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국 일선 기자축구대회
10. 전국 일선 기자축구대회
친목 도모의 장(場)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르는 연례행사가 있다. 이른바 전국 일선 기자축구대회.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회원사인 신문, 방송, 통신사 기자들이 각 사를 대표해 토너먼트로 진행하는 대회로 1972년 처음 열렸다. 2001년부터는 지역별 대회로 변경돼 전국 각지에서 분산 개최하고 있다.
1988년 5월 초, 수습기자 발령 며칠 후 수습기자 전원에게 소집령이 내려졌다. 기자축구대회에 출전할 선수로 차출된 것이다. 편집국의 막내인 수습들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훈련에 동원됐고 수습 외에 공 좀 찬다는 선배들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습들은 날마다 실시하는 훈련에 빠짐없이 참여해 기량을 점검받았으나 선배들은 바쁜 취재 일정과 마감으로 인해 출석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일선 기자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친선 경기라지만 각 사의 명예가 걸린 자존심 대결이란 인식이 강해 대회에 임하는 열기가 뜨거웠고 윗분들의 관심도 각별했다. 매일 오후 3시, 훈련장으로 떠날 시간이면 편집국이 분주했다. 축구팀 간사를 맡은 선배 기자의 독려에 수습들은 회사에서 나눠준 유니폼과 축구화, 축구공, 스타킹이 든 가방을 챙겨 들었다.
훈련장은 광화문 인근의 대신고 운동장. 회사에서 훈련장까지 이동할 교통편은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중간 간부들이 교대로 떠맡았다. 편집국 서열 2위인 체육 담당 편집 부국장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까마득한 후배인 수습기자들을 실어 나르게 된 중간 간부들의 심기가 편치는 않을 터. 운전대를 잡은 중간 간부 중 한 명은 훈련장 가는 길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대신고의 위치를 묻곤 해 차 안에 탄 우리들을 머쓱하게 했다. 그런 그도 훈련장에 도착할 즈음이면 반쯤 웃는 표정으로 “너희들 예선 탈락하면 혼날 줄 알아”라고 농(弄)을 던지며 금세 어색한 분위기를 되돌리곤 했다.
훈련 3일째 되던 날, 수습 동기들의 허벅지가 퍼렇게 멍이 들었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해 일어난 부작용의 흔적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도 군대 제대 후 모처럼 공을 찬 탓에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에 통증이 올라왔다. 훈련 후에는 무교동 고깃집에 모여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편집국 각 부서에서 돌아가며 찬조금을 내놓았다. 입담이 좋고 수완이 뛰어난 축구팀 간사 선배가 축구팀을 응원하는 사내 분위기를 앞장서 이끌었다. 축구팀원들의 선전(善戰)을 기원하는 격려의 차원에서 마련한 회식 덕분에 훈련 기간 동안 동기들끼리 우애를 다질 수 있었고 편집국의 선배들과 안면을 트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원 없이 먹고 마셨다.
무모한 작전의 예상된 결과
아쉬움도 있었다. 예상한 바대로 공을 찰 줄 아는 수습 동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의욕만 앞섰지, 대다수는 골목길 축구 말고는 경험이 없어 훈련 내내 똥 볼 축구가 난무했다. 그런데도 축구팀의 코치직을 맡은 체육부의 모 선배는 무모한 치고 달리기 등 선수들에게나 통할 법한 전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훈련의 성과가 있을 리 없었다. 축구 기자를 오래 해 자칭 축구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이 선배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 중 하나만 꼽으라면 구성원들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한 뒤 그들의 장점만 모아 적재적소에 안배할 때 팀으로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전은 코치가 짜더라도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작전의 전술적 가치는 그것을 통해 선수들이 최선의 기량을 펼칠 수 있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모름지기 세상사가 다 그렇다.
최근 한국 축구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난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역할 분배, 팀 전술과 그의 전제 조건인 핵심 포지션 역량의 부조화, 이것들이 쌓이면서 발생하는 팀 전체의 사기 저하와 동기 부여의 실종, 팬들의 무관심.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수의 퍼포먼스는 그 선수가 잘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빛이 나는 법이다.
보다 못해 축구를 좀 할 줄 안다는 동기 몇 명이 용기를 내 짧은 땅볼 패스 위주의 빌드업 방법을 건의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땅볼 패스도 시원찮은 판에 공중볼 트래핑이 먹힐 리 만무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팀워크가 삐걱댔고 결국 예선 1회전에서 강호 KBS를 맞아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강요한 뻔한 결과였다. 3년 후 심기일전한 1991년 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해 명예를 회복했다.
말주변과 사교술이 뛰어난 축구팀 간사 선배는 타고난 수완을 엉뚱한 곳에 잘못 쓰는 바람에 훗날 큰 곤욕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