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와의 마지막 여정: 존엄한 이별에 대하여
어제 내 고양이 대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장은 집에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기에, 아침 일찍 대니를 품에 안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도 토요일 아침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조용히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도착하자 직원이 나와 조심스럽게 대니를 받아주었고, 화장과 장례식 절차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잠시 대기 후 직원은 우리를 안치실로 안내하고 화장 전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문을 닫아주었다.
안치실은 은은한 조명 아래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대니는 꽃잎이 뿌려진 푹신한 침대에 평온하게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대니를 보자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밀려왔다. 대니에게 12년간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주어 고마왔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왜 반려동물이 떠날때 사람들이 ‘고맙다’와 ‘미안하다’는 말을 자꾸만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 혼자 남아 대니와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라며 자리를 비워주었고, 나는 대니와 단둘이 남았다. 그 순간 대니를 꼭 껴안고 오열했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불러주던 자장가를 불러주고 안치실에서 나왔다. 얼마 후, 대기실에서 대니의 화장 과정을 화면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직원은 관 안에 누워있는 대니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어주었고, 관이 닫힌 후 대니의 관은 연소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직원은 대니의 재가 담긴 유골함을 주면서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그는 Victor Hugo 의 말을 인용하며 내게 말했다.
Tu n'es plus là où tu étais, mais tu es partout là où je suis.
"너는 더 이상 내가 있던 곳에 없지만, 내가 있는 모든 곳에 함께 있어."
장례식은 화장을 포함하여 세 시간정도 걸렸다. 이번만큼은 프랑스의 느릿한 문화가 고맙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는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직원 세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고, 모든 절차도 천천히 차분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내가 대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가 평온하게 이 세상에서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었기에, 그 점에서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침실에 대니의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대니의 유골함, 대니의 발도장, 대니가 떠난 날 대니에게 쓴 편지, 대니의 털과 발톱, 대니의 입냄새가 스며든 손수건, 그리고 대니의 채취가 느껴지는 이불과 침대를 놔두었다. 대니가 그리울 때면 이 냄새로 위안을 얻는다.
대니는 10월 2일에 떠났다. 간암말기로 진단받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몸 전체로 암이 전이되어 더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여 완화치료만으로 버텼다. 주치의는 8월 초중순부터 안락사를 권유했지만 대니는 그때당시 여전히 잘먹고 대소변도 잘 가렸기 때문에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수의사 말로는 대니가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했기에, 더더욱 안락사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다만 흉수가 차서 호흡을 많이 힘들어하여 흉수천자를 매주 받아야 했다. 개구호흡을 하며 힘들어해도 흉수천자를 받고 오면 다시 괜찮아지는 상태가 한달동안 이어졌다.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나중에는 5일마다 흉수천자를 받았어야 했고 흉수천자 이후 다음날이 되어도 숨쉬기 힘들어하며 잠을 못 자는 상태가 되자 수의사는 더 이상 안락사 외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대니가 병원 가는 걸 너무 싫어했기에, 나는 집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기로 결심했고, 마지막 흉수천자 이후 더이상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집에서의 안락사는 예약이 많아 10월 4일이 가장 빠른 날짜였기에 그 날로 예약을 했다.
그러나 10월 2일 아침, 평소보다 불안한 마음에 대니에게 유난히 길게 인사를 하고 출근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급히 집에 돌아와보니 대니는 이미 숨을 멈춘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즉각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을 시작했고 한시간정도 심장을 두드리고 마사지를 해보았지만 대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CCTV를 확인해보니 11시 30분경 대니가 몇 초간 몸을 비틀며 힘겹게 숨을 쉬다가 마지막 큰 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울부짖으며 신을 원망했다. 왜 대니를 혼자 가게 놔두셨냐고. 왜 내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게 하셨냐고.
대니가 떠난 후, 나는 내 침대 옆에 놓인 대니의 침대에 그를 눕히고 3일동안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전에 막연히 상상하던 죽은 존재에 대한 무서운 느낌은 전혀 없었다. 대니는 죽은동물이 아니라 영원히 자고 있는 내 아기일 뿐이었다. 장례식을 앞둔 마지막 밤에는 대니를 끌어안고 잠을 잤다. 평소에는 안겨지는 걸 싫어하던 대니였는데 이제서야 꼭 껴안고 잘 수 있게 됐구나.
수의사 말대로 극심한 통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안락사를 해야 했을까 ? 그것이 대니에게 존엄한 죽음이었을까 ?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 죽음의 과정에서 고통을 미리 차단하는 것만이 존엄한 죽음일까 ? 확실한 것은, 대니의 죽음은 나에게 가장 존엄했다. 대니가 떠난 후 3일 동안 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존중을 표현했고,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사랑만 주고 간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고양이, 내 아기 대니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