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이야기

12. 불편한 관계

by 박인권

12. 불편한 관계


뜻밖의 발령

6개월 간의 수습 생활이 끝나고 각자 근무할 부서가 정해질 시간이 다가왔다. 인사 발령 공고문이 부착된 게시판 앞에 갓 수습 딱지를 뗀 새내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내 이름 옆으로 세 글자의 부서명이 보이는 순간, 실망감에 한숨이 나왔다. 입사 전부터 염두에 둔 바대로 1, 2, 3지망 모두 체육 관련 부서를 희망했으나 정작 발령은 엉뚱한 곳으로 났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뭣 하러 원하는 부서를 적어내라고 했을까, 부아가 났다.


더욱 언짢았던 건 공채 과정에서 불거진 특채 의혹의 대상자로 지목된 동기 중 한 명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그 동기도 자신에 대한 사내(社內)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고 그런 그가 나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도 그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둘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기류까지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해빙기(解氷期)의 얼음판처럼 둘만이 느끼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우리 둘은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내가 체육 부서를 지망한 사실을 알고 있는 데스크는 어차피 부서는 돌고 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취재의 기본기를 빨리 습득하고 기사 작성의 ABC를 장착하는 것이라고 다독였다. 데스크는 냉정하면서도 정이 많았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고, 업무를 떠나서는 자상한 성품의 관용주의자였다. 꼼꼼하면서도 너그러운 특이한 흡인력 덕분에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나의 사수(射手)인 바로 위 선배는 서울신문 공채 출신이었다. 서울신문과는 한 울타리 내 가족이나 다름없어 필요에 따라 양사 간 인사 교류가 이뤄질 때였다. 그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부서 내 또 다른 선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기보다 네 살 많은 경력직 선배를 선배라고 부르지 않은 게 갈등의 원인이었다. 높임말로 손윗사람에 대한 예우는 갖췄으나 선배라는 호칭 대신 ~씨라는 수평적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공채와 경력직

공채 출신과 경력직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심했다. 경력직은 타 신문사에서 이직한 경우가 많았고 드물게 문인(文人) 출신도 있었다. 공채 출신들은 서너 살 위의 경력직들을 선배로 인정하지 않았고 경력직들은 그런 공채 출신들이 텃세를 부린다며 못마땅해했다. 신문사의 기수 문화는 유별나다. 아마 이런 기류는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직 내의 동기(同期) 의식, 동질성 문화랄까. 그런 점에서 가치판단을 떠나 기수들은 기수들끼리, 경력직은 경력직들끼리 어울리고자 하는 습성은 숙명적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 사이의 불안한 관계는 결국 둘만이 아는 형태로 은밀하게 임계점을 넘었다. 내가 체육부로 부서를 옮기기 며칠 전, 단둘이 마주한 술자리에서 사수는 그런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퇴근길에 경력직 선배가 사수를 따로 불러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당신 왜 나를 선배라고 부르지 않나?”

“나이가 많다고 다 선배라고 인정할 수는 없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건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꿀 것이란 기대는 안 하는 게 좋겠소.”

사수는 경력직 선배에게 존댓말을 쓰면서도 끝내 선배라는 호칭은 입 밖에 낼 수 없다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순간, 경력직 선배가 먼저 주먹을 날렸고 사수도 맞받아치면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사수는 눈두덩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경력직 선배는 입술이 터졌다. 앙금만 커졌을 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난 그날 일은 비밀에 부쳐졌다.

문학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인 경력직 선배는 몇 년 후 신생 일간지의 문화부로 옮겨 훗날 문화부장을 지냈다.

뒤늦은 고백

동기와의 불편한 관계는 성가시고 끈질겼다. 그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떳떳지 못한 이력을 공공연히 내가 들추어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입사 초 노조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한 나의 반응이 못마땅해서일 것이다. 그는 내 앞에서는 속내를 숨기는 척하면서도 돌아서면 사실과는 다른 뒷담화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으려는 이중적인 처신을 반복했다. 동기는 자신을 포장하는 처신에 능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정글과도 같은 사회생활을 헤쳐 나가는 능력이라고 믿었겠지만, 나에게는 뻔히 들통이 날 얄팍한 위선으로만 느껴져 역겨웠다.

두 부서의 통합으로 부서 내 동기 수가 늘어나자, 그는 어떻게 구슬렸는지 동기들을 규합해 노골적인 이미지 정치에 나섰다. 4대 1의 싸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의 행태를 애써 못 본 체하며 내 할 일에만 충실했다. 소모적인 신경전에서 나를 떼어놓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고 했든가. 그는 뒤늦게 죄책감을 고백했다.

내가 체육부로 옮긴다는 인사(人事) 설이 사실로 확정되자 데스크는 중국집에서 송별 회식을 열었다. 1년간 보살펴준 부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2차 술자리는 당시 유행하던 극장식 레스토랑이었다.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입사 동기의 홍일점(紅一點)인 그가 느닷없이 내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았다. 술이 좀 취했는지 반은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안해. 나 때문에 속 많이 썩었지. 실은 나도 마음이 아팠어.”

뜻밖의 말에 술이 확 깼다. 술김에 오랫동안 자신을 옥죄던 회한의 감정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묻고 싶었지만, 불빛에 비친 그의 눈가가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고서 그만두었다. 회식이 끝나고 친한 선배와 둘이 강남의 한 라이브 공연 주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원곡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불렀다. 낙엽 지면 설움이 더하니 가을엔 떠나지 말라는 가사가 구슬펐다. 세월이 많이 지나 내가 문화부장이 됐을 때, 동기는 문화부의 차장으로 나와 함께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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