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시간
"엄마랑 겨울방학에 뉴질랜드 가자."
아이는 내 말에 시큰둥했다.
"정말 가는 거야?"
"그렇다니까. 일정도 정했어."
아이는 그제야 나를 보며 웃었다.
"그래. 가자."
표정은 들떴지만, 큰 호들갑 없이 담담한 척 가자고 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아이가 처음 시큰둥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 년 전, 나는 한 번도 발 디뎌보지 못한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겠다고 혼자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이민의 문이 낮아지면서, 가지고 있는 학위만으로도 어학 점수만 넘기면 나도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일하고도 무모한, 그렇지만 아직은 나름대로 남아 있는 객기라 치부할 수 있는 어떤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그때 요란하게 공부하고 어학 점수는 얻었지만, 뉴질랜드행 비행기표는 얻지 못했다. 현실을 잘 모르고 시작했던 도전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낯선 시간들이 필요해 보였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첫 학기를 무사히 적응하며 잘 보냈다.
다만 유치원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새로움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숲속에 있는 유치원을 다녔다.
내가 그 유치원에 처음 상담을 갔을 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선생님의 말씀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유치원이 장단점이 있고, 아이와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주제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가고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아가던 그 시간만큼은
아이의 성장에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는 선생님의 지도 아래 규율을 배우고 학습을 시작하며 작은 사회생활을 해나갔다.
이 또한 아이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란 걸 안다.
다만, 점점 그 루틴에 익숙해지고, 익숙한 환경 속에서 반복된 방식으로 배워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이에게 낯선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는 어땠을까.
나는 관심사가 자주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33년 인생을 청산하겠다는 마음으로 퇴사한 지 5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어느 하나에 깊이 머무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철없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재테크, 작가, 운동 등 이런저런 관심에 기웃기웃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이렇게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고 재미있다 느꼈던 건 아닌지.’
삶에는 정답이 없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해답은 있다.
아직 그 해답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리고 그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나 역시 스스로에게 낯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낯선 시간을 주고자 떠나기로 했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던,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 나라로.
"그런데, 그곳에서 짧게나마 학교에 다니면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사귀기 힘들 수 있는데, 괜찮아?"
"한국 친구는 없어?"
"음, 반에는 한두 명 있지 않을까?"
아이는 말이 없었다.
"낯설어서 즐거울 수도, 힘들 수도 있어.
그런데 부딪혀보고, 힘든 걸 이겨내 보면 엄청 커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오늘 저녁에 비행기표 결제하려고 남겨놨어."
"해볼게."
아이의 말에 나는 잠시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혹시 나를 위한 선택은 아닐까 싶어 다시 물어보려다 말았다.
"엄마도 해볼게."
그렇게 우리는 둘이 손을 잡고, 뜨거운 겨울을 보내러 낯선 나라로 떠났다.
그렇게 우리의 뜨거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해답은 찾았을까.
아이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을까.
사실 그런 질문들에 선뜻 자랑하듯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곳에서 마주한 감정들, 아이와 함께 나눈 언어들, 그리고 경험들이
삶을 조용히 흔들었다.
그 조각들을 마음속에서 꺼내 보고 싶어졌고,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그 조각들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