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문경(聞慶)
36. 문경(聞慶)
어머니의 고향
우연히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문경 기행이란 프로그램에 눈이 갔다. 탐방 형식의 기록물을 좋아해서인데 특별히 문경이라는 지역에 마음이 쏠렸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문경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어머니는 경북 상주시 함창읍의 경주 김씨 집성촌(集姓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함창읍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상주시이지만 지리적으로는 문경의 중심지인 점촌과 맞닿아 있다. 어머니의 성장기 정서가 상주보다 문경과 점촌 쪽으로 기울어 있는 이유다. 이웃 마을 상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결혼하고 나서도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를 함창 새댁(宅)이나 점촌 새댁으로 불렀다고 한다. 어린 나와 형들도 상주는 친가(親家), 함창, 점촌은 외가(外家)라 불렀다. 행정 구역의 판을 새로 짜더라도 정서적 뿌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고향에 수도 없이 간 내가 어머니의 고향에 간 적은 아주 어렸을 때 한 번뿐이나 외가에 대한 인상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남아 있다. 여섯 살이던 1968년 여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외갓집을 찾았다. 그림책에서나 본 초가집들이 마을 초입부터 듬성듬성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외갓집도 초가집이었다. 널찍한 마당에 들어서니 닭들이 자유로이 뛰놀고, 외양간에서는 황소 두 마리가 음 메~ 소리를 내며 처음 경험하는 농촌의 생경함을 더했다. 흰 두건을 쓴 상여꾼들이 꽃상여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전통 장례식 장면을 청승맞게 흉내 내는 동네 어른의 곡소리 앞에서 너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린 것도 그때였다.
문경 새재 제2 관문(조곡관, 鳥谷關).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문경에 다시 간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였다. 신문사 입사 초기, 1박 2일 일정의 부서 단합대회 때 문경 땅을 다시 밟았다. 조선 시대 영남 지역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넘었다는 문경 새재(조령, 鳥嶺) 인근의 민박집에 묵었다. 초여름이라 민박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높이 642미터의 문경 새재는 지형이 험난하고 높아 나는 새도 넘기 힘들어 쉬어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문경에 대한 기억은 딸에 의해 되살아났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딸은 같은 과 동기 중 가장 친한 친구의 고향 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문경이었다. 친구와의 인연 덕분에 할머니의 고향에 간 딸은 말로만 듣던 지방 도시 문경에 머무르는 내내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났다고 한다. 유난히 할머니를 따랐던 딸은 지금도 삶의 사다리가 절실한 순간마다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한다.
부추김치
어머니의 고향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부추기듯이,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있다. 부추김치다. 집사람을 대신해 주말마다 밥상을 차릴 때 가끔 부추김치를 담근다. 동네 마트에서 부추 한 단을 사 한입 크기로 썰고, 고춧가루와 멸치액젓, 다진 마늘, 설탕, 통깨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리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부추 특유의 알싸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냉장고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하면 감칠맛이 풍성해 더욱 맛있다. 무칠 때 찹쌀 풀을 곁들이면 부추에 양념이 잘 스미고 촉촉한 맛이 난다. 어머니가 했던 방식이다.
부추김치.
어머니는 밥상에 부추김치를 자주 올렸다. 무더운 여름날, 묵은 부추김치 하나면 축 처져 있던 입맛이 다시 돌았다. 찬물에 밥을 말아 밥 한 숟가락에 부추김치 한 젓가락을 올려 떠 넣으면 술술 잘 넘어가고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오래되어 신맛이 강한 부추김치로는 부추 김치전을 부쳐 먹었다. 싼값에 만들기가 쉽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 효용성이 높은 밑반찬이다. 부추김치를 대구에서는 정구지 김치라 부른다. 정구지가 부추의 경상도 방언이라는 사실은 서울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알았다. 문경 기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든 단상(斷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