠긴다. 영국 작가 짐 크레이스는 ‘사람은 살기 시작하는 순간, 죽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삶의 유한성과 불확실성을 시사하는 놀라운 성찰이다. 인간뿐이랴.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죽음이 임박한 찰나의 승부에 매미가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우주 만물의 섭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만이 후손도 살고 생태계도 사는 길임을 알아챈 것이다. 공생과 번영의 정신이다.
지난여름 오후. 집으로 가는 아파트 경내 화단 가장자리에 매미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볼록한 배를 뒤집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초연한 모습이 나무에서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듯하다. 짧디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무소유의 생애다. 매미의 사체(死體)는 땅속에서 유기물이 되어 뭇 생명체에게 육신 공양(供養)의 은혜를 베풀 것이다. 비움과 나눔의 가치고 하찮은 미물(微物)이 주는 묵직한 교훈이다. 소임을 다한 매미는 덧없음을 붙잡지 말고 놓아주라 한다. 매미 위로 한 줌 흙을 덮어주었다. 7년 후, 이 매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도 선대(先代)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을 것이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풀 비린내와 흙 비린내가 한데 엉겨 피어오른다. 비에 놀란 매미 떼가 무아지경의 과업을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로 한숨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