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3. 편집국의 첫인상

by 박인권

3. 편집국의 첫인상


시장통 같은 편집국

광화문 프레스센터 5층. 편집국의 첫인상은 시장통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부서마다 TV가 켜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온갖 자료와 책더미, 원고 뭉치가 제멋대로 엉키어 산을 이루었다. 편집국 안에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고함과 족보에도 없는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신문사의 일상은 설레면서도 낯설었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기삿거리와 씨름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광경이 그랬고, 전화통을 붙들고 취재원과 스무고개 게임 하듯,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그랬다. 마감에 쫓기면서도 애꿎은 담배 연기를 뒤로 하고 원고지의 빈칸을 빛의 속도로 채워나가는 장면은 마냥 신기했다.


마감을 닦달하는 취재 부서 데스크, 원고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편집부 데스크, 부장 앞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크게 질책당하는 후배 기자, 큰소리로 다투는 편집 담당자와 취재기자, 마감 시간이 됐는데도 감감무소식인 현장 사진을 빨리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진부 데스크, 1면 헤드라인을 뽑느라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인상을 쓰는 편집자, 잔심부름하느라 사방팔방으로 불려 다니는 사환(使喚)들, 캐리커처 마무리 단계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에 빠진 그래픽 디자이너……. 마감이 임박한 편집국 안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지면(紙面)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의 활약상이 만화경처럼 빚어졌다.

전투를 치르듯,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오전 제작회의 후 정오 무렵 첫 번째 마감을 한 뒤 오후 제작회의에 이어 해거름에 두 번째 마감, 밤 10시쯤 세 번째 마감,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 최종 마감 등 선배 기자들은 하루 종일 시간에 쫓긴 채 송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 부서 데스크는 마감을 재촉하느라 고함을 질러댔고 편집부에서는 원고를 빨리 넘기라고 취재 부서에 대놓고 윽박질렀다.


기자들의 부산한 움직임은 마감 시간이 임박할 즈음 절정에 이르는데 야단법석 난장판이 따로 없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마감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의 편집국 풍경은 전혀 딴판이다. 조금 전까지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종적을 감추고 다음 마감을 준비하기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휴게실에서 바둑을 두면서 머리를 식히는 기자, 숙직실에서 자투리 잠을 청하는 기자, 무교동 사우나에서 한숨을 돌리는 기자, 제자리에서 엎드려 쪽잠을 자는 기자, 자료 정리를 하는 기자, 미뤄둔 신문 기사 스크랩을 하는 기자, 기획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현장 취재를 나가는 기자, 수송부에 취재 차량 배차를 신청하는 사진기자, 내근 당직이라 연거푸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부산을 떠는 기자 등 마감 때와는 또 다른 광경이 편집국 안팎에서 펼쳐진다.


입사 당시 휴무일은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이었다. 지면에서 차지하는 프로야구의 비중이 워낙 커 취해진 제작상의 조치였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 근무는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간부들도 일요일만큼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근무했다. 팽팽한 기운이 흐르던 평일과 달리 일요일의 편집국 분위기는 다소 느긋했다. 공휴일이라는 인식 탓에 아무래도 심리적 긴장감이 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는 무교동 식당가도 한산했다. 눈치 볼 것 없이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평소보다 후했다.


자유로웠던 흡연 문화

편집국 안에는 늘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마감 강박증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담배를 많이 태웠다. 실내 흡연이 자유로운 시절이라 담배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흡연자와 여기자도 드물지 않았지만 모두 다 흡연 문화에 너그러웠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여기자 중에도 흡연자가 없지는 않았으나 대놓고 피우지는 않았고 요령껏 알아서 담배 욕구를 해소했다.

너도나도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담배 인심도 후했다. 마감 시간에 담배가 떨어지면 옆자리 동료의 담배를 얻어 피웠고, 애연가들은 아예 보루째 담배를 사다가 책상 서랍에 쟁여 놓았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면 부서원들에게 담배 한 갑씩을 돌리는 일도 흔했다.


기자와 술

기자 사회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음주 문화일 것이다. 우선 술을 마실 기회가 많다. 기자들끼리 만나도 그렇고 취재원들과 만나도 그렇다. 기자들은 취재와 마감으로 인한 과중한 스트레스에 항상 짓눌린다.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마감 시간이 유발하는 압박감과 낙종(落種)에 대한 두려움이다. 날마다 제한된 시간 안에 한정된 분량의 원고를 논리 정연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취재와 원고 준비, 원고 작성에 따른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만만찮고 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업무 특성상 체력적 부담도 크다. 스트레스가 기자 사회의 피할 수 없는 공공의 적인 까닭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량과 강도 높은 노동의 부담, 날마다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숨 막히는 근무 환경, 마감이 끝나도 계속되는 업무의 연속성은 기자 사회의 특징이다. 마음 놓고 사적인 약속을 하기가 쉽지 않은 기자들 간에 다른 직종보다 동질성과 동료애가 두드러지는 이유다.

퇴근 후 술 상대는 으레 동료이기 마련이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원기(元氣)도 회복할 수 있는 법이다.


취재원 관리

정보 제공자인 취재원 관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취재원들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얻으려면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대소사(大小事)를 잘 챙기고 업무 외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로 기밀 사항이나 중요한 정보는 취재원과의 사적 네트워크에서 유통된다. 기자들이 핵심 취재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공을 들이는 데에는 다 그런 이유가 숨어 있다.


친밀감을 높이는 데에는 술만 한 게 없다. 기자와 취재원, 둘만의 저녁 술자리에서 기분 좋게 술기운이 돌면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의 빗장도 스르르 열린다. 취기(醉氣)가 오르면 취재원의 경계 심리와 방어 기제에도 구멍이 뚫린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자는 취재원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신이 노리는 정보에 야금야금 다가간다. 술자리에서 캐낸 정보가 다음날 대서특필(大書特筆)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촌각(寸刻)을 다투는 긴급 사안일 경우 밤새 기사화되기도 한다. 화장실을 가는 척 들락거리며 데스크와 야간 국장에게 전화로 보고하거나 회사로 복귀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동료들이나 취재원들과 술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하는 생활이 일상으로 굳어진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좋아하게 되고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편집국 안에 주당(酒黨)들이 몰려 있는 것도 이런 음주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신문사 입사 초기에 선배들에게 들은 전설적인 얘기 한 토막.

1970년대에 입사한 신입 기자 환영 회식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체질상 술이 약한 수습기자가 선배들이 따라준 소주잔을 제때 비우지 못하고 그 앞에 자꾸 잔이 쌓이자, 화가 난 한 선배가 소주를 머리 위에 부어버렸다는 것이다. 사색이 된 수습기자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앞에 놓인 술을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고 술을 이기지 못한 결과 바로 그 자리에서 마신 술을 도로 게워 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술자리 폭력이지만 기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당시의 맹목적인 음주 문화에서 파생된 일탈로 치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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