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뜨거운 겨울 뉴질랜드_
3. 산책

3. 산책_남았던 시간

by 맑은 하늘 흰구름

“우리 산책할까?”

새벽 6시 반 거실에서 종이접기 하는 아들을 향해

슬며시 내 속마음을 흘려본다.

”다리 아픈데...... “

아들의 말에 나는 시무룩해진다.

“알았어.... 잠 옷 입고 나가도 되지?”

“점퍼만 걸치면 되지!”

나는 신이 나서 후다닥 모자를 쓴다.

아이 모자도 챙긴다.


뉴질랜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는,

아이와의 아침 산책이다.

하늘은 맑고, 미세 먼지도 없고,

주택가에 차도 많이 안 다니는 이곳,

문 밖으로 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산책로인 이곳에서

아침을 아이와 산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 같았다.


내가 있었던 해밀턴이란 도시의 주택가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그곳에서 하늘이 시야를 절반쯤 채우는 그 풍경이 좋았다.

그리고 그 시야에 아이가 담기는 게 좋았다.


한국에서도 종종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싶을 때

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자주 들여다보던 핸드폰도 내려놓을 수 있고,

정리해야 할 집안일도 보이지 않고,

오늘 안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도 당장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산책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나는 더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디서 차가 나올 까봐 붙잡고 있던 아이의 손도 잠시 놓아줄 수 있었고,

주변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시키던 목소리와

조심하라며 내 찌푸리던 인상도 내려놓았다.

온전히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로 내 감각을 채울 수 있었다.


뉴질랜드는 집마다 담장이 오픈 되어 있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갖가지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키우기도 한다.

어느 하나 같은 집이 없었다.

아이와 이런 집들을 구경하기도 하다 보면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도는데 30분에서 40분이면 충분했다.

또 걷다 보면 아침엔 유독 새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그렇게 평화롭게 새소리를 듣는가 하면,

어느 날은 담장 안의 개가 갑자기 마구 짖어 대

아이와 도망가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산책에서 그 집 앞은 피해 갔다.

아이는 걷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조잘거렸다.

하루는 호수에서 배를 타다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버린 일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 초록색 모자를 숭어가 쓰고 갔을지, 아니면 집으로 삼았을지를 한참 이야기 했다.

산책하는 시간은
그저 지나치던 풍경, 지나치던 소리, 지나치던 말들을
모두 잡아 와
애틋할 정도로 따뜻한 장면으로,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한 소리로,
우리만의 이야기로 되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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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하루하루를 보내며,

담고 싶은 시간들이 많아진다.

사진, 영상으로만이 아닌,

그 순간 그 장면 속에 있었던

나와 아이의 온기까지 모두 담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많아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드러진 시대다.

하지만, 매 순간이 소중해지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안에 남기고 싶은

그래서 꼭 한 번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질 때 온다.


뉴질랜드의 아침,
그 고요한 공간에서
아이와 내가 채운 순간들은
흘러가지 않고 결국 내게 그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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