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프라고나르, 그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
18세기, 유럽 사회는 귀족들의 전성시대였다. 절대 권력인 왕이 통치하는 왕정 체제의 비호 아래에서 귀족들은 돈 많고 힘 있는 최상류층 지배계급으로 군림했다. 사회 구조 피라미드의 최상위 자리를 점령한 그들은 자신들만의 욕구를 해소할 문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귀족 중심의 향락문화였다. 부와 권력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그들은 향락문화에 도사린 성적 은밀성을 은폐하기 위해 우아한 예술적 포장을 내세웠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로코코 양식으로 불리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예술 사조였다.
로코코는 번드르르한 조개껍데기 모양의 값비싼 장식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가 어원으로 특권층을 위한 부르주아 예술이었다. 고관대작들의 신분과시용답게 미술과 실내장식, 건축, 음악 장르까지 망라된 로코코 예술에 왕족과 귀족들은 앞다퉈 눈독을 들이기 바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캔버스에 유화, 81 x 64cm, 1766-1767, 런던 월리스 컬렉션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로코코 예술의 발원지는 프랑스였는데, 특히 미술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사치스러운 사교 문화와 자유분방한 사생활에 방점을 찍은 로코코 미술은 경쾌하고 밝은 색채, 우아하고 세련된 조형미,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성미가 특징이다. 로코코 미술을 빛낸 대표적인 화가로는 앙투안 와토(1684~1721),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 프랑수아 부셰(1703~1770),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4명이 꼽히는데, 모두 프랑스 화가다. 이 중에서도 프라고나르는 후기 로코코 미술의 절대강자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프라고나르는 귀족들의 취향에 딱 맞는 그림을 그렸다. 쾌락 지향적인 귀족들의 성향을 반영한 외설적인 장르화와 연애 풍경을 다룬 그림으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프라고나르가 처음부터 상류 계층이 선호하는 관능적인 연애 풍경화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프라고나르의 아버지는 장갑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할 리 없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미술 공부를 시킬 형편이 아니었지만 프라고나르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타고난 재능이었다. 재능이 열매를 맺는데 필수적인 집념과 욕망도 대단했다.
그는 13살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었다. 1년 뒤, 당대의 유명화가 샤르댕 화실에 도제로 들어갔다. 17살 때에는 자신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부셰에게 사사(師事)했다.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 성과는 20살 때 로마대상 수상으로 나타났다. 후기 로코코 미술의 대가(大家) 자질은 이때 이미 싹텄다. 부상(副賞)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5년간의 유학 생활 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의 장엄한 역사화에 매달렸다. 그러나 역사화는 프라고나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작업 방식까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태생적으로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림의 주제가 그의 성격과 성향을 닮은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그는 겉만 그럴싸하고 실속이 없는 명예를 거추장스러워했다. 그보다는 돈이 되는 환금성 높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우쭐대면서 부와 지위를 과시하고픈 귀족 취향과 찰떡궁합이었다. 장식화와 유쾌하고 발랄하고 에로틱한 풍경화.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그림이 ‘그네’(1766-1767)다. 프라고나르의 나이 35살 때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울창한 숲속에서 남녀 사이에 펼쳐지는 애정행각을 다룬 그림이다. 침실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사랑싸움을 묘사한 ‘빗장’(1777)과 함께 프라고나르의 양대 걸작이다. 귀족들의 열성적인 후원 아래 거침없는 질주를 거듭하던 프라고나르도 프랑스대혁명(1789)을 기점으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근대 시민의식의 여명을 알린 프랑스대혁명과 함께 왕족과 귀족들이 주도했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네
프라고나르가 ‘그네’를 완성한 1767년, 프랑스의 왕은 루이 15세(1710~1774)였다. 루이 15세는 코흘리개 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천연두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59년간이나 재위했다. ‘그네’ 그림이 세상에 나왔을 때, 프랑스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에 찌들어 있었다. 지배계층인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의 가속페달을 밟고 무한 질주를 계속했다.
한눈에 봐도 우아하고 세련된 그림이다. 화사한 분홍색과 싱그러운 초록색이 빚어내는 감각은 유미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의 장소적 배경은 숲속, 은밀함의 상징이다. 그네를 타는 미모의 아가씨는 생기발랄하고 장난기가 넘쳐난다. 숲속 덤불 아래에선 잘생긴 남자가 그네 타는 여인의 드레스 속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장식적이고 유쾌하면서도 에로틱한 그림이다. 후기 로코코 회화의 정수(精髓)로 평가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면 상류 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일탈을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가장 우아한 그림을 통해 지배층의 도덕적 몰락을 재촉하는 위선적이고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프라고나르의 후원자인 귀족, 왼쪽 덤불 속에 눕다시피 숨은 남자다. 남자의 시선은 다분히 관음증적이면서 깜짝 놀란 표정이다. 도대체 뭘 봤기에? 오른쪽 아래 밧줄을 잡고 그네를 밀고 있는 늙은 남자는 차림새로 보아 하인으로 짐작된다. 하인은 건너편 남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그네 흔들기에만 열심이다.
그네를 타고 공중 부양 중인 여자의 모습은 전형적인 로코코 스타일이다. 유희적인 분홍빛 화려한 드레스에 섬세하게 새겨진 레이스, 고급스러운 모자는 당시에 만연한 사치풍조를 말해준다. 여자는 지금 그네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는 탄력을 이용해 하이힐 한쪽을 벗어던지며 바로 아래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녀의 의미심장한 미소에서 성적 도발을 부추기는 대담성이 느껴진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그네는 밀고 당기는 사랑 게임의 상징. 그러나 두 남녀의 사랑은 불륜이다. 그것은 화면 왼쪽 가운데의 큐피드 석상에서 알 수 있다. 큐피드는 왼손을 입에 댄 채 ‘쉿’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이 알면 큰일 나니 발설하지 말라는 신호다. 불륜을 암시하는 장치는 또 있다. 여자가 의도적으로 벗어 던진 하이힐이다. 예부터 하이힐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이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숲속으로 설정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숲속은 몰래 데이트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더라도 숲속은 비밀이 보장되는 사생활의 공간은 아니다. 더구나 바로 뒤 노인의 눈을 속여 가면서까지 아슬아슬한 밀회를 즐기는 걸 보면 둘만의 공간에서는 어땠을까?
예쁘고 흥겨운 그림 같으면서도 당대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꼬집은, 예술가의 장인정신과 시대적 사명감, 둘 다 만끽할 수 있는 명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