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11. 언론 연수의 기억

by 박인권

11. 언론 연수의 기억

연수생들을 실은 전세 버스가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 도착했다. 2박 3일간의 현장 탐방을 끝으로 언론 연수를 마친 연수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1980년대 당시 수습기자들은 한 달간 언론 연수를 받아야 했다. 언론 연수는 신문, 방송, 통신사의 신입 기자들을 상대로 프레스센터 내 한국언론연구원(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하는 이론 위주의 교육이다. 원로 언론인들과 대학교수들이 강사로 나서 한국언론의 역사와 언론의 사명, 기자 윤리강령, 취재 준칙, 실무 지식 등 언론인이 갖춰야 할 소양 위주의 프로그램을 강의했다. 현장 탐방은 언론 연수의 마지막 코스로 연수생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화합의 시간과 주제 발표에 이은 자유토론, 땅굴 및 산업 시설 견학 등으로 채워졌다.


회사가 한국언론연구원과 동일한 건물에 입주해 있던 나는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며 연수 기간 중 친하게 지낸 몇몇 동료를 따로 불렀다. 무교동의 고깃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일행 중 한 명이 바람을 잡았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오늘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는 말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질펀하게 술판이 벌어진 곳은 프레스센터 뒤 모 호텔 노래 주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자, 말수가 적고 샌님처럼 행동하던 동기가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끼를 발산해 좌중을 휘어잡았다.

후끈거리던 술자리 분위기는 거액의 술값을 치를 때 별안간 냉랭해졌다. 술값으로 30여만 원이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 초봉이 35만 원 정도였다. 어떻게 술값을 처리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여러 명이 모이면 꼭 튀는 사람이 있는 법, 기억에 남는 연수 동기가 있다. 현장 탐방 때의 일이다. 지역 공중파 방송에 다니던 한 동기는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숙소로 왔다. 입사 초년병이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모습이 흔치 않을 때라 동기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말주변과 친화력이 뛰어나고 씀씀이도 커 인기가 많았다.

1990년대 초 프로야구 출장지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활달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몇 년 후 그가 굵직한 방송기자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권력 집단의 비리 커넥션을 고발한 뉴스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한 이름뿐인 특산물의 실태를 파헤친 탐사 보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대가였다. 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그의 방송기자 생활은 그러나 보도와 관련해 다분히 의도적이라 의심할 만한 송사(訟事)에 휘말리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수년간 곤욕을 치른 끝에 방송사를 그만두고 사업가로 심기일전한 그는 또다시 법적 다툼에 시달렸다. 알다시피 소송의 당사자가 감내해야 할 고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길고 험난한 싸움 끝에 명예를 회복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짓눌린 정신적 상처는 평생 잊지 못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일은 알 수 없고 인생은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혼 전 신촌의 한 다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낯익은 인물과 마주쳤다. 언론 연수 때 알게 된 또 다른 연수 동기였다. 소개팅 약속이 있다는 말에 건투를 빈다며 헤어졌는데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라 인연으로 이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현재 모 정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두 인사도 언론 연수 동기다.

언론 연수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습 딱지를 뗐다. 월급 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받는 월급의 두 배에 육박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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