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 가는 날

혼돈의 카오스, 그 안의 비밀병기

by 어쩌다 초등교사

한국에서 현장 체험 학습을 한 번 가려면 교사가 정말 챙길 것이 많다. 부장교사가 아니라도 말이다. 일단, 현장체험 학습 장소를 선정해야 하는데, 선결 조건은 그 장소가 학년교육과정을 실현시키기 위한 '현장체험교육'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학년도 시작 전 1년의 계획을 쫙 수립해놓아야 하기에, 이전 학년도 선생님이 후보지를 어느 정도 선정해 놓지만, 해당 학년도 선생님들이 다시 열띤 토론을 거쳐 후보지를 재선정한다. 후보지가 선정되면 부장교사 및 해당업무 담당교사는 10쪽 가까이 그 현장체험학습의 목적, 의의, 비용 등의 행정적인 부분까지 망라한 계획서를 작성하여 기안을 해 올리고, 결재가 나면, 학년 교사가 함께 방과 후 직접 그 장소로 임장을 간다. 아이들의 동선을 체크하고, 기대하는 교육적 효과를 직접 확인하고, 현장 담당자를 만나 그 장소에서 가능한 특별한 체험이 있는지, 아이들이 활동하기에 충분히 안전한지, 이머전시에 잘 대비되어 있는지 등등 모든 점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다른 장소로 재선정을 하고 동일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교육과정의 큰 틀이 확확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재선정을 하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시시각각 변동하는 현장의 여러 사정으로 재선정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장소가 선정되면 이제부터는 행정실과 공조하여 버스 회사 섭외하고, 비용 총액 산정하고, 비용 도움을 받을 학생을 선정하고 등등의 돈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기안 올리고 회의하고 등등의 여러 절차를 걸친다. 이런 과정에서 교사는 그 현장 체험 학습의 전문가가 된다. 여기서의 맹점은, 이 모든 과정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 어느 누구도 현장 체험 학습 준비 과정을 대단하고 중요하게 느끼지 않고 뭘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선생님을 하면서 총 세 번의 현장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항상 피식 웃음이 난다. 이게 뭐야~~


우선, 임장이 없다. 교육과정을 들춰 장소를 선정하지도 않는다. 학년의 한 선생님이 계획을 짜는데, 그 계획을 굳이 공유하지도 않고, 계획이 거창하지도 않다. 기안이라는 제도도 없다. 그냥 여기저기 알아보고 갈만하다 싶으면, 한 선생님이 비용 알아보고 계획 세워서 administrative specialist에게 알려주면, 돈에 관련된 모든 일은 거기서 알아서 한다. 교사는 그냥 애들 끌고 그 장소 가면 끝!


가서도 얼마나 황당한지. 헛웃음이 아직도 실실 난다. 그냥 어디로 가는지만 알지 어떤 동선에 따라 착착 움직이는지가 없다. 타임라인을 나눠주지도 않고, 점심식사 장소, 모이는 장소 등 주요 spot에 대한 고지도 없다. 주변 선생님들께 여쭤봐도 그냥 가면 된다는 식인데, 한국 선생님 가닥이 있는 나는 답답해 죽는다. 종종거리면 괜히 주변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눈치코치 태세로 잽싸게 전환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두둥! 드디어 field trip날이 되었다.


한국서는 현장체험전에는 안전교육이 필수였다. 안전 교육 영상 시청, 퀴즈 대회, 학습지까지. 캬~이 얼마나 수미쌍관의 완벽한 조화인가! 거기에다가 심지어는 그날 탑승할 버스의 안전에 대한 체크리스트에 항목이 수십 가지로 A4용지에 꽉 차고, 운전자의 음주여부까지 테스트하기 위해 인근 경찰서에서 경찰까지 파견하여 체크한다. 근데, 여기서는 아무도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스쿨버스에 안전벨트도 손잡이도 없다. 아이들 이름표도 있는 반도 있고 없는 반도 있고... 한마디로 뭘 해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학년 부장 교사가 반별로 챙기는 것도 딱히 없다. 그냥 다 담임교사 자율이다. 아, school nurse가 반별로 가방 하나씩을 주었다. 반마다 아이들의 medical needs가 다르기에 반별로 들고 가는 이머전시 패킷이 다르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데 자율성을 주는 건 보이지 않는 전기 충격 울타리를 두른 것 같다. 엄청 자유로운 것 같은데, 펜스에 닿는 순간 죽음이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동물원에 도착했는데, 점심식사시간과 장소, 다시 모이는 장소를 거기에서야 공유한다. 이 강아지 같은 놈들이 흩어지기 전 반드시 이 정보를 숙지시켜야 한다! 초긴장 상태로 해당 시간, 장소를 아이들에게 세세히 알려주고, 나도 적어놓는다. 여긴 남녀, 번호, 키 등등 뭔가 체계화, 효율화에 별 신경 쓰지 않는 문화이다 보니 야외에서 공지사항 알릴 땐 목청과 카리스마가 최고의 도구이다. 이럴 땐 덩치 작은 동양아줌마인 게 참으로 원통하다. 다행히 우리 반에 chaperone이 7명이나 왔기에, 친한 애들 그룹엔 얼추 한 명씩의 어른들을 동반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 혼돈의 비밀병기는 바로 chaperon이었다! chaperone이 없는 field trip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난 아마 지금쯤 산산이 부서져 먼지가 되어 날아갔을 수도 있다.


미국은 엄청 큰 나라이다. 이런 헐거운 시스템은 미국이기에 어쩔 수 없고, 수백 년에 걸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잘 빚어져 나름 미국에 어울린다. 인간들이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고, 각자의 공간 안에서 제멋대로 하는 것을 존중하고, 함부로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 몸이 닿기도 전에 수없이 뱉어내는 'excuse me'가 그 증거 중 하나이다. 동시에, 안전장치가 곳곳에 많고, 사람들이 대체로 타인에게 관대하다. 그러기에, 선생님들이 계획을 숨쉴틈 없이 꼼꼼하게 세워놓지 않아도 누구 하나 별 문제 삼지 않는다. chaperone으로 참가하여 선생님의 부족함을 메꿔 줄 뿐이다. 선생님 스스로도 완벽하지 못함을 괴로워하며 자신을 속박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field trip을 다녀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인정과 감사를 받는다.


난 내 글에서 어느 나라가 더 좋고 어느 나라가 더 나쁘고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느 쪽이든 군살은 덜어내고 싶고 근육은 붙이고 싶다. 요즘 나의 헬스장 다니는 목표랑 똑같이 말이다.


우리나라의 군살은 형식주의이다. 요즘은 70, 80년대가 아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안전에 대한 제도도 잘 정비되어 있다. 시설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지자체에서 단체 손님을 못 받도록 허가를 안 내주면 되지, 교사가 굳이 가서 그것까지 체크해야 한다니...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계획 세우는 것도 너무 하다. 어느 장소든지 교육적인 의미는 찾자면 다 있고, 얼마든지 교육과정과 연계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연계할 수 있다. 왜 굳이 문서작업을 시키는지.. 비용도 그러하다. 얼마가 든다라는 것만 알려주면 행정실에서 알아서 하면 안 되나? 부족하면 행정 공무원 더 뽑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난 부장교사도 해 보았지만 정말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었다. 소풍 다녀와서 무거운 몸으로 비용 정산해서 기안까지 올리고 졸면서 집에 갔던 모든 한국의 부장 선생님들께 경외를 표한다.


미국은 근육을 좀 붙였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교사가 현장 체험 당일 스케줄을 모를 수가 있나? 내년부터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든 말든 나는 최소한 밥 먹는 시간, 장소, 모이는 시간이랑 애들 이름표만큼은 미리 챙기련다. 난 주도면밀한 한국의 선생님이니까!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무사무탈하게 field trip 성공! 오늘도 난 따뜻하게 토닥토닥한다. Dr. Lee,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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