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버지에 대한 기억 ④아버지의 잠버릇과 종합선물 세트
아버지에 대한 기억 ④아버지의 잠버릇과 종합선물 세트
#밥 먹을 때 말하면 복(福)이 나가는 이유
어릴 때, 아버지의 귀가 시간은 빨랐다. 저녁 7시 30분~8시면 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집에 오셨다. 술을 한잔 걸치고 오시는 날에도 밤 9시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술 약속이 없는 날, 아버지는 늘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밥상머리에서 우리 형제는 별말이 없이 그저 먹기만 했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 말하면 복(福)이 나간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복이 나가는지는 말씀이 없었고, 우리도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긍이 갈만한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해했을 뿐, 캐묻지 못했을 것이다.
#귀가도 빠르고 잠자리에도 일찍 든 아버지
아버지는 빠른 귀가 시간만큼이나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밤 9시, 늦어도 밤 9시 30분쯤에는 이불을 깔고 누우셨다. 주무실 때 아버지는 두 가지 습관이 있었다. 하나는 눕자마자 거짓말처럼 잠에 빠져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를 고는 것이다.
첫 번째 습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잠복을 타고 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남부러운 행운(幸運)이라 할만하다. 두 번째 습관은 그 반대다. 코 고는 당사자는 알 리가 없지만, 곁에 있는 사람은 괴롭다. 비교적 잠투정이 없었던 나도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에는 신경이 거슬렸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코를 살짝 쥐었다 놓거나 몸 일부 아무 데나 툭 건드리면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다. 반응이 빠른 대신 약효의 지속성은 떨어졌다. 곧 코 고는 소리가 다시 이어지고 그럴 때마다 똑같은 처방을 몇 번이고 실행하다 그만 제풀에 지쳐 에라, 모르겠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귀한 과일이었다. ⓒSteve Hopson, www.stevehopson.com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부전자전
우연의 일치인지, 부전자전(父傳子傳)인지 나도 코 고는 버릇이 있다. 젊었을 때는 그런 말을 못 들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부르지도 않은 고약한 그 버릇이 한 번씩 출현해 집사람의 잔소리도 부쩍 늘었다. 평상시에는 잠잠하다가도 거나하게 술에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놈이 툭 튀어나와 집사람의 신경을 거슬러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코 고는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채, 하다가 한계 인내 체감지수가 마침내 고통의 임계점을 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는 데 그런 때에는 하는 수 없이 이불과 베개를 들고 거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다음 날 나를 몰아붙였다.
나도 할 말이 없지만은 않았다. 집사람에게 당신만 모르지, 코를 곤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그럴 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설사 그렇더라도 나한테 비할 바가 아니라고 우긴다. 나한테 비할 바가 아닌 근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어도 그냥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막무가내로 잘라버린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그런 건지, 알면서도 아닌 척할 뿐인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제 한번 몰래 녹음을 해 들려줄까, 하다가도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사람한테 그래봤자 대수로 여길까, 싶어 그만두었다. 내가 하려다 만 시도는 오히려 집사람이 했다.
#사박자의 의성어, 코 고는 소리
언젠가 딸이 내 코 고는 소리를 녹음했다고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넘어가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짐작대로 집사람이 재미 삼아 작심하고 내가 잠든 사이 꼼짝 못 할 물증을 확보해 딸과 공유한 것으로 밝혀져 웃고 말았다. 규칙성과 반복성, 일정한 높낮이와 강약, 사박자(四拍子)가 불멸의 화음을 이룬 의성어(擬聲語)로 구성된 물증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보다 할머니를 닮은 애주가 기질
아버지는 남부러울 만한 잠복만큼이나 술 드신 후 매너도 깨끗했다. 내가 어릴 때나, 자라서나, 성인이 되어서도 술 드시고 잔소리하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나 우리 형제를 잘 아는 아버지 친구분들도 아버지는 주사(酒邪)가 없고, 술자리에서 실수한 적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술만큼은 아버지보다는 할머니의 피를 더 많이 물려받은 나는 대학 때부터 애주가였는데 직장 다닐 때 폭탄주에 만취해 필름이 끊긴 적이 몇 번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억 회로가 고장 나면 통제기능이 말을 듣지 않아 여러 가지 난감한 일이 생긴다.
우선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을 기억에서 불러올 능력을 상실하기에 어떠한 방어 수단도 꺼내 들 수 없다는 점이다. 기억력이 무장 해제된 당시 상황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해를 구할 수 없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사람과 시비라도 벌어진 경우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만의 주량 고수의 법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술 때문에 어머니를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과 달리, 젊었을 때 나는 집사람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빚을 졌다. 술자리 분위기와 술자리의 연속성을 좋아한 나는 대면(對面) 업무가 많은 직업적인 특성까지 더해져 술 마시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을 단연 압도했고, 귀가 시간도 그만큼 늦었다. 이른 새벽에 집에 들어가기를 밥 먹듯 했고, 한 달에 보름 지방 출장을 갔는가 하면 서울에 있는 날에도 야근이 잦아 휴일에서야 겨우 집사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겨울에 집 밖에서 떨었던 기억
이런 일도 있었다. 신혼 초기 합정동 근처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 때였다. 그날도 새벽이 돼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한겨울이었다. 요즘처럼 번호 키 방식이 아니라 열쇠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던 때였다. 열쇠 구멍에 안착한 열쇠를 아무리 오른쪽으로 돌려도 현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에서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취기가 잔뜩 오른 몸이 열받은 지 20여 분이 됐을 때 찰카닥, 하고 문이 열렸다.
카스텔라. ⓒ御輿大命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버지의 인기척과 운수 좋은 날
예닐곱 살 때 나는 아버지가 귀가하며 내는 인기척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버지가 손에 봉지를 쥐고 있거나, 품에 상자 꾸러미를 안고 들어오는 날, 그날은 우리 형제에게 봉 잡은 날이었다. 봉지 속에는 일본식 화과자(和菓子)인 센 베이가 가득 들어있는 날도 있었고, 복숭아 통조림과 엿과 설탕에 팥, 우무를 넣어 반죽한 뒤 끓여서 식혀 굳힌 양갱(羊羹), 바나나, 초콜릿이 들어있는 날도 있었다.
생일이나 어린이날처럼 특별한 날에는 종합선물 세트 상자 앞에서 형제 모두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해했었다. 그 시절 종합선물 세트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 속에는 비스킷, 과자, 양갱, 단팥빵, 카스텔라, 밀크캐러멜, 사탕, 풍선껌, 초콜릿, 심지어 미니 장난감도 들어 있었다.
가끔 재래시장이나 세계 과자 백화점 앞을 지날 때 센 베이나 옛날식 과자와 눈이 마주치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생각이 나 그리움의 미소를 짓곤 한다.
초콜릿. 다크, 화이트, 밀크 초콜릿. ⓒAndré Karwath aka Ak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버지의 친구분들
나는 아버지 친구분들도 여럿 기억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시기도 했고, 내가 부모님 손을 잡고 친구분들을 찾아뵌 적도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서로 왕래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바로 친목계 모임이다. 친목계에는 아버지의 친구분 내외(內外) 대여섯 팀이 참석했는데, 두 달에 한 번꼴로 계원 집을 오가면서 우정도 다지고 회포(懷抱)도 푼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집에서 친목계 모임이 있는 날에는 형들은 빠지고 주로 나만 참석했는데, 아마 나까지 떼놓고 가기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랬던 것이라 짐작한다. 덧붙이자면 내가 친목계 모임을 유달리 좋아했고, 모임에 가서도 스스럼없이 잘 놀아 부모님이 기꺼이 나를 데리고 갔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나 초콜릿
내가 모임을 좋아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아버지 친구분들이 나를 보면 과자 사 먹으라며 꼭 용돈을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친목계 모임만 다녀오면 그 용돈으로 당시에는 귀한 가나 초콜릿을 사 혼자서만 몰래 하나씩 빼먹곤 했는데, 어린 나에게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용돈을 다 합하면 한 달 치 가나 초콜릿값을 충당하고도 남았다.
또 하나는 친목계 모임 말미(末尾)에 진행되는 경품 추첨을 구경하는 재미였다. 경품은 계원들이 부은 곗돈에서 일부를 떼 구매한 생활용품이었다. 밥솥, 프라이팬, 냄비, 식기류, 수저 세트, 수건 양말 세트, 선풍기 따위였다. 추첨 방식은 제비 뽑기였다.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 1등부터 차례로 제비를 뽑아 당첨된 경품을 가져갔다. 경품 추첨 시간은 왁자지껄한 흥겨움과 함께 스릴감을 느끼게 해 구경하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숙집으로 찾아온 아버지의 친구분
대학교 때 서울에 살고 있는 아버지 친구 한 분이 하숙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개인 사업을 하던 분인데, 사업지가 바뀌어 몇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아버지께 들었다. 친구 아들을 홀로 찾을 일이 뭐 있을까, 마는 그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개인적인 부탁 때문이었다. 무슨 심각한 속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객지 생활을 하는 친구 아들을 단순 격려 차원에서 한 번 만나 토닥거려 주는 것만으로 아버지의 허전함과 걱정스러운 심정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와 서울 친구분이 그만큼 스스럼없는 사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막상 하숙집 내 방에서 마주 앉은 친구분과 나는 별다른 말을 나눈 기억이 없다. 친구분도 아버지의 간청을 못 이겨 나를 찾아온 탓에 이렇다 할 얘깃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음료수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일 뿐, 친구분도 그저 학업에 매진하라는 덕담을 건네고 일어섰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가 왜 이런 성가신 부탁을 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괜한 발걸음만 한 키다리 아저씨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고마운 아저씨였다. 인심 좋게 생긴 외모에 마음 씀씀이도 넉넉했던 구(具) 씨 아저씨, 감전 사고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친아들처럼 대해주신 뚱보 아저씨, 구수하고 찰진 입담으로 나를 예뻐하신 김 씨 아저씨, 모두 다 그립고 고마운 어른들이다.
이제는 부모님도, 부모님 친구 내외 어른들도 모두 다 돌아가셨다. 내 나이가 벌써 그때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분들의 연세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생각에 새삼 어찌할 수 없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낀다.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 내외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