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틀에 걸친 술자리
9. 이틀에 걸친 술자리
체육1부장의 기습적인 제안
1988년 5월 광화문에는 봄비가 자주 내렸다. 그날도 하루 종일 가랑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통창 밖으로 보였다. 부서 회식도 없고 야근도 없고 약속도 없어 모처럼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프레스센터 5층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체육 1부장을 만났다.
“퇴근하는 길인가?”
“네”
“비 오는 날은 빈대떡에 막걸리지, 안 그런가?”
“……”
체육1부장의 제안, 그것은 기습적이었으나 거부할 수 없었다. 신출내기 수습이 대선배 체육1부장과 언제 또 대작(對酌)을 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놓은 영화를 보며 유유자적할 생각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비 내리는 초저녁 광화문 거리에 내려앉은 네온사인 불빛은 술꾼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체육1부장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나를 이끌었다. 피맛골 좁은 골목 초입의 허름한 가게 안은 이미 왁자지껄했다. 안 그래도 빈대떡 하나만으로 애주가(愛酒家)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는 곳이 아니던가. 봄비가 반가운 손님들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등받이 없는 빛바랜 벤치형 나무 의자와 상처투성이의 투박한 탁자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체육1부장은 빈대떡과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빈대떡에 덤으로 딸려 나오는 종지만큼의 어리굴젓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일까. 그는 아예 메뉴판에 적힌 어리굴젓을 따로 시켰다. 막걸리 한 되를 가득 채운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두 손으로 잡고 첫 잔을 따라 드렸다. 첫 잔을 따를 때만 해도 오늘의 술자리가 내일에서야 끝날 줄은 몰랐다.
체육1부장이 막걸리를 마시는 방식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던 대로였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누리끼리한 막걸리에 살짝 담가 가볍게 원을 그리듯 두 바퀴 저은 뒤 쭉 들이켜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할머니나 아버지, 고모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자네, 술 잘 마신다며.”
“아닙니다. 잘 마시지는 못하고 좋아합니다.”
그는 그냥 씩 웃고 말았는데 아마 그게 그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빈대떡과 어리굴젓
“… 빈대떡에는 어리굴젓이 최고야.”
젓갈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경상도 출신인 나는 이날 어리굴젓의 맛을 처음 알게 됐다. 충청도 향토 음식인 어리굴젓은 생굴에 소금을 조금만 뿌리고 고춧가루를 섞은 뒤 단기간에 살짝 삭힌 젓갈이다. 양식 굴보다 크기가 작은 자연산 어린 굴로 젓갈을 담기 때문에 어리굴젓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고춧가루에서 나는 얼얼한 맛을 이유로 ‘얼얼하다’의 어형이 변화해 어리굴젓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충남 서산 간월도의 어리굴젓을 으뜸으로 친다.
빈대떡에 어리굴젓을 올려 먹으면 빈대떡을 부치는 데 사용하는 느끼한 돼지 기름내가 가신다. 기막힌 조합이다.
빈대떡 전문 주점으로 유명한 이 집은 한국전쟁 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상호(商號)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초창기 가게의 외형이 전쟁통의 기차간을 닮았다는 손님들의 말을 듣고 가게 이름을 열차집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술꾼치고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피맛골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피맛골이 사라진 뒤 제일은행 본점 지상 주차장 뒷골목으로 옮겨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요즘에는 어리굴젓 대신 조개굴젓을 내놓는다고 한다.
체육1부장의 술 맷집
주당(酒黨)들에게 술 없는 세상은 공허하다. 그들에게 술은 곧 음식이자 생존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체육1부장은 편집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타고난 술꾼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집안 내력을 물려받았을뿐더러 음주 문화에 너그러운 신문사에서 오래 단련된 주력(酒歷) 덕분일 것이다. 말로만 듣던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밤이 깊어지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진한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느릿느릿한 말투처럼 그의 음주 행보는 빠르지 않은 대신 다부지고 끈질겼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추가로 비운 뒤 술자리는 골목 내 다른 주점으로 옮겨 계속됐다. 생선구이와 조개탕을 앞에 두고 소주로 주종을 갈아탔다. 체육1부장의 음주 맷집은 소문대로였다. 40대 후반인데도 지치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술을 마실수록 기운이 넘쳐 보였다. 술을 꺾어 마시는 법이 없고 소주잔이 비어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는 문화가 미덕(美德)으로 여겨질 때라 술잔이 바쁘게 오가는 사이에 문 닫을 시간이 됐는지 손님이 떠난 탁자 위의 빈 그릇들을 치우는 주인장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오늘은 술이 잘 받네. 술도 당길 때 마셔야 맛이 나지, 안 그런가.”
불콰해진 그의 콧잔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젊은 시절부터 마셔온 술의 나이테가 점점이 새겨진 흔적일 것이다. 나는 그의 콧잔등을 보면서 지금까지 그가 소비한 음주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라는 생각을 했다. 그 속에는 그가 직장 생활에서 겪었을 온갖 희로애락의 장면들이 제각각의 사연으로 켜켜이 쌓여 있을 터.
내친김에 한 잔만 더 하자는 그는 밤새도록 문을 여는 청진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새벽 찬 공기에 봄기운이 묻혔다. 얼큰한 술국 국물이 밤새 지친 속을 달랬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던 술자리는 포장마차로 한 번 더 이어져 하루가 가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서야 파했다. 포장마차를 나설 때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희끄무레한 먼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