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뜨거운 겨울 뉴질랜드_7. 강박

7. 강박

by 맑은 하늘 흰구름

"엄마, 조금만 더 놀아도 돼?"

친구와 놀러 밖에 나갔던 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저녁 반찬들을 식탁에 준비해 놓았던 나는 순간 힘이 빠졌다.
그러다 문득,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에 정신이 환기되었다.

나는 톤을 높여 말했다.
"그래. 7시 전에는 들어올 수 있지? 재미있게 놀다 와."
"응! 고마워, 엄마."


"외국 친구 좀 사귀었어?"

뉴질랜드의 어느 저녁, 침대에 누워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물었다.
"아니, 그냥 한국 친구랑 놀았어."
아이는 무심코 대답한다.
"아, 그랬구나."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나의 대답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릴지 걱정되어 슬쩍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딴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 아이가 모를 리 없다는 걸.
그리고 후회했다.


"수업 시간에 말 좀 했어?"
"영어로 말했어? 몇 번?"
"네가 먼저 영어로 가서 이야기해 봐."

겨울방학 동안 나와 아이처럼 뉴질랜드 공립학교를 체험하러 온 한국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꽤 많았다.

함께 오신 분들과 주말마다 체험학습도 가고, 놀이터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갔기에 부모님들께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문화에서의 적응이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잘 적응해 다니는 모습을 며칠 보면 또 다른 욕심이 들었다.
잠시 그 짧은 시간에 영어를 할 수 있길 바라는, 말도 안 되는 마음도 품어보았다.

아이는 아주 어릴 때 2년 정도 중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며 영어와 중국어를 조금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별도의 외국어 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아이는 그때 했던 외국어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래서 잠시 습득한 언어로 실력 향상을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기대를 품었다.


한편으로, 다른 부모님들은 아이가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 왔기에 이런 곳에서 그걸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다.
나의 아이처럼 한국에서 영어 학원이나 과외를 하지 않는 또래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설사 교육을 받았더라도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다른 아이들과 속으로 비교를 했던 것 같다.


틀이 있는 교육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 했던 나의 교육관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어느덧,

‘지구 반대편까지 온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차지하고 있었다.


"술래잡기할 사람 손~!"

방과 후 몇몇 한국 친구들이 놀이터에 모였다.
각자 그네, 시소를 타던 아이들 사이로 들려오던 그 목소리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하고, ‘꺄악!’ 소리를 외치며 흩어진다.

아이들 얼굴에 핀 웃음이 저속 재생 장면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한참을 놀다 아이들이 말한다.
"이제 술래 돌아가면서 하자."

아이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또다시 까르르 웃음소리가 퍼진다.


"얘들아! 내 등 뒤에 타!"

주말에 다른 가족과 놀러 간 공원엔 무료 수영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무릎도 안 되는 얕은 수영장 안에서 서로 등에 타고 헤엄치며, 까르르 웃는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는 해맑은 모습에 젖은 옷과 감기 걱정은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오빠가 밀어 줄게!"

외동인 우리 아이는 여동생이 낯설지도 않은지, 높은 집라인에 동생을 태우고 로프를 끌어 밀어준다.
앞에 ‘오빠’를 붙이는 아이가 조금은 민망하지만, 우리는 웃으며 지나간다.


"가위 바위 보 하자."

"이것 봐봐."

그곳에서 만난 한국 친구와 배 안에서 한참 이상한 춤을 추기도 하고 게임도 하던 아이는 고기 잡는 것을 보는 것도 잊은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배에서 내려 식당까지 그들만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때 사진 속 아이들 표정은 먹먹할 정도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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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님들이 외국 학교에 갔으니,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즐거움마저도 영역을 정해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자유롭게 타오르던 촛불에 유리컵을 덮어 꺼뜨린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유리컵은 단단했지만, 다행히 깨지기 쉬웠고,
그것을 깨뜨린 건 아이들의 소리였다.


나는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제야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 아이들의 표정 사이로 보였다.
스쳐가고 있던 아이의 웃음소리도 그제야 또렷이 들렸다.


한국으로 가져와도, 그곳에 두고 와도 좋은 것이 있었다.
‘그곳의 매 순간’이 그랬다.

내가 강박에 갇혀 흘려보낸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 전, 그곳에서 만났던 지인을 한국에서 다시 보았다.
"다시 가고 싶다, 뉴질랜드."
"좋았지. 아이들, 또 언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나 싶어."

우리는 그렇게, 잠시 그곳을 회상했다.


다시 간다면, 그때는 알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강박이 아까운 순간들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을.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뉴질랜드에서 담아 온 아이의 웃음소리를 더해 본다.

이 순간도, 이렇게 아까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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