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생님이 살아남은 방법
난 사실 꼰대이다.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내 시각으로 요즘 한국 아이들 참 만만치 않다. 수업 태도,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과 유지, 다양한 감정의 적절한 처리, 다양한 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길러지는 폭력성 등..매일매일의 다이나믹을 겪어냈지만 그래도 할 만 했다고 느꼈고 나의 교사로서의 역량도 성장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미국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의 꼰대 관념은 박살이 났다. 내가 그간 만났던 한국의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이자리 저자리에서 떠들고 주변 친구들에게 방해될만큼 부산스레 움직이더라도, 선생님이 눈으로 레이저를 팍 날리면 눈치 보며 슬금슬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귀소본능은 가지고 있다. 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여기 아이들은 '자리'나 '짝꿍' 등의 소속에 대한 관념이 참 흐리다. 처음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굉장히 황당했던 게, '자기 자리'에 '앉는다'는 개념 또한 훈련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책상 밑에 드러눕기나 책상 위에 다리 올리기 정도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소한 자기 자리 '언저리'에는 있는거니까.. 공용테이블 (키드니 테이블; 교사가 3-4명의 스몰 그룹을 지도하기에 적합하도록 강남콩 모양으로 생긴 테이블, 많은 미국의 교실에는 이런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어서 교사가 정해진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 동안 개별화, 소그룹 지도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에 가서 앉기, 교실 앞 카펫에 쿠션이나 인형을 머리에 괴고 눕기, 한켠에 비치된 여벌 의자에 가 있기, 교실 뒤 휴지통, 문 뒤, 크롬북 카트, 책장 앞 등, 어디든 발 닫는 곳에 몸을 붙이고,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가 된다. 한 자리에나 앉아 있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끊임 없이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서성이고, 뭔가 클릭이 되는 아이를 만나면 그 때부터는 유리 돔 안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이 아이들을 순간 모두 장악해서 수업목표에 따른 교수학습을 진행시키는 것 자체가 어머어마한 챌린지였다. 마술사가 되어 보이지 않는 와이어를 확 쳐서 아이들의 정신과 마음을 나에게 쫙 끌어당기고 싶다는 망상이 들 만큼, 아이들이 흩어진 정도는 나의 경험과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미국와서 첫 학년도엔 집에 가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난 한번도 일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의 20년 가까운 교직 기간 동안, 초임시절까지 통틀어,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걸로 애먹은 적도 없다. 지금의 상황은 강아지 20마리 풀어놓고 동시에 집중시키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충격, 절망의 쳇바퀴였다.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래도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상하게 감내했을거다. 나의 얄팍한 자존감이 사정없이 무너져갔다.
2년째에도 이러한 고충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살포시 얹어놓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간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쌓였고,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대처 하는지 보고 배우면서, 첫 해 보다는 조금 나아졌음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학습 목표를 달성시켜야 한다는 내 교사로서의 양심이 여전히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충격과 절망의 쳇바퀴에 희망이라는 희미한 불빛이 살짜쿵 드리워졌다. 아침 커피로 두뇌가 쨍 하게 돌아가는 이 시간, 트미한 희망의 뭉텅이에서 방법의 가닥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분리해본다.
첫째, delivery중심의 whole class instruction을 최소화한다. 어떤 주제로 교수학습을 진행하든 교사 일방의 지식 전달은 10분 이내이다. 한 때 열심히 부르던 김연자 히트곡이 내 교수학습의 제 1원칙이 될 줄이야. '10분 내로' 끝내야 한다! 심지어는 그깟 10분 동안이라도 애들이 집중해서 날 본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 그러기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흥미를 발딱발딱 유발해야 하고,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고 꼭 전달해야 한다. 여기서 키 포인트는 '발문'이다. 우리 한국 교사들은 수년간 매해 공개수업을 통해서 좋은 발문을 갈고 닦는데, 그 능력을 이역만리 미국에서 영어로 써먹는다. 수업 참관하신 교감선생님도 나의 발문을 알아봐 주시고, 놀라워하시고, 몇 번이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음에 참 뿌듯함을 느낀다. 한국 선생님은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합니다, 하하!
둘째, 개별화에 대한 계획을 다각적으로 수립해서 쉴틈없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한다. 주어진 과제를 완료한 아이들은 크롬북의 앱으로 개인진도에 따라 각자 학습을 진행하도록 하고, 이해가 부족한 아이들은 따로 스몰그룹으로 불러내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여 보완해준다. 이걸 20명 한명한명에게 진행하면 교실이 시장판 되는 건 순간. 그래서 학기 초에 스몰그룹을 지정해서 그룹별로 활동할 수 있도록 셋업해 두고, ppt로 화면에 띄워 두어, early finisher가 과제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한다.
셋째, 여러 가지 resource를 준비해 두고 비밀병기처럼 시의적절하게 꺼내서 사용한다. 이건 둘째에서 언급한 '개별화'와는 조금 맥이 다른 이야기인데, 때로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아무때나 break를 허용할 수는 없다. '학습적'인 과제를 제시하되, '학습적이지 않은' 껍데기를 입혀서 아이들을 몰두시킴으로서, 여전히 과제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크롬북을 이용한 학습 게임, 선택 학습지, 컬러링, 그림 그리기, 글쓰기, 책 읽기, 책 만들기 등등 다양하게 준비해 두어야 아이들의 다양한 needs를 그때그때 교육적으로 만족시키면서 주의가 분산되지 않고 교실에 전체적으로 학습분위기가 잡힌다.
넷째, break를 요리조리 끼워 넣는다. 미국 학교는 시종시간이 따로 없다. 전적으로 교사의 자율. 우리나라에서는 쉬는 시간에 애들이 교실내 또는 복도를 맘대로 돌아다니고 화장실도 가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화장실은 줄 서서 함께 가고 쉴 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내외를 맘대로 돌아다니거나 무리 지어 놀게끔 하지는 않기에, 내가 뭔가를 준비하고 주도해야 한다. break를 너무 자주 넣어도, 너무 안 넣어도 아이들이 쉽게 산만해지므로 조심해야 하고, 진부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내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이기에, 나는 요즘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다른 선생님들이 break동안 뭘 하는지를 꾸준히 살펴보고 적용해 본다.
미국 문화를 모르고 미국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고초를 겪고 극복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상당히 버겁다. 한국에서는 내 연배쯤 되면 이미 나름의 학급경영, 교수학습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에, 약간의 변형과 조율 만으로도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초등학교는 다 비슷하려니 하고 자신감 있게 링 위에 올랐다가 신나게 얻어터졌다. 그런데 요즈음 까진 살 밑에서 돋아나는 뽀얀 새 살이 슬쩍 보인다. 토닥토닥.... Dr. Lee,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