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뜨거운 겨울 뉴질랜드_ 5. 경쟁

5. 경쟁

by 맑은 하늘 흰구름

"엄마, 나 이거 틀렸어. 왜 틀렸을까. 다 맞을 수 있었는데. OO는 다 맞았어."

아이가 학교에서 본 수학 평가지를 들고 와서 말했다.

"틀려서 속상할 수 있겠네. 하지만 다른 친구보다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야."

아이에게 지나가듯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2학년이 된 아이는 부쩍 학교에서 테스트 보는 날이 많아졌다.

늘어난 테스트 탓인지, 작년에는 잘하는 친구들을 대단하다 칭찬했던 아이도 올해는 그 칭찬하는 일도 줄었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친구를 칭찬해 줄 수 있고
친구의 장점을 배울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기 바랐던 건 무리였을까......?

같은 문제들을 풀고, 점수로 평가받는 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평가 대상에 넣고, 친구를 이겨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과한 듯한 생각까지 들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뉴질랜드에서 어느 날 아이가 거실에서 나비를 그리고 있었다.

"뭐 그리고 있어?"

"나비. 학교에서 배웠어."

"어떻게 배웠어?"

"따라 그렸어. 순서대로 알려줬어."

그렇게 그린 아이의 그림에는 더듬이, 나비의 무늬, 몸통이 나타나 있었다.

"이제 나 나비도 그릴 수 있어."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따라 그리는 그 작은 활동을 통해, 관찰하고, 곤충의 구조를 생각하고, 직접 나타내 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 과학시간이니 곤충에 대해 배울 거예요." "미술 시간이니 나비를 그려보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의 자발적 호기심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작은 활동이었다.

IMG_8221.jpeg 아이가 그린 나비


"엄마 오늘 자유 놀이 시간에 블럭방에 가서 루나랑 같이 엄청 높은 거 만들었어."

"자유 놀이 시간이 있어?"

"응. 매일 있어. 그런데 우리가 만든 거 다른 애가 와서 다 무너뜨렸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하지 말라고 했지. 안 들어서 여러 번 말했어."

"그랬구나.

"그 애가 OO이 자꾸 괴롭혀. 저리 가라고 하고."

"그래?"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루나랑 나랑 놀았어."

루나는 아이가 처음 학교 갔을 때 이것저것 알려 주고 도와 주었던 친구다.

그 친구 덕분에 아이는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도움을 받고 나눌 줄 아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부당한 일에 하지 말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에겐 그 공간에서 작은 사회를 배워갈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는 어느 날 학교에서 Number blocks 영상을 본 이야기를 조잘조잘거렸다.

비가 와서 놀이터에 나가지 못한 날 점심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준 모양이다.

한국에서 보았던 Number blocks를 보니 반가웠나 보다.

그리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Number blocks의 캐릭터를.

즐겁게 그리는 아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즐거운 것을 학교에서 받아들이고, 집에서도 그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어 보여 좋았다.

스스로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아이가 그린 Number blocks


하교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니,

한참을 놀이터에서 클라이밍 구조물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이거 끝까지 올라왔어!!!"

아이가 그 구조물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때 그간 그 구조물을 아이가 무서워서 중간까지만 가고 말았던 것이 떠올랐다.

학교에선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많은 듯했다.

그 시간에 아이는 그 구조물 끝까지 꼭 올라라고 싶었나 보다.

아이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을 찾고, 해보는 경험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 교육이 한국 교육보다 전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곳에선 시간이 있었다.
아이가 자신만의 색깔로 채울 시간이.


그곳 아이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나비 그리기 같은 같은 활동을 하면서도 아이들 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달랐다.

누구는 색의 오묘함에, 누구는 나비의 생김새에, 누구는 그릴 수 있는 자신감에 빠졌다.

그리고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갔다.

그리고 어떨 때 자신이 행복한 지, 무엇에 빠져드는지, 자연스레 자신을 알아갔다.

때론 아이들끼리 부딪치기도 하지만,

과하게 선생님이 개입하지 않아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법도 알아가는 듯했다.



한국에 돌아와 아이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 뭐 하고 놀았어?"

아이가 자신만의 색깔로 친구들과 즐겁게 채우는 그 시간이 나는 소중하다 생각했다.

"오늘은 진짜 재미있는 거 했어. 동대문 놀이했는데, 세 명이 함께 들어오고 막..."

말하면서도 웃긴 지 혼자 키득거리며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나도 즐겁다.

아이가 친구들과 속상했던 이야기를 할 때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도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요즘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무용을 창작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활동들에 대해 아이가 이야기 할 때, 더 귀기울여 주고, 공감해주려 노력한다.

그 시간들이 같은 문제를 누가 더 빨리 잘 풀어내나 시합하듯 채워가는 시간보다

훨씬 가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자신과 다른 친구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비교를 통해 자신을 해석하고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닌,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보고 함께하며 느끼는 감정 안에서 자신을 찾는 삶,

그 삶에서 아이가 건강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