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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May 12. 2023

삶의 정거장에서

5. 독서와 나만의 공간

 독서(讀書)가 책을 읽는 행위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독서에 대한 아주 쉽고 단순한 사전적 뜻풀이를 흥미진진한 정의(定義)의 영역으로 확장한 문장이 있는데, 이렇다.

‘독서는 대개 자신의 방에서 혼자서, 묵묵히,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행위다.’


출판사 편집인 출신으로 일본의 저명한 출판평론가인 쓰노 가이타로(津野 海太郞)가 자신의 저서 ‘독서와 일본인’에서 규정한 독서의 정의에는 읽는 행위의 주체와 읽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 읽는 사람의 태도와 읽는 방법, 동기까지 한 문장 안에 다 들어있다. 독서를 내면에서 우러난 독립적 행위이자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무언(無言)의 숭고한 의식으로 성찰한 가이타로의 정의는 새삼 세상과 만나는 책의 존재론적 가치를 부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서와 일본인’은 2021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임경택 옮김, 마음산책)


가이타로가 책을 읽는 장소를 대개 자신의 방에서,라고 특정한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사실 독서라는 행위를 실행하는 공간적 범위는 책을 읽는 사람의 의지와 결정에 달려 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처럼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용도로 특화된 장소뿐 아니라 책을 판매하는 서점, 전철과 버스 안, 공원 벤치와 잔디밭, 카페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승강장(乘降場)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몇 줄이라도 읽을 수 있고, 길거리 건물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읽을 수 있다. 가이타로가 ‘대개 자신의 방에서’라고 사적 공간의 빗장을 살짝 열어둔 것도 읽고자 하는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책 읽는 장소는 열려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


 그러면서도 가이타로는 독서 행위가 펼쳐지는 공간 배경을 ‘거의 전부 자신의 방’으로 한정했다. 여기에는 독서 본연의 가치를 음미하는 데에 꼭 필요한 책 읽는 자세와 마음가짐이라는 몰입의 키워드가 숨어 있다. 

책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글자를 세상 바깥으로 불러내려면 눈과 머리와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느끼는 시각적, 사유적, 감각적 기능이 오롯이 하나로 연결될 때 완성되는 정신작용의 총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읽는 행위에 그 어떤 외부 요인의 방해도 없어야 한다. 이른바 글 읽는 사람이 글자의 세계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장소로 나만의 공간인 자신의 방을 넘어서는 곳은 없다. 가장 은밀하고 자기 친화적이라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자신의 방, 그곳이야말로 독서의 최적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독서의 의미와 영향력을 살펴보면 그 이유는 더욱 뚜렷하다.

독서가 인간세계에 미치는 진정한 의미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문자와 글자에 대한 이해 능력이다. 생각하는 힘의 출발지가 바로 그 지점이며 그 힘을 동력 삼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도 가능하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런 능력의 원천이 다름 아닌 독서다. 


오래전직장에 다닐 때 펴낸 졸저(拙著)의 한 페이지


독서는 글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깨우치는 과정에서 싹트고 성장하는 사유의 힘과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이것들이 축적된 지식과 한 덩어리가 되면서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통일적인 관점에서 내다볼 수 있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글을 읽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이로 말미암아 사유의 힘이 싹트며, 그것이 확장 반복돼 개인의 지적 수준과 사상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독서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집중과 몰입의 정신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독서나 학습이나 그런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독서나 공부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방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공간적 독점 자산이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생활과 혼자 있는 시간은 사적인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모여 사는 가정에서도 나만의 공간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소위 자기 방의 존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자신에게 전념할 수 있는 배타적인 공간적 지배를 보장하는 나만의 안식처다. 


인간의 기본권인 사생활이 보장되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사적인 공간, 그곳이다.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도 자신의 방,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독서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방에서 한가하게 드러누워 책을 읽을 때의 평화로움, 그 평화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홀로 책에 몰입하는 동안에 얻을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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