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
피터르 브뤼헐(1525년경~1569)
풍속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풍습, 행사, 놀이문화 등을 기록한 그림이다. 그래서 풍속화를 보면 당대 시대상과 사회상을 알 수 있다. 풍속화가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양미술사에서 풍속화가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16세기 후반부터다. 이전까지 풍속의 내용은 그림의 일부 또는 인물의 신분, 지위, 성격 등을 엿보게 할 목적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
독립적인 그림의 주제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풍속화의 역사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시작됐다.
물이 범람하는 저지대란 뜻의 플랑드르는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서쪽 및 프랑스 북부 일대에 걸친 땅이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는 최초의 순수 풍속화를 개척한 주인공이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피터르 브뤼헐이다.
피터르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 참나무에 유화, 117 x 162cm, 1565,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525년경 합스부르크 왕조 브라반트 공국의 브레다(현재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브뤼헐은 하층민인 농부들의 생활을 놀랍도록 정교한 관찰력으로 치밀하게 묘사해 풍속화의 독립 장르 시대를 연 선구자다.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재현해내 ‘농부의 화가’란 별칭을 얻은 그는 세 가지 이유에서 풍속화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혁신적인 주제 선정, 파노라마식 조망을 가능케 하는 탁월한 화면 구성력, 압도적인 관찰력에 기초한 꼼꼼하고 생생한 현장 재현 능력이 그것이다.
첫째 브뤼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평범한 농민들의 삶의 원형을 그림의 주제로 내세웠다. 브뤼헐 이전의 어떤 화가도 서민들의 일상을 그림의 주체로 발탁한 경우는 없었다. 브뤼헐의 그림을 본격적인 풍속화 시대의 출발로 보는 까닭이다.
둘째, 브뤼헐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의 모습을 그린 조감도 시점을 구사했다. 이 시점은 눈 앞에 펼쳐지는 전체 장면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브뤼헐은 사선과 수평, 수직 구도를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사용해 가장 이상적인 풍속화(또는 풍경화) 구도를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브뤼헐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서민들의 모습 하나하나와 그들의 행위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스냅사진 찍듯, 세밀한 그림으로 재현해냈다. 엄청난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한 끈질긴 관찰의 결과다.
서양미술사에서 풍속화라는 미지의 땅을 가장 먼저 점령한 브뤼헐의 업적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17세기 풍속화와 풍경화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인 브뤼헐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을 성(性)으로 삼았을 만큼 고향 사랑이 각별했다. 1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45점만의 작품을 남긴 과작가(寡作家)였지만 농민과 서민들의 애환을 해학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 풍속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눈 덮인 겨울 풍경의 백미로 꼽히는 ‘눈 속의 사냥꾼’, ‘농가의 결혼 잔치’, ‘네덜란드 속담’, ‘바벨탑’ 연작, ‘거지들’,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결혼식의 꿈’, ‘장 님’, ‘교수대 위의 까치’ 등이 대표작이다.
눈 속의 사냥꾼
브뤼헐이 사계절을 주제로 제작한 6개의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폭설이 내린 뒤의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사냥을 끝내고 귀가하는 사냥꾼들과 노동하는 장면, 한겨울 놀이문화를 담은 그림이다. 브뤼헐이 마흔이던 1565년에 제작한 이 그림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과 함께 눈으로 뒤덮인 겨울 풍경 속의 마을이 등장한다. 그림 전면(前面)에 사냥에서 돌아오는 3명의 사냥꾼과 사냥개들, 그 왼쪽 사선을 따라 아이를 포함해 다섯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지금 모닥불로 돼지털을 그을리고 있다. 돼지 도살이 주로 1월에 벌어지는 연중행사였던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1월의 풍경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가는 사냥꾼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결같이 풀 죽은 모습들이다. 왼쪽 사냥꾼의 어깨에 매달린 작은 여우 한 마리, 그것이 오늘 사냥 수확의 전부여서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것일까, 사냥꾼들의 뒤를 따르는 사냥개들도 고개를 처박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사냥꾼 사이로 수직으로 우뚝 솟은 나무와 달리, 오른쪽 아래에 펼쳐진 마을은 수평 구도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조감도 방식의 시선 때문에 사냥꾼들과 마을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사선과 수직, 수평 구도의 동시 출현, 가장 이상적인 풍경화 구도 덕분에 그림 속 분위기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언덕 위의 사냥꾼들은 언덕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고, 화가와 우리는 사냥꾼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의 마음도 평화롭다.
이제 이 그림이 왜 한겨울풍경화의 최고봉인지, 살펴볼 차례다. 그림에서 생명체는 모두 검은색 일색이다. 사냥꾼과 돼지털을 그을리는 사람들, 오른쪽 아래 얼어붙은 강 위에서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나무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거나 하늘을 나는 새들까지 죄다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반면 사냥꾼들이 걸어가는 언덕과 오른쪽 뒤로 보이는 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흰색이다.
하나 더 있다. 하늘과 꽁꽁 언 강은 회색 톤이 섞인 연한 녹색이다.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색을 각각 검정, 하양, 녹색으로 구분했는데, 한기(寒氣)가 살 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 추위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실감 나게 느껴진다. 특히 흰색과 검정과 같은 무채색의 대비를 통해 눈 덮인 겨울 풍경의 정취를 고조시킨 점이 압권이다.
‘눈 속의 사냥꾼’ 그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는 또 있다. 세부 묘사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 언덕 아래 강 위의 사람들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얼음 위 사람들을 자세히 보자.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썰매를 끄는 사람,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사람, 컬링에 열중인 사람, 팽이치기에 열중인 아이, 얼음 위에 나뒹군 사람…. 450여 년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겨울스포츠와 놀이문화가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이 놀랍다.
하나 더, 그림 가운데쯤 강 옆으로 난 눈길을 지나가는 짐마차도 보이고 오른쪽 아래 작은 다리 위로는 한 아낙이 땔감을 머리에 지고 총총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다. 심지어 왼쪽 가운데의 집 지붕과 처마 아래, 오른쪽 아래 집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까지 가히 빈틈없이 꼼꼼한 묘사의 향연이다.
서양미술사를 찬란하게 수놓은 풍속 ‧ 풍경화의 이정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브뤼헐 작품의 3분의 1을 소장 중인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