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습기자 때 처음 본 유격수 김재박
7. 수습기자 때 처음 본 유격수 김재박
김재박과의 첫 조우(遭遇)
대기 타석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방망이 감각을 조율하고 있던 타자가 백네트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MBC 청룡의 아이콘으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던 스타였다. 무려 40년 가까이 지난 아주 오래전 일이라 그날이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할 수 없던 차에 날짜를 역추적할 수 있는 단서(端緖)가 될 만한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1988년 6월, 일요일, 잠실 야구장, 롯데와 MBC 청룡의 대결, 낮 경기 따위가 그것이었다. 다행히 KBO(한국야구위원회)의 연도별 경기 기록에 키워드를 끼워 맞춘 결과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88년 6월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MBC 청룡의 주말 낮 대결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그날은 수습기자 한 달째인 6월 5일.
경기는 홈팀인 MBC 청룡의 10-4 역전승으로 끝났다. MBC 청룡이 1회 초 먼저 4점을 내줬으나 1회 말 2점을 따라붙은 뒤 4회 말 1점을 보태 롯데를 턱밑까지 추격한 데 이어 8회 말 대거 7득점을 올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러닝 스로의 개발자
이날은 MBC 청룡의 유격수 김재박의 얼굴을 바로 코앞에서 처음 본 날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74년 영남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던 그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관중석에서 바라봤을 때가 생각났다. 김재박은 한국 야구 유격수 계보의 맏형으로 내야 수비의 틀을 바꾼 인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땅볼 타구를 잡은 탄력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준비 자세 없이 1루로 송구하는 러닝 스로 동작이다. 그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터득해 실전에서 처음 선보인 러닝 스로는 고난도의 묘기나 다름없어 플레이 하나하나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러닝 스로가 어려운 이유는 굴러오는 공을 잡으러 달리는 동작을 출발점으로 포구(捕球) 동작과 뛰어오르는 동작, 던지는 동작의 연속적인 조화 속에 송구의 속도와 정확성까지 겸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속 동작이 삐걱거린다거나, 공을 놓친다거나, 스텝이 꼬인다거나, 공이 타자 주자보다 늦게 1루에 도착한다거나, 던진 공의 방향이 표적에서 벗어나는 등 어느 하나라도 목표에 어긋나면 실효성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반세기 전인 1970년대에 국내에서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경기를 시청할 마땅한 수단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보고 배우고 흉내 낼 모범적인 본보기가 없던 시절이라 김재박의 플레이는 단연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프로 1군의 웬만한 주전 유격수라면 별 어려움 없이 러닝 스로 플레이를 펼치지만 40~50년 전에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또 3루와 유격수 사이의 공간 깊숙한 곳으로 굴러가는 내야 땅볼을 역모션으로 잡아 4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이용해 총알 같은 송구로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장면도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김재박의 특출 난 수비력 덕분에 소속팀은 아웃 카운트 하나를 벌 수 있었고 반대로 상대 팀은 안타 하나를 잃어버린 꼴이 됐다.
김재박의 수비 스타일은 후배 유격수들에게 하나의 교본이 됐고, 이는 곧 국내 야구의 내야 수비를 한 단계 격상시킨 마중물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격과 도루에서도 발군이던 김재박에게 1977년은 그를 한국 야구 최고의 인기 스타로 각인시킨 해다.
실업 야구 7관왕
영남대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1995년 해체)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그는 공격과 수비, 주루에 걸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인다역(一人多役)의 만능 플레이를 펼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됐다. 실업 야구 데뷔 첫해인 이해 타율, 타점, 홈런, 도루 1위에 최우수선수상과 신인상, 트리플 크라운(타율, 타점, 홈런) 타이틀까지 휩쓸며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처럼 장타율과 출루율, 최다 득점, 최다 안타를 공식 타이틀로 집계하는 시대였다면 그것마저 김재박의 차지였을 것이다. 한국화장품 시절 김재박은 한마디로 무결점의 완전체 선수였다.
그날 대기 타석에 있던 김재박이 내가 누군지 알았을 리는 만무할 터. 그는 아마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하고 팔짱을 낀 나를 무심결에 구단 프런트의 간부나 KBO 관계자로 착각했을 것이다. 김재박을 다시 만난 것은 1989년 11월 9일 체육 2부로 발령이 나고 MBC 청룡 구단을 출입하게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다. 당시 MBC 청룡 선수들은 지금은 없어진 건국대 야구장에서 시즌 마무리 훈련 중이었다. 먼발치에 다부진 체격의 백인천 감독이 보였다. 내야 수비 훈련에 한창인 선수들 사이로 김재박도 눈에 띄었다. 이때 김재박은 만 서른다섯 살로 팀 내 최고참(最古參)급이었지만 여전히 몸놀림이 날래고 송구 동작이 매끄러웠다.
김재박 외에 MBC 청룡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인 심재원(1953~1994)과 배재고 동기인 이광은과 신언호(이상 1955~), 유종겸, 김일권(이상 1956~) 등이 그들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사람 좋은 너털웃음이 이웃집 아저씨를 닮은 심재원은 지독한 담배 사랑이 화근이 되어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재박과 이광은, 신언호, 유종겸은 MBC 청룡 창단 동기들로 팀 내 입김이 셌다.
기습적인 홈스틸
선수 시절, 김재박은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영리한 플레이에 능해 생긴 별명이다. 1990년 잠실 야구장에서 벌어진 정규리그 경기에서 LG 트윈스의 3루 주자인 김재박은 상대 투수가 세트 포지션에서 투구 동작에 들어가려는 순간 느닷없이 홈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른손 투수인 상대 투수는 눈앞에 보이는 김재박의 기습적인 홈스틸에 깜짝 놀라 투구 자세가 무너지면서 보크를 내주고 말았다. 경기 후 김재박은 보크를 유도하려는 의도에서 단독 홈스틸을 시도했는데 계획대로 상대 투수가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이 장면을 기자실에서 지켜본 이들 모두 그의 뛰어난 야구 센스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김재박이 왜 그라운드의 여우인지를 알 수 있는 플레이였다. MBC 청룡 시절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김재박은 LG 트윈스 창단 첫해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기쁨을 누렸다. 여느 선수들과 달리 그는 현역 생활을 마칠 때까지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1996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마흔두 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 유니콘스 초대 감독을 맡아 11년의 재임 동안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등 지도자로서도 전성기를 맞았다. 그의 아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살았던 대구 영남대병원 근처 주택가의 이웃 주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