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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거장에서

4-2. 제주(濟州) 가족(家族) 여행기(旅行記) <中>

by 박인권

가족여행 2일 차 – 2023년 3월 2일(목)


#이중섭 생가, 이중섭미술관 탐방

아침은 느지막이 브런치로 때우기로 하고, 어제 폐관(閉館) 시간에 쫓겨 먼발치에서만 본 이중섭미술관을 2일 차 마수걸이 코스로 정했다. 두 번째 길이라 가는 길이 눈에 익었다. 미술관 야외 주차장에는 벌써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눈대중으로 헤아려보니 30대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주차할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주차 요원으로 짐작되는 중년 남성이 친절하게도 공간 하나를 내줬다.


1997년에 복원된 이중섭 생가부터 찾았다. 생가 돌담 아래 이중섭 선생이 한때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해 여기에 표석을 세운다고 적힌 표지석을 빠르게 보고서 이중섭이 살았던 방 입구에서 멈췄다. 열어젖힌 나무 여닫이문 좌우에 한글과 영어, 일어, 중국어로 된 이중섭 거주지 소개 글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원산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이중섭이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본인 아내 이남덕(李南德, 1921~2022, 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과 태현(1947~2016), 태성(1949~) 두 아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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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생가 돌담 아래 세워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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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1.4평짜리 온돌방. 벽에 이중섭의 자작시 ‘소의 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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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딸린 부엌에 놓인 가마솥 2개.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습이지만 처연함이 느껴진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이남덕을 처음 만났다. 1939년 일본 최초로 남녀평등 교육을 기치로 내건 사립학교 분카 가쿠인(文化學院) 재학 당시 미술부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알게 돼 사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남덕이란 한국명은 1945년 5월 원산에서 혼례를 올린 뒤 이중섭이 직접 작명(作名)했다. 남쪽에서 올라온 후덕(厚德)한 여자 남(南), 덕(德).


이중섭은 결혼 이듬해인 1946년 봄 첫째 아들을 얻었으나 급성 감염인 디프테리아에 걸려 해를 넘기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참척(慘慽)의 아픔이 있다.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 마흔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두고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병사(病死)했다. 아내와 두 아들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6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장인이 사망했다는 비보(悲報)에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이중섭과 생이별한 지 오래였다. 기구한 운명으로 요절한 이중섭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와 그의 가족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1.4평짜리 온돌방 앞에 섰다. 가로, 세로 4.6m의 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힘들게 부대끼며 살았을 처참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가슴이 아렸다.


방안에는 이중섭의 흑백사진과 그 위로 이중섭이 쓴 시 ‘소의 말’이 보였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소의 말’ 시구(詩句)처럼 이중섭은 가난했지만,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술회했다. 방에 딸린 1.9평 크기의 부엌에는 가마솥 2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슬퍼도 행복했던 이중섭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중섭 생가 주변에 조성한 이중섭 공원을 지나쳐 경사진 언덕 위쪽에 이중섭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1층은 이중섭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 2층은 기획전시실, 3층은 야외 테라스로 꾸며져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우리가 방문했을 때 이중섭 전시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기획전시실에 디스플레이된 국내 현대 작가들 작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나오기 전, 미술관 안내 직원에게 이중섭의 진품을 몇 점이나 소장하고 있냐고 물었다. 회화와 소묘, 편지, 기타 자료 등 약 60점가량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년 전 이중섭 위작 논란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이중섭 작품의 90% 이상이 위작으로 추정된다는 게 국내 미술계에 떠도는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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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생가 벽에 걸린 진흙 부조. 담배를 피워 무는 이중섭의 모습에서 진한 고독감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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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생가 여닫이문. 열려 있는 문 좌우에 한글과 영어, 일어, 중국어로 된 이중섭 거주지 소개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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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관 전경. 우리가 방문했던 2023년 3월 2일은 이중섭 작품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2층 기획전시실만 둘러봤다.


#엉또정에서 브런치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미술관을 빠져나와 곧장 브런치 장소로 이동했다. 한적한 리조트 건물 1층에 있는 음식점 이름이 특이했다. 엉또정(停)? 이럴 때 필요한 게 검색 기능. 찾아보니 ‘엉’은 작은 굴, ‘또’는 입구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란다. 근처에 엉또 폭포가 있어 음식점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 같다고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다.


서귀포 강정동에 있는 엉또 폭포는 서귀포 70경(景) 중 하나로 작은 동굴 입구에 자리한 폭포다. 평소에는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비가 오면 50m 절벽에서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로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자태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비가 와야 속살을 드러내는 특이한 폭포다. 탐방 코스에 빠져있어 보는 것은 건너뛰었다.


엉또정은 아침과 점심때만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다. 오전 8시~오전 10시, 오전 11시~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오전 11시 넘어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솥 밥에 성게미역국이 나오는 정식에 더해 고등어구이를 추가 메뉴로 시켰다. 칙칙, 칙칙, 뜸 들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솥 밥이 완성되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성게미역국과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맛깔스러운 고등어구이가 식탁 위에 펼쳐졌다. 가뜩이나 군침이 돌게 하던 시장기에 가속(加速)이 붙은 입맛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거침없이 밥과 국, 고등어구이와 정갈한 밑반찬들을 신나게 훑고 지나갔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우리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일반인들의 평균보다 밥 먹는 속도가 한창 느린 나도 스스로 놀랄 정도로 숟가락, 젓가락을 놀리기 바빴다. 소식(小食)과 느릿느릿한 음식물 섭취에 길든 위장이 많이 놀랄 법도 했는데, 이 날따라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식사 분위기에 주눅 들어서 인지 속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것이 이날 브런치의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까.

배를 채웠으니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 다시 바닷가 탐방에 나섰다. 오늘 세 군데 해변을 몰아서 돌기로 했다. 가장 먼저 황우치 해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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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치 해변. 왼쪽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 원 앤 온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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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치 해변 뒤 산방산


#황우치 해변과 산방산, 용머리 해안

황우치 해변은 모슬포 동쪽에서 4km 떨어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다. 해변 뒤로 높이 395m의 종상화산(鐘狀火山)인 산방산(山房山)이 서 있다. 종상화산은 용암이 위로 솟구쳐 산꼭대기가 종(鐘) 모양으로 된 화산을 말한다. 용암의 점성이 강해 사방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굳어지는 바람에 종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사면(斜面) 경사(傾斜)가 50도 내외로 가파른 절벽을 이루며 흑염소가 서식하고 있다. 산방산이라는 이름은 산 중턱에 있는 고려 말기 동굴 속 절인 산방굴사(山房窟寺)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산방산과 황우치 해변 사이에 원 앤 온리(One and Only)라는 카페가 있는데,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우리가 갔던 날도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 등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카페 내부가 붐벼 커피만 마시고 얼른 빠져나왔다.


산방산 휴게소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10여 분 걸어가니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용(龍) 머리 해안이 우리를 반겼다.

용머리 해안은 바닷속 세 개의 화구(火口)에서 분출된 용암 등 자질구레한 부스러기로 이뤄진 화산쇄설물(瑣屑物)이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된 암석해안이다. 암석이 바다에 노출된 암석해안이자 지하에서 용암이 상승한 수성 화산으로 화구가 이동하면서 생성돼 지형적 가치가 뛰어나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으로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6호로 지정됐다. 밀물이 꽉 찬 만조(滿潮)나 기상악화 때에는 안전 문제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다. 관람하기 전 미리 출입 가능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용머리 해안의 나이는 약 100만 년이다. 신생대 제4기 때 바닷속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뿜어져 나온 뒤 파도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침식된 모양은 말 그대로 대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이었다. 지각 변동으로 지층(地層)이 갈라진 단층(斷層) 구조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요, 눈앞에 펼쳐진 암석의 기이한 모습에서 연금술사 같은 풍화(風化) 작용의 변화무쌍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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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해안이자 수성 해안인 용머리 해안. 연금술사 같은 풍화 작용의 변화무쌍함을 만끽할 수 있는 대자연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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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길이가 700m에 이르는 용머리 해안은 해안을 끼고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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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해안 곳곳에 선명한 바닷물의 속살을 드러낸 웅덩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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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멍게와 해삼, 소라 등을 파는 해녀 행상(行商)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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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와 오랜 풍화 작용으로 생긴 풍화혈(風化穴)이 인상적이다. 바위가 깎여 구멍이 뚫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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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포니라고 부르는 벌집 모양의 풍화혈. 신비스러운 자연의 카리스마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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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해안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웅덩이를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든 인공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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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사이 돌계단으로 이어진 언덕길.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바다 밑에 생긴 평탄한 지형인 파식대지(波蝕臺地)가 절벽 아래에 기다랗게 이어져 있고, 바위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풍화혈(風化穴)이 절벽 위를 장식하고 있는데, 눈의 호사(豪奢)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풍화혈 중에서도 벌집 모양으로 움푹 팬 구멍들이 눈에 띄어 궁금했는데, 타포니(tafoni)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곳곳에 바닷물의 속살이 선명한 웅덩이와 사암층 암벽 사이로 고개를 내민 동굴이 인상적이었고, 관람 편의를 위해 만든 인공 돌다리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높이 25~50m의 암벽이 700m나 되는 길이로 장관을 연출해 보는 내내 탄성을 자아냈다. 대자연의 위대한 카리스마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여행만큼 훌륭한 삶의 교과서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는 길목 두서너 곳에 해녀들이 좌판을 깔고 멍게와 해삼, 소라 등 신선한 해산물을 파는 광경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집사람과 딸의 무관심에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용머리 해안 관람코스는 암벽 사이 돌계단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오르는 것으로 끝났다. 언덕 위를 지나다 진지동굴 표지판이 눈이 들어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경계초소로 사용하기 위해 파 놓은 동굴 입구란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곳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근처 사계(沙溪) 해안으로 차를 몰았다.


#사계 해안과 VIEWST 카페

사계 해안은 사계리 해안도로에 있는 해변이다. 위도상으로 우리나라 최남단 해변인데 맑게 갠 날에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는 빼어난 풍광으로 소문난 곳이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끝없이 새겨져 있었고, 금색 모래 밑으로 구멍이 나 있는 이색적인 풍경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만만찮은 바닷바람을 안고 검은 모래사장을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집사람과 딸의 뒷모습에서 새삼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아름다운 가치가 묻어났다. 현무암과 금빛 모래, 검은 모래가 뒤섞인 해안가는 이 날따라 유난히 심술을 부리는 바닷바람과 달리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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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해변의 검은 모래사장을 걸어가고 있는 집사람과 딸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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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암과 금빛 모래, 검은 모래가 뒤섞인 사계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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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모래 아래로 구멍이 뻥 뚫린 모습이 신기하다.


카페 창밖으로 확 트인 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VIEWST 카페는 3층 건물로 내부 분위기가 아늑하고 정겨웠다. 카페 문화에 익숙한 딸이 엄선해 사 온 빵과 피자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의 빵은 맛있었다. 주변 풍광과 편안한 실내 장식, 수준급의 음식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카페 명소라는 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갈하게 관리된 화장실까지 더해 명성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인상적인 것은 또 있었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티슈에 카페 건물 약식 구조도가 인쇄돼 있었다. 지하는 카페와 베이킹룸, 1층은 주문 데스크와 남자 화장실, 2층은 카페와 여자 화장실, 3층은 카페와 테라스 및 포토존이란 간략한 설명이 달려 있었다. 흥미로웠다.

제주 올레길 10코스에 포함된 사계 해안 인근의 사계 포구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낚시 포인트로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오늘의 마지막 탐방 코스인 약천사로 서둘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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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T 카페의 빵과 피자 케이크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비주얼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사계 해변 뷰스트 카페 냅킨에 인쇄된 건물 구조도.jpg

건물 약식 구조도가 인쇄된 카페 티슈


#약천사(藥泉寺)

약천사는 원래 제주 전통 초가삼간 양식의 약수암이라는 작은 암자였다고 한다. 근처에 신묘한 약수터가 있어 절 이름을 약천사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약천사 주지로 부임한 서귀포 출신의 혜인스님(1943~2016)이 불사(佛事)에 힘쓰기 위해 1996년 동양 최대 규모의 대적광전 낙성식을 올리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조선 초기 불교 건축 양식으로 건축된 약천사는 연 면적 3,380㎡(1,043평)로 지붕까지 29.5m에 이르는 아파트 10층 높이의 대적광전 안에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목불좌상인 비로자나불은 높이 480cm, 좌대까지 포함하면 680cm다.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으며 좌우 벽에 커다란 탱화가 양각으로 조각돼 있다. 승려들이 생활하는 요사(寮舍)채 건물과 대형분수대, 연못, 삼성각, 사리탑, 동굴 속 법당인 굴법당(窟法堂) 등이 갖춰져 있다. 대적광전 앞마당에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법고각(法鼓閣)과 범종각(梵鐘閣)이 있는데, 범종각에 걸린 범종 무게가 18t이나 된다.


제주도의 상징 사찰인 약천사를 우리가 찾았을 때, 손목시계는 오후 4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대적광전은 몸체가 컸다. 합장(合掌)으로 부처님께 예를 갖춘 뒤 신발을 벗고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갔다. 각자 시주함(施主函)에 성의껏 공양(供養)을 드리고, 정성을 다해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엎드릴 때마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숙연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소환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은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대적광전을 나와 앞마당과 절 주변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야자수가 싱그러운 자태로 아침부터 계속된 강행 길에 쌓인 눈의 피로를 다독거렸다. 잘 정돈된 조경과 절 앞으로 내다보이는 푸른 바다에 속이 뻥 뚫렸다. 유서(由緖) 깊은 사찰을 많이 탐방해 본 나로서는 아쉬움이 없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창건(創建) 역사가 짧은 절집이 감당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생경한 인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우리는 부지런히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팠다. 숙소로 가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예약한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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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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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 대적광전 법당 안.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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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 내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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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 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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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앞마당에 있는 법고각(法鼓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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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뒤로 법고각과 마주 보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이 보인다. 범종의 무게가 18t이다.


#가성비 높은 쌍둥이 횟집

우리는 30분쯤, 호텔 객실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식의 효과는 컸다. 역시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원래 예약 시간보다 1시간 앞당겨 가겠다는 전화를 걸고서 예약장소로 나섰다. 숙소에서 6분 거리인 음식점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음식점 이름은 쌍둥이 횟집, 서귀포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찾는다는 맛집으로 이름난 음식점답게 이미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세련된 디자인의 2층 건물인 쌍둥이 횟집 1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셋이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특모둠스페셜 2를 주문하자마자 애피타이저로 전복죽이 나왔다. 바다향이 후각을 깨우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곧이어 문어, 새우, 전복, 멍게, 산 낙지, 갈치, 고등어, 연어 등 풍성한 해산물과 해초무침, 우엉조림에다 수삼 세 뿌리까지 곁들인 싱싱한 해산물 세트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가지 수가 많은 데다 10여 개의 사각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모습이 식욕을 당기게 했다. 일반적으로 회(膾)를 시키면 주메뉴에 앞서 입맛을 돌게 하는 멍게와 해삼 정도가 서비스로 나오는데, 이 집의 서브 메뉴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쌍둥이 횟집의 평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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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가 뛰어난 쌍둥이 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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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알찬 해산물 세트. 신기하게도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처음처럼 소주(오른쪽 위)를 판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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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돔, 우럭, 능성어, 부시리 4종 세트로 차려진 모둠회


횟집, 하면 또 소주가 빠질 수 없다. 특이하게도 이 집에서는 내가 선호하는 ‘처음처럼’을 판매하고 있었다. 맥주와 달리, 소주는 지역마다 고유의 브랜드가 있다. 제주도는 한라산, 서울은 참이슬, 경기 강원은 처음처럼, 대구 경북은 참, 부산은 대선과 C1, 경남은 좋은데이, 광주 • 전남은 잎새주, 전북은 하이트, 대전 • 충청은 이제 우린, 충북은 시원이다.


참이슬은 우리나라 전체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전국구 소주다. 처음처럼은 경기 강원 브랜드이지만 서울 전 지역에서 유통돼 충성적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지방에 가면 그 지역 소주 외에 전국구 소주인 참이슬만 예외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쌍둥이 횟집에서 처음처럼을 만난 건 의외였다. 여태껏 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처음처럼을 내놓는 음식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산물 세트를 정신없이 먹고 나서 약간의 포만감이 밀려들 즈음, 모둠회가 나왔다.

황돔, 우럭, 능성어, 부시리 4종 세트로 꾸며졌는데, 양도 적당했고 씹을 때마다 육질이 기분 좋게 사각거렸다. 해산물보다 회를 좋아하는 생선 마니아라면 배를 채우기에 조금 섭섭할 것도 같았지만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튀김 요리와 매운탕을 끝으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틀째 일정이 끝났다.


제주(濟州) 가족(家族) 여행기(旅行記)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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