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거장에서

34. 고향 가는 날

by 박인권

34. 고향 가는 날


사촌 형 부부에게 진 마음의 빚

오래전 사촌 형한테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한 나는 대학 3학년 1년간을 사촌 형 집에 머물렀다. 친동생이 아닌 사촌 동생을 한 집에 품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대 후반의 사촌 형수로서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을 텐데도 한 번도 내색하는 일이 없었다. 세 살 난 개구쟁이 아들에다 갓 태어난 둘째 아이를 보듬기에도 벅찼을 일상의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팔자에도 없는 남편의 사촌 시동생까지 뒷바라지하게 됐으니,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사촌 형과 사촌 형수의 마음은 내가 잘 안다. 나도 신혼 때 대학생인 처남을 거둔 적이 있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 처남은 합정동 신혼 살림집에서 학교에 다녔다. 처남이 서울의 모 대학에 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람을 통해 장인어른이 내 뜻을 물어왔다. 집사람의 큰아버지가 상도동에 살고 있지만 내 의중을 먼저 확인한 장인어른의 속뜻을 나는 이해한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할 때라 장인어른이라고 어찌 고심이 없었을까. 장인어른으로서는 아들을 큰집보다는 딸 집에 맡기는 편이 마음의 부담이 덜할 것이고 처남으로서도 큰집보다 누나 집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그런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집사람에게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지금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사촌 형과 사촌 형수에게 진 마음의 빚을 아직도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와 처남, 아들은 모두 같은 대학 동문(同門)이다. 나의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처남은 아들의 경제학과 선배이면서 둘 다 공인회계사라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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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100년이 된 구(舊)서울역사(현 문화역 서울 284). 경의선 전철을 타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 서울역에 갈 때 이용하는 노선이다.


수제 샌드위치

사촌 형수와 관련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던가. 사촌 형 부부는 대구의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의 골목길 안 아담한 주택에서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 가끔 사촌 형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사촌 형수가 손수 준비한 간식을 내놓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식빵을 4단으로 쌓은 사이사이에 익힌 달걀과 양상추, 잼과 햄을 넣어 만든 수제 샌드위치였는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한 입 베물자, 침샘을 자극하는 식빵의 향이 코끝을 파고들면서 황홀한 맛이 혀끝에 감겼다. 고소하면서 달콤하고 청량하면서 짭조름한 맛에 더해 부드러우면서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하나로 어우러진 난생처음 경험한 음식의 세계였다. 그때 먹은 수제 샌드위치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다 유명 제과점에서 파는 수제 샌드위치를 먹어봐도 46년 전에 매료된 맛의 신세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랜만에 대구에 거주하는 사촌 형과 사촌 형수, 사촌 형과 같은 동네에 사는 둘째 형을 만났다. 대구에 내려가기 3주 전, 전화 통화에서 사촌 형이 지난가을 전립선암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암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암세포가 전립선 내에 국한된 2기인 데다 수술 경과와 예후가 괜찮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전국적으로 올겨울 최강 한파가 맹위를 떨친 크리스마스 다음 날 해거름 수성구의 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숙소인 범어동의 호텔에서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운동 삼아 약속 장소까지 45분여를 걸어갔는데 온몸을 꽁꽁 싸맨 덕분에 견딜만했다. 바깥을 돌아다닐 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뙤약볕 아래의 한여름보다 그나마 겨울이 나은 이유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위를 살피는데, 먼발치에 사촌 형이 보였다. 오후 5시인데도 100평은 됨직한 널찍한 음식점 안이 이미 사람들로 북적대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둘째 형과 사촌 형수도 속속 합류하고 선약을 취소했다는 사촌 누나도 맨 늦게 자리에 앉았다.


3. 사촌 형수가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산소 주변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으로 만든 상주 곶감 20251231_104950.jpg

사촌 형수가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산소 주변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으로 만든 상주 곶감


메뉴는 숯불 장어구이. 음식점은 상호(商號)가 미남(味濫)인 민물장어 전문점인데 맛이 넘친다는 의미의 식당 이름이 빈말이 아니었다.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민물장어의 감칠맛에 이끌려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다들 실컷 포식했다.

손끝이 야무진 사촌 형수는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산소 주변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으로 만든 곶감 여남은 개를 헤어지기 전, 내 손에 안겼다. 곶감의 고장으로 유명한 상주 곶감이다.


장인어른에 대한 추억

하루 전 성탄절(聖誕節)에는 팔공산 기슭의 사찰인 도림사에서 운영하는 추모 공원 내 납골당(納骨堂)을 찾았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난 장인어른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도자기 유골함 옆 사진 속에서 정장 차림을 한 장인어른의 모습에서 나와 20년을 함께 한 지난 세월이 되살아난다. 사진은 망각(忘却)의 강 저편에서 추억을 길어 올리는 신묘한 힘을 발휘한다. 현실 세계의 한 찰나를 광학 기술이라는 문명의 힘을 빌려 영구 박제한 불멸의 흔적이다. 시간이 멈춘 한 장면의 실체를 그 모습 그대로 순간 포착한 사진은 그래서 삶과 역사의 강력한 시각적 증거다.

결혼 초창기, 일본 출장길에서 산 손바닥만 한 휴대용 TV를 장인어른께 선물로 드렸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안방에서 홀로 좋아하는 프로야구 경기를 마음껏 보시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사진 속 장인어른의 시간은 환갑 때에 멈춰져 있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젊은 날 못다 펼친 꿈을 하늘나라에서 이루시길 바란다.


1. 대구 팔공산 기슭의 사찰인 도림사에서 운영하는 추모공원 내 납골당  20251225_141935.jpg

대구 팔공산 기슭의 사찰인 도림사에서 운영하는 추모 공원 내 납골당(納骨堂). 장인어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지난해 봄 충북 단양 가족 여행 이후 모처럼 장모도 만났다. 나이 든 노인들이 으레 그렇듯, 장모도 무릎과 허리가 불편해 기동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또렷하고 임플란트의 힘을 빌린 치아 건강도 양호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드신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든을 넘기면서부터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한 장모가 홀로 지키는 처가를 예전처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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