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2. 대자보(大字報) 사건

by 박인권

2. 대자보(大字報) 사건


씁쓸한 기억이다. 면접을 거쳐 5월 6일 광화문 프레스센터로 출근했다. 수습기자 사령장(辭令狀)을 받고서 합격했다는 실감이 났다. 입사까지 1년을 참고 노력하기로 각오했는데 운이 좋았다. 인사팀 차장의 인솔 아래 출근 첫날 단체로 지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입구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내용이 식사하는 내내 눈에 어른거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절반을 남겼다.

대자보 작성의 주체는 신문사 노조. 제목 아래에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이 굵게 쳐져 있었다. 노조는 이번 공채 과정에서 불거진 특채 의혹을 제기하며 사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최종 합격자 중 일부가 필기시험에서 가산점을 부여받았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시험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 사안으로 큰 파장이 예상됐다. 출근 첫날, 임명장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맞닥뜨린 대자보 앞에서 수습기자들은 길 가다가 오물을 밟은 표정들이었다. 누가 누군지 알 리도 없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속앓이만 할 뿐이었다. 대자보를 봤을 것이 분명한 당사자들은 의혹의 실체를 알고 있을 텐데 그들의 심정도 복잡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노조 차원에서 공론화한 예민한 쟁점이니만큼 사측으로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며칠 후, 회사 뒤 무교동 포장마차에서 동향(同鄕)의 대학교 동기를 만났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라며 함께 온 여자 후배를 소개했다. 그 후배는 다름 아닌 이번 공채의 탈락자였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자 갑자기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여자 후배가 울먹였다. 사연인즉슨 대학생 시절 이번 공채에서 낙방한 신문의 지면 제작에 자신과 함께 옵서버로 활동한 인물 중 두 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그들에 대한 특채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둘로 인해 누군가가 시험에서 떨어졌을 것이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애써 삼켰다. 소문이 맞다면 그 누군가가 지금 내 앞의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신문 지면 사고(社告)를 통해 공지하는 관례를 깨고 개별 통보한 최종 합격자 명단 발표가 석연치 않은 터였다. 대자보에서 제기한 의혹이 꼬리를 흔들며 머릿속을 괴롭혔다.


2-1. 광화문 프레스센터. 20260202_173204.jpg

광화문 프레스센터.


수습 기간 중 사나흘씩 각 부서를 돌며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았다. 순환 근무가 시작된 첫날, 해당 부서에서 저녁 회식을 마련했다. 입사를 축하한다며 선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술을 권했다. 술을 웬만큼 마시는 나는 잔을 받자마자 한입에 털어 넣고 선배들에게 잔을 되돌려주는 일을 반복했다. 자칫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 정신을 바짝 차리며 선배들의 동태(動態)를 살폈다. 다들 얼굴이 불콰해지고 취기가 올라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바로 옆에 앉은 선배와 맞은 편의 부장에게 겁도 없이 물었다.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상기된 틈을 노려 던진 당돌한 질문에 그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막을 모를 리 없을 그들로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기보다 입을 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끝내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술김에 성가셔서일까, 궁금해하는 너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창간 후 첫 공채 기수들에게 대자보 파동은 어찌할 수 없는 생채기일 수밖에 없었고 두고두고 자존심에 상처를 안기는 걸림돌이 됐다. 6개월 간의 수습 기간이 끝나고 각자 편집국의 여러 부서로 흩어졌다. 체육 부서를 지망했으나 비 체육 부서로 발령이 났다. 실망감이 앞섰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배치된 부서에는 공교롭게도 의혹의 당사자 둘도 눈에 띄었다. 그들과 한 부서에서 근무하는 내내 이어진 미묘한 신경전은 이때 이미 예고됐다.


2-2. 안동국시와 노래방 자리가 예전의 성궁 호프가 있었던 곳이다. 0260202_173445.jpg

안동국시와 노래방 자리가 예전의 성궁 호프가 있었던 곳이다. 언론인과 문인, 정치인, 영화인, 산악회 회원들의 만남의 장소로 명성이 높았던 성궁 다방이 전신(前身)인 성궁 호프는 프레스센터에서 근무하던 기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든 생맥주 주점이었다. 점심때는 생태찌개와 소주를 팔았다.


엊그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오랜만에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갔다. 정문 쪽은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후문 주변 풍경은 몰라보게 변해 낯설었다. 후문에서 무교동 먹자골목으로 이어지는 길가 초입의 오른편에 있던 단골 술집 자리에 생소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내 집 드나들 듯이 한 오래된 식당도 없어졌다. 40년이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나마 먹자골목의 소문난 맛집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다.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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