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6. 마감 장면의 한 풍경

by 박인권

6. 마감 장면의 한 풍경


편집부장과 체육부장의 기싸움

마감 시간이 되면 편집부원들은 초비상이다. 깐깐하고 불같은 성격의 편집1부장에게서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편집1부장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편집 1~3부 체제이던 1988년 당시 편집1부장은 선임 부장으로 편집부 전체를 이끌었다. 제목을 뽑고 레이아웃 작업에 매달리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편집부원들 사이를 오가며 진두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의 장수 같았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엄청난 성량(聲量)의 소유자라 가뜩이나 귀가 따가울 판에 투박하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쏟아내 소음도 그런 소음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목격한 장면을 되살려보면 이랬다.


마감이 임박할 무렵, 그의 시선은 늘 취재 부서 쪽을 향했다. “저 자식들, 아직도 기사를 안 넘기고 뭐 하고 있는 거야.”라고 쏘아붙일 듯이 째려보는 식이었다. 특히 1면과 주요 지면을 채울 기사를 출고하는 체육1부와 체육2부가 집중 표적이었다. 마감 시간의 데드라인이 간당간당할 즈음, 편집1부장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어이 체육1부, 기사 안 넘길 거야. 마감 10분 전이야 10분 전! 오늘따라 체육2부까지 왜 이래? XX!”

발언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의 표현은 경상도 사투리가 그대로 실린 어투라 더욱 거슬렸다. 이쯤 되면 산전수전 다 겪은 체육부장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체육1부장과 체육2부장의 스타일은 외모만큼이나 달랐다.


“아따, 기다리쇼 기다려. 하루 이틀 늦는 것도 아닌데……”

늘 웃는 얼굴인 체육1부장은 저놈의 성질머리는 지치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담배 한 개비를 빼물었다. 체육1부장인들 일부러 늑장을 부릴 리 만무할 터. 말은 점잖게 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눌러 참느라 진땀 꽤 나 흘렸을 것이다. 열불이 날 상황에서도 속내를 감추는 자제력이 놀라우면서 한편으로 저러다 울화통이 터져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이런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고민이 많고 지나치게 완벽 지향적이라 의사결정이 더딘 편이다.


웬만해선 웃지 않는 체육2부장의 대응은 전혀 딴판이다. 시원하게 벗겨진 이마 위로 금테 안경을 걸친 채 편집1부장을 노려보며 “뭐라고, 우리가 지금 놀고 있냐, 일하는 거 안 보여.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XXX”

대구 출신인 체육2부장은 다혈질에 말도 빨라 속사포처럼 대거리를 해대며 씩씩댔다. 붉으락푸르락한 낯빛과 입술을 꽉 깨문 모습에서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기세가 느껴졌으나 일전불사는 없었다. 속으로 화를 삭이며 상대방의 진을 빼는 체육1부장과 달리 체육2부장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는 성격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발끈 성을 내는 대신 화끈하고 솔직해 뒤끝이 없다.

아마 그는 날마다 부딪히는 이런 일에 겉으로는 성질을 내면서도 어느새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화병이 나도 벌써 나 앓아눕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것은 편집1부장이나 체육1부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편집1부장이나 체육1부장, 체육2부장 모두 좋은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애사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이다. 출고 기사가 도착해야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편집1부장이 조바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지면을 꾸미기 위해 기사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체육부장들의 노심초사도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그런 심정을 알기에 긴장감과 압박감의 연속인 마감 전쟁이 끝나고 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대반전(大反轉)의 시작이다.


마감 후의 대반전

서울 시내와 수도권 가판용(街販用)인 초판 신문이 발행된 정오(正午)를 훌쩍 넘긴 무렵, 편집국원들은 또다시 분주하게 움직인다. 마감이라는 중압감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때늦은 점심을 먹으러 서둘러 나서는 시간이다. 조금 전까지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던 편집1부장과 체육1부장, 체육2부장도 진한 기름내를 머금은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초판 신문을 재빨리 훑어본 뒤 익숙한 솜씨로 양복 윗도리를 걸쳐 입는다.

“이 부장, 생태찌개나 먹으러 갑시다. 김 부장도 같이 갑시다.”

편집1부장은 체육1부장과 체육2부장에게 식사를 제안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뒤로 치켜세워 오늘은 자기가 사겠다는 시늉을 했다.


편집국을 빠져나가는 세 사람의 행태는 마감 때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달라 놀라웠고, 날마다 신경전을 반복한 나머지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보여 또 놀라웠다. 그들 모두 마감 전쟁을 일과처럼 겪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편집1부장은 그 당시의 신문사 간부 중에서도 카리스마가 강하고 유별난 캐릭터라 금방 눈에 띄었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평기자 때부터 편집 감각이 남달랐던 그는 1989년 2월 창간한 신생 종합 일간지의 편집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체육 담당 부국장으로 승진한 체육2부장은 편집국장이 유력시됐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낙마한 뒤 회사를 떠났다. 체육1부장은 오랜 병마(病魔)에 시달리다 삶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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