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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거장에서

4-3. 제주(濟州) 가족(家族) 여행기(旅行記) <下>

by 박인권

#가족여행 3일 차 – 2023년 3월 3일(금)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호텔 뷔페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지하에 있는 뷔페로 내려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식사 중이었다. 개인적으로 뷔페 음식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줄 서서 음식을 직접 고르기보다 먹기 간편한 단품 요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뷔페였다. 소식(小食)이 체질화된 나는 전복죽 한 공기에다 서너 숟가락 분량의 쌀밥, 오징어젓갈, 찐 양배추, 삶은 감자, 김치 몇 조각, 게 맛살 샐러드, 간장으로 조린 고추를 반찬 삼아 아침을 대신했다. 뷔페를 좋아하는 집사람과 딸은 식사를 끝낸 내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도 부지런히 오가며 모처럼 만의 포식(飽食)에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서귀포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호텔 뒤로 푸른 살갗을 드러낸 바다에 비친 햇살이 눈에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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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호텔 뒤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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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아웃 후 마지막으로 찍은 서귀포 KAL 호텔


#서귀포 휴애리(Hueree) 자연생활 공원(휴양림) 탐방

오전 10시, 일찌감치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 앞 분수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귀포 KAL호텔 뒤로 펼쳐진 바닷가를 한번 보고 주변 경관을 마지막으로 훑어본 뒤 근처 휴애리 자연생활 공원으로 출발했다. 휴애리 자연생활 공원은 휴양림이다. 연간 4대 축제가 열린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매화 축제(매년 2월~3월 중), 수국 축제(매년 3월~7월 중), 핑크뮬리 축제(매년 9월~10월 중), 동백 축제(매년 11월~1월 중)가 계획돼 있는데, 8월 빼고는 항상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어른 입장료가 1만 3,000원이라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휴양림을 방문한 날은 3월 초였는데, 군데군데 매화나무가 눈에 띄는 등 매화 축제가 한창이었다. 눈요기로는 광활한 자태로 장관(壯觀)을 이룬 유채밭이 그만이었다. 서귀포의 3월은 만개한 유채꽃으로 관광객들을 홀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유채밭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유채밭으로 들어가 기념사진 자세로 실컷 추억을 남겼다.


휴양림의 규모는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유채밭을 빼고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소담스럽게 조성한 산책로와 곳곳에 방문 흔적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었다. 휴양림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 토굴을 지나니, 참새와 흑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떼로 몰려와 순식간에 사료를 물고 달아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하늘정원과 곤충테마관을 스치듯 둘러보고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서귀포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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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애리 휴양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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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애리 휴양림 안에 조성된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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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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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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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만난 유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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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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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밭 너머 청명한 제주의 하늘과 한라산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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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체험관에 전시된 세계의 나비 표본


#제주 공항 인근 국수 전문 음식점

날씨가 화창했다. 올 때와 달리 제주 공항으로 가는 100리 길은 내내 쾌적했다. 안전 운전에 유의하며 곁눈질로 힐끗힐끗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성큼 다가온 봄기운에 긴 겨울잠에서 깬 숲에서 생기(生氣)가 돌았다. 한라산의 몸 구석구석을 밟고 달리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오늘따라 흥겹게 들렸다. 이틀 전, 심술궂은 날씨 때문에 신경을 곧추세우며 운전했던 길을 거꾸로 되돌아가는 나는 서귀포에서 멀어질수록 서귀포가 그리워졌다. 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목적지를 5~6km 앞두고 우리가 가려는 공항 근처 국수 전문 음식점이 얼마 전에 다른 곳으로 이전한 사실을 집사람이 뒤늦게 기억해 냈다. 검색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내는 순발력이 뛰어난 딸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옮겨간 주소를 찾아냈다. 조수석에 앉은 집사람이 내비게이션 주소창에 새 주소를 입력했다. 구 주소지와 새 주소지 간 거리는 다행히 가까웠다. 여자 형제를 일컫는 호칭을 상호로 사용한 국수 전문 음식점은 주차장이 넓었으나 차를 대기 위해서는 안쪽 깊숙이 들어가야만 했다. 유명세에다 점심시간 때라 차가 빼곡히 들어와 있었다.


시끌벅적한 매장 입구에 대기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실내 공간이 넓고 회전이 빨라서인지 금방 자리가 났다. 창가 쪽 테이블이었다. 주문은 테이블마다 비치된 태블릿 PC 모양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단말기가 신기했지만 편리하다는 인상보다는 뭔지 모를 거리감이 들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뭐 그까짓 걸, 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하염없이 앞으로만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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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애리 토굴 입구. 토굴을 통과하면 하늘정원과 곤충테마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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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애리 휴양림 안에 아담하게 꾸며 놓은 인공 폭포


집사람과 딸은 비빔국수를, 나는 돔베고기 국수를 시켰다. 돔베고기는 제주 향토 음식으로 흑돼지를 삶은 것이다. 처음 먹어본 돔베고기 국수는 낯설었다. 국수를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 고명으로 올린 돔베고기와 육수의 맛은 엉뚱함으로 다가왔다. 삶은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얹은 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는 데다 고기의 맛이 거북했고 육수의 풍미(風味)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달랐다. 가끔 일본 라면인 소유 라면을 먹을 때도 삶은 뒤 간장 소스를 발라 토치 불로 구운 돼지고기 고명은 손도 대지 않는다.


먹는 둥 마는 둥, 겨우 반쯤 그릇을 비우고 있는데, 배부르다며 남긴 딸의 비빔국수를 내 앞으로 당겼다. 비빔국수는 먹을만했다.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 맛집이라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식성이 까탈스러워서라기보다는 달걀지단, 김, 호박과 같은 정통적인 방식의 국수 고명에 입맛을 들인 미각(味覺)적 익숙함을 방해하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비빔국수로 그나마 잃을뻔했던 입맛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잔씩 사 들고 산책길에 나섰다. 식당 주변은 전형적인 제주 시골 마을이었다. 이렇게 한적한 곳을 거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집사람과 딸은 동네로 난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았고, 나는 가다가 중간에서 홀로 쉬었다. 넉넉하게 공항에 도착할 겸 예정 시간보다 일찍 렌터카를 반납했다. 렌터카 회사는 국수 전문점 부근이었다.


#제주 공항을 떠나며

제주 공항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과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탑승 시간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여유가 있었다. 공항 대합실(待合室)로 들어서자 2박 3일의 제주 투어 순간순간이 되살아났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이었지만 즐겁고 보람찬 일정을 짠 딸의 노고 덕분에 행복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영어로 HELLO JEJU 로고가 새겨진 대기실 대형 창문 앞에 서서 바깥에 보이는 활주로를 스마트폰 사진 앨범에 담았다.


탑승이 시작되고 세 사람은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긴장이 풀리고 여독(旅毒)이 몰려왔다.

이륙한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제주의 땅이 가물거리며 멀어졌다. 우리 모두 스르르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김포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기계적인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공항 근처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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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수속 후 대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제주공항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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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이륙 후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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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착륙 직전에 찍은 공항 주변 모습. 왼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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