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오노레 도미에(1808~1879)
19세기, 프랑스는 혼돈의 사회였다. 직전 세기 후반인 1789년 7월 14일, 자유, 평등, 박애 3대 구호를 앞세우며 구체제(앙시앵 레짐)에 반기를 든 시민혁명인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정신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근대 시민사회의 탄생에 물꼬를 튼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정치적 소용돌이는 19세기 들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1830년 7월 혁명에 이어 1848년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 왕을 폐위시킨 프랑스의 정치체제는 공화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정치적 격변과 함께 경제 ‧ 사회적인 격동에 이어 언론과 문화 환경의 대변혁도 프랑스를 강타했다.
1760년대에서 1840년대까지 영국에서 전개된 산업혁명의 영향은 프랑스 사회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농업과 수공업 위주의 경제체제에서 기계와 공장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제조업 경제로 전환한 산업혁명은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출현시켰다. 방적기와 같은 기계의 발명과 공장제 조업체제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가 됐다.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캔버스에 유화, 65.4 x 90.2cm, 1862-186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 결과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일거리와 자본이 집중된 대도시로 앞다퉈 몰려들었다. 세상이 바뀐 도시를 찾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은 급격한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에 적응할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문과 잡지였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소식과 유익한 정보를 날마다 제공하는 신문과 잡지는 산업화 초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준 청량제였다.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6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신문과 잡지의 대중화에서 비롯된 시민의식의 확장 때문이었다. 언론과 문화 인프라의 확산은 왕족과 귀족 중심의 특권층에서 일반 대중으로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는 근대문학의 탄생을 이끌었고, 화가들에게는 창작에 필요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화가들은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화폭 삼아 역시 대량 제작이 특징인 석판화에 자신의 예술혼과 창작의 성과를 빠르고 광범위하게 투영한 것이다. 이로써 화가들은 종전의 미술 캔버스로 국한된 창작환경에서 자유로워졌을 뿐 아니라 단 한 점의 진품만 존재하는 유화가 지닌 제작상의 한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신문과 잡지의 대중화, 그리고 석판화 기술의 발전이 하나로 융화되면서 화가들은 이제 일반 시민들에게 친근하면서도 폭넓게 다가가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 선두에 선 인물이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다. 도미에는 당시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문화적 향유의 폐쇄성을 대중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 속의 시사풍자만화를 통해 무장해제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당대의 부조리한 정치 ‧ 사회상에 대한 즉각적인 비판과 촌철살인의 해학이 생명인 풍자만화는 대중들의 의식을 일깨우면서 고달픈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분출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문화는 이제 더이상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19세기 프랑스 시민계급의 탄생과 성장에 이바지한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히는 도미에는 1808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빠듯한 가정형편 탓에 10대 초반 서점에서 일하는 등 일찍이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체험한 도미에는 20살 무렵 석판화 기술을 익혀 1830년부터 잡지에 풍자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정치적 혼란기였던 시대상과 맞물려 권력 집단의 위선과 부패를 신랄하게 비꼰 도미에의 시사만화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32년, 24세의 도미에는 풍자화가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굳히는 사건에 연루된다. 바로 전 해 창간한 주간지 ‘라 카르카튀르’에 루이 필리프 국왕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의 석판화 ‘가르강튀아’를 통해서다. 거인 왕을 뜻하는 가르강튀아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전 5권짜리 풍자소설 중 1534년에 나온 제1권의 제목이다. 삽화에서 필리프 왕은 서민들의 고혈(膏血)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배불뚝이 괴물로 묘사됐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주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물린 필리프 왕의 무지몽매한 학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것이다. 왕이 앉은 의자 밑으로 배설물로 쏟아지는 각종 훈장과 공적(功績) 서류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정치가와 고급 관료들의 모습은 권력층의 부패와 아첨이 극에 달한 나라의 은유다.
석판화를 본 국왕은 대로해 도미에에게 6개월의 금고형을 내렸고, 잡지사는 재산을 압류당했다. 그런데도 도미에는 1847년까지 석판화가 겸 풍자화가로 활동하면서 가진 자들의 비리와 위선을 통렬하게 고발해 서민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젊은 시절부터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인간미로 바라보았던 도미에는 마흔이 되면서 소외되고 암울하지만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애틋한 필치로 표현하는 그림에 집중한다. 그가 1862년~1864년 사이에 유화로 제작한 ‘삼등 열차’가 대표적이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산업화 초기,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특유의 인본주의적 감성으로 포착한 도미에의 대표작이다. 당시 삼등 열차는 빈부격차와 계급사회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밑바닥 인생들이 이용하던 싸구려 대중교통이었다.
산업혁명이 낳은 결실이자 증기력을 동력으로 한 증기기관차는 당시 막 부상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같은 열차라도 객실마다 등급이 달랐다. 가장 비싼 일등석에서 제일 싼 삼등석까지 열차 객실은 3등급으로 구분됐다. 등급 구분의 기준은 당연히 경제력.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일등석은 그림의 떡, 그들은 비좁은 좌석과 낡은 시설에다 퀴퀴한 땀 냄새가 범벅인 삼등석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차 객실 안에도 신분 계급이 존재한 것이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인 승객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지치고 힘든 기색뿐, 여유와 웃음기는 사치였다. 도미에가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을 삼등 열차 객실에 실은 멍한 표정의 그들에게 연민의 정과 진정 어린 존경심을 담아 헌정한 사실주의 그림이 바로 ‘삼등 열차’다.
삼등 열차
초기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서민들의 박탈감과 가난의 대물림, 노동의 고단함과 부조리한 사회상을 허름한 열차 객실의 풍경을 통해 애잔하게 묘사한 도미에의 대표작이다. ‘삼등 열차’ 작품 속의 사람들에게 열차와 여행은 동의어가 아닌 딴 세상의 언어일 뿐이다. 그들에게 열차는 그저 집과 일터를 부지런히 오가는 운반 수단에 불과하다.
늦가을 땅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칙칙한 갈색 톤의 색조,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강렬한 명암대비, 그리다 만 듯한 과감한 생략이 눈길을 끄는 인물묘사, 선이 굵고 뚜렷한 윤곽선……. 도미에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네 가지 장치는 모두 삶에 찌든 하류 인생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어두운 객실 앞 가운데, 광주리 손잡이 위에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노파(老婆)가 보인다. 노파 옆에 나란히 앉아 아기에게 젓을 먹이고 있는 젊은 여자는 노파의 딸이거나 며느리로 보인다. 노파의 왼쪽으로 손자처럼 생긴 아이가 지쳐 쓰러져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이들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열차에 탄 3대(三代)의 한 가족이다. 어딘가를 초점 없이 응시하는 노파는 가족의 무사(無事) 행복을 기도하는 것일까, 당장 오늘 저녁 먹거리 걱정에 홀로 속앓이를 하는 것일까. 일체 표정 변화가 없는 노파와 딸(혹은 며느리)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노파 뒤로 보이는 다른 승객들 모습도 마찬가지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문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단 하나, 숨 막히는 정적뿐이다. 객실 안 고요는 도미에가 의도한 명암대비로 극에 달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다 만 듯, 형태가 뭉개져 있다. 심지어 수유에 한창인 아기엄마 바로 뒤 남자는 흡사 해골을 닮았다.
하나같이 행색이나 몰골이 남루하고 초라하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암울하고 쓸쓸한 속성의 갈색 톤의 색조와 함께 이 모두가 온종일 일해 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서민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팍팍한 현실이 막막할 따름인 삼등 열차 승객들에게 남에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말을 거는 행위 따위는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는 한 끼를 때울 식사 걱정, 어떻게든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이 그림을 보는 우리는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지 않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서민들의 올곧은 의지를 승객들 모습에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