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소설이 내게 남긴 이야기
왜 하필 '완전한'일까...?
책을 읽는 내내 행복 앞에 붙어 있는 '완전한'이란 단어에 불편했다. 행복 앞에 붙어서 완전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유나가 추구하는 완전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완전함'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그리고 내게는 모자람이나 흠이 없게 모든 걸 갖출 수 없기에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다.
"준비 완전히 끝냈어?"
발표 전 자주 듣는 말...
대학원 때는 3주에 한 번씩 세미나를 했다. 3주 안에 자신이 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교수님과 실험실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 중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은 질문이었다. 아무리 자료를 열심히 만들어도 어떤 질문이 내게 올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그 앞에서 우물쭈물할 내 모습이 상상되어 토할 것 같은 느낌은 꽤 오래 지나서야 익숙해졌던 것 같다.
대학원 때는 1년에 한 번은 해외 학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도 힘들고, 교수님 앞에서 몇 번씩 하는 리허설도 내 영혼을 수십 번 갈아 넣어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들었던 건 '질문'이다. 영어 질문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지도 걱정이고,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나올 때 '쏘리 넥스트 타임~'을 세네 번 반복할까 봐 ('한 번이면 선방이다'라고 그때는 생각했기에) 두려웠다.
머가 그렇게 불안하고, 토할 것 같고, 두려웠는지...
그때 내가 생각하는 '완전히 준비를 끝낸다'는 건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완벽한 발표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완전함에 완벽함을 넣는 순간 내게 두려움이 왔다. 완전함과 완벽함을 동일시했을 때 내게 불행이 왔다..
내가 추구하는 '완벽함이 담긴 완전함'이 발표를 준비하는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좌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함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물론 대학원 생활이 매일 저렇게 지나갔던 건 아니다. 일부의 시간들이고 순간이었지만, 아직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한다.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소설 속 유나는 자신의 완전한 행복에 완벽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완벽한 남편, 완벽한 딸을 얻기 위해 완벽하지 않다고 여긴 전 남편을 살해했다. 그리고 완벽한 가족의 모습에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재혼한 남편의 아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벽하지 않을 때 재혼한 남편마저 살해하고자 했다. 그렇게 그녀는 완벽함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완전함은 완벽함과 조금 다르게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완전한 것은 그 순간이 아니라 일부가 아니라 지속성을 가진다.
유나는 저렇게 완벽한 순간들이 무너지지 않는 것, 완벽한 것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완전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것을 하필 또 자신의 행복에 넣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의 눈빛을 느낀 순간에도, 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낀 그 순간조차 그 완전성을 깨는 것이기에 참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소설 속 살인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였는지를 안다. 나도 그 사건에는 이해라는 단어조차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추구할 '완전함'이라는 아슬아슬한 단어가 가진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대학원생이었던 그때의 내가 발표 전 완전함에 완벽을 담고, 그 완전함에 집착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가 완전한 준비를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 것만 한다면'이란 생각으로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내가 그 완전함을 소설 속 유나처럼 행복에 담고자 했다면, 또는 내 정체성에 담고자 했다면, 그리고 유나처럼 철저하게 그것에 집착했다면... 내가 나를 어떻게 갉아먹었을지 무섭고 두렵다...
내가 그때 누구도 그렇게 하라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완벽하고자한 이유는, 아마도 어딘가에 있는 내 자격지심 또는 결핍을 없애고 싶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유나가 자기 어린 시절의 결핍을 지우고 싶어 후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완벽하게 완전히'란 세상에 갇힌 나를 꺼내 준 말은 그 결핍이 괜찮다가 아니었다. 그저 완벽이 의미 없음을 말해준 이 말이었다.
"저 사람들은 네가 완벽하게 잘하는지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그냥 너의 말을 듣고 싶어서 온 거지."
완전한 준비란 건 내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끝나는 것이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_ '완전한 행복' 중 유나의 말
유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지금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지 않아도 너는 완전해.
네 주위 사람들은 네가 완벽한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사랑하는 거야.
너도 그저 그렇게 사랑한다면...
그게 널 완전히 행복하게 할 거야"
'그녀가 판단하기로 유나는 단순한 엄마가 아니었다. 아이의 영혼을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유일무이한 세계였다.' _ '완전한 행복' 중 재인의 생각
소설 속에서 엄마가 만든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유나의 딸 지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완벽한 엄마를 두지 않아도
넌 완전한 존재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미 완전하니 완벽하려고 하지 말아 줘..."
**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신 이 책의 정유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