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뜨거운 겨울 뉴질랜드_2

2. 책상과 의자가 없는 교실

by 맑은 하늘 흰구름

"이야기 듣고, 밖에서 놀고, 먹고, 그림 그리고 또 먹고 다시 밖에서 놀고, 놀고, 놀고......"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그랬구나."

그저 한마디 던졌는데, 아이는 나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듯 이야기한다.

"엄마가 노는 것도 공부라고 했잖아."

이 한마디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랬지. 많이 배웠네."


아이는 뉴질랜드에서 3주간 공립학교에 다녔다.

유학원을 통해 입학 수속은 진행하였고,

3주간 학교에서 차로 3분 거리, 걸어서 10분 거리의 에어비앤비에서 통학하며 지냈다.


뉴질랜드에 한 달을 보내려 오기 전, 공립학교에서 3주간 스쿨링을 할 수 있는 것이 기뻤다.

외국에서 짧은 기간 동안 어학원을 다니거나,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닌,

현지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다닐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조금만 알아보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


현지 학교를 보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래의 목적인 낯선 시간을 가장 낯설게 채울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한국에서 아직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런 아이에게 그간 배운 영어를 써먹으려 해도 배운 게 없었고,

학습적으로 더 성장하려고 해도 베이스에서 성장시킬 건 없었다.

그래서 나와 영어책만 읽었던 실력으로 영어를 써먹고 오길 바라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아이가 낯선 나라에서 보호자인 나도 없이

낯선 공간과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혹여 그 안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한국에서와는 다른 방법들로 출구를 찾아보기를 바랐고,

설령 잘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보려는 노력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대와 함께 들어선 뉴질랜드 공립학교의 교실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아이가 다닌 학교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뉴질랜드의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또 학년이 너무 어려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 사이 출생한 친구들이 함께하는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그리고 한 반에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고,

세 반이 넓은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반이 공유하고 있는 공간은 문 하나로 놀이터와 이어져 있었다.

한국처럼 반마다 공간이 독립되어 있고, 자기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공간과는 달랐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온 아이는 그런 공간이 교실인 것이 신기한 듯 보였다.


학교 프로그램은 따로 공유받지는 못했기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아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몇 가지는,

대부분 수업 시간엔 선생님께서 책을 읽어주신 다는 것,

하루에 수업하는 과목이 여러 개가 아니라 하루는 미술, 하루는 숫자 놀이, 하루는 따라 쓰기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것,

그리고 30분 수업 시간 이후 20~30분 쉬는 시간이 있다는 것,

바깥 놀이 시간이 매일 있어 그 시간에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논다는 것,

블록 놀이방이 있다는 것,

가지고 간 도시락을 세 번에 나눠서 간식 점심 간식으로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첫 째날 학교를 다녀와서 아이는 말했다.

"엄마 한국인 동생이 반에 있어. 루나야. 좋아. 그 애는 뉴질랜드에 산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반을 못 찾아서 다른 반에서 앉아 있었는데, 그 친구를 따라가서 찾을 수 있었어."

"그래? 한국인 친구도 있고 좋다. 어떤 활동이 가장 재미있었어?"

"바깥 놀이 활동! 마음대로 노는 거야."


둘 째날 하교 후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물로 된 긴 징검다리 형태의 놀이 기구를 건너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 뛰어와서 이야기했다.

"엄마 어제는 26초에 건넜는데, 오늘은 12초 만에 건넜어. 계속해봤더니 두 칸 한 칸... 이 방법으로 해봤더니 되었어! 그리고 엄마 뒤 쪽에 숨은 놀이터 있는데, 같이 가볼래?"


어떤 날들은 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도 했다.

"오늘 내가 루나랑 놀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와서 블록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면 또 무너뜨리고 했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은 어떤 친구가 자꾸 새치기해서 너 자리로 가라고 했어."

"오늘은 루나가 자기만의 시간을 달라고 해서 혼자 놀다가 옆에 친구랑 조금 놀았어."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물었다.

"수업 시간엔 뭐 해?"

"수업?"

아이는 벌써 수업이란 단어가 낯선 듯했다.

"학교에서 바깥놀이 말고 먹는 시간 말고 말이야."

"아~ 선생님이 책 읽어 주시거나 오늘은 나비 그렸어."

"나비를?"

"응. 엄청 자세히 그렸어. 보고 그리는 건데, 더듬이 날개.... 그려줄까?"

"응 그래."


아이를 통해 학교 생활을 듣고 있다 보니
책상과 의자가 없는 교실이 당연하게 다가왔다.
아이는 공간을, 친구들을, 환경을 탐색하면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워가고 있는 듯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 유아 교육법에서 유래된 Reggio Emilia 접근법은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

Reggio Emilia 접근법은 아이들을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자이자 권리를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교실 환경을 '세 번째 교사'로 간주한다.

유연한 공간과 자연광, 다양한 재료 등은 아이들의 창의성과 집중력, 소통능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림1.png


어른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은 더욱 자신의 관심이 가는 쪽으로 눈과 몸을 움직인다.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움직여서 표현할 수 있고, 다가가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은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더 다가가게 할 것이다.

더 다가가다 보면 자신의 흥미를 이끄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며

이를 통해 배우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배워가며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오랜 기간 우리가 아는 모범생들처럼

책상과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각자의 학년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가는 한국의 교육과

비교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정해 놓지 않고,

목표가 하나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각자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미래에서 아이들이 같은 색이 아닌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뿜어내며 살아가길 바란다면,

그에 맞는 환경에서 자신을 뿜어내 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

아이에게 '할 일은 스스로 제때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 '언제'보다 '어떻게'를 물어야겠다 생각한다.


내가 아이의 색깔을 정하지 않고

아이가 자신을 마구마구 뿜어 내면서 살아가기를,

내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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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https://en.wikipedia.org/wiki/Reggio_Emilia_approach?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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