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5. 기자의 글쓰기

by 박인권

5. 기자의 글쓰기


좋은 글의 조건

수습 기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첫 문장에 승부를 걸어라, 글은 쉽고 짧게 쓰라, 팩트 확인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정답은 현장에 있다.

신문 지면은 한정돼 있어 모든 뉴스와 정보를 다 실을 수는 없다. 뉴스와 정보의 가치를 저울질해 기사의 비중을 정하고 그에 따라 기사의 분량도 조정된다. 첫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삭제해도 글이 되는 극한의 연역식 문장 또는 역삼각형 구조가 기사의 금과옥조(金科玉條)인 까닭이다.

뉴스와 정보의 취사선택은 비단 신문 지면에서뿐 아니라 세상사의 모든 영역에서 불가피한 행위다. 일터에서는 물론이고 일터 바깥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은 모든 인간 행위의 선행 조건이다.


좋은 글의 첫째 조건은 짧고 쉽게 쓴 글이다. 글의 호흡이 늘어져 문장이 길어지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의미 전달의 힘도 약해진다. 문장이 짧을수록 긴장감이 더해 몰입하기 편하고, 글이 쉬울수록 공감대도 쉽게 형성되고 소통의 폭도 넓어진다. 입사 초기, 데스크가 입버릇처럼 주문한 말이 있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쓰라는 것이다. 글의 흐름이 빠르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는 날씬한 글이 좋은 글의 표본이다.

신문 기사, 특히 스트레이트성 기사가 건조체인 것은 육하원칙에 입각한 사실 전달 위주로 비유나 수식을 덜어내고 정제된 표현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팩트 확인은 기자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취재의 덕목이다. 팩트 확인이 필수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는 게 알권리 충족의 대전제라서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와 정보를 가려내 알리는 능력은 기자 개인의 통찰력과 함께 눈으로 현장을 직접 보고 얼마나 철저하게 검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장 취재가 중요한 이유다. 기사의 논조와 논점의 적정성 여부를 파악하는 일도 사실 관계 확인이 충족될 때 힘을 발휘한다. 오보는 팩트 확인에 소홀하거나 실패했을 때 발생한다. 기자들이 물 먹었다고 표현하는 낙종(落種)이 수치라면 오보는 재앙이다.


기사 작성의 교과서

수습기자들에게 기사 작성의 교과서는 선배 기자들이 쓴 기사다. 부서마다 비치된 스크랩 기사와 타 신문을 탐독해 나름의 비법과 요령을 얼마나 빨리 터득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사 스크랩은 대개 부서의 막내 기자들 몫인데 가위질하고 풀칠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훈련이고 자기 계발의 과정이다. 막내 기자들이 담당하는 부서 공용 스크랩과 별도로 각자 필요에 따라 개별 스크랩북을 따로 관리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신문 스크랩북은 기사 작성의 교본이었다.

자기가 작성한 최초의 기사와 데스크의 손을 거친 기사를 비교 분석하는 일도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신입 기자 시절, 이만하면 됐다며 공들여 쓴 기사에 스스로 흡족해하다가도 막상 데스크가 윤문(潤文)한 기사를 보게 되면 그 내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오랜 경륜과 신문사 짬밥은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얕은 풋내기 기자일 때는 부지런히 모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선배 기자들의 기사를 반복적으로 흉내 내 익히다 보면 어느 순간 글 쓰는 감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육화(肉化)되는 깨달음이 와닿는데 그때부터 자신만의 문장 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운 좋게 베테랑 선배 기자와 동행 취재를 나가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 취재원을 대하는 태도와 질문 방식, 상대방의 말문을 여는 요령, 취재가 미궁에 빠졌을 때 헤쳐 나가는 방법 등 취재와 관련한 일련의 필살기(必殺技)를 공짜로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취재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미는 특히 인터뷰 자리에서 빛을 발한다. 별다른 메모를 하지 않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말로만 대화를 이어가는데 이는 취재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효과적이다. 취재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 모습 앞에서는 누구라도 긴장하고 말조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메모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취재원이 말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기억해 기사화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다웠다. 사전에 인물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는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친근감을 심어줘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방책임을 알게 됐다. 훗날 이런 시도로 기사화에 성공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그때의 짜릿한 쾌감이란.

기자 연조(年條)가 어느 정도 쌓이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건 기명 칼럼을 쓸 기회도 주어진다. 대개 ‘취재 수첩’, ‘취재석’, ‘기자의 눈’, ‘기자의 시각’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가는 기사로 문장력과 판단력, 통찰력, 창의력, 기자 정신 따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5-2. 20여년 전에 필자가 쓴 문화 칼럼 20260227_172959.jpg

20여 년 전에 필자가 쓴 문화 칼럼.


기명(記名) 칼럼

기명 칼럼의 특징은 글솜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트레이트성 기사처럼 연역식 문장 구조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하고 독창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삼단논법(三段論法)에 따라 강조할 내용이나 주제가 뒤에 나오는 귀납적 추리 방식을 적용하거나 연역식과 귀납적 전개를 혼용하기도 한다.

칼럼은 사실 관계를 토대로 기자의 안목과 철학, 신문사의 편집 방향 등이 반영된 기사다. 단,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해당 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칼럼은 원고의 분량이 이미 정해진 고정형 기사라 그 틀 안에서 자유롭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시도할 수 있다. 글솜씨와 배경지식, 가치체계 등 기자의 실력과 품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 칼럼이다. 칼럼을 잘 써야 진짜 글을 잘 쓴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체력적인 뒷받침과 함께 다부진 기질도 필요하다. 현장을 부지런히 쫓아다녀야 하는 취재기자들은 순발력과 민첩성, 지구력을 갖춰야 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과 항상 의심하고 질문하는 호기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마감 시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써야 한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직업이다. 누구나 빨리, 잘 쓰고 싶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의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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