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작시] 구름을 밟는 여자

by 제피로스



구름을 밟는 여자


그녀는 자주 하늘을 걷는다

고요한 오후, 골목에 바람이 스며들 때

그림자보다 먼저 떠나는 발끝이 있다


구겨진 커튼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면

그녀는 양말을 벗고 창문을 넘는다

담쟁이 이파리들이 부드럽게 손뼉을 치고

한낮의 소음은 저만치 물러선다


그녀가 밟는 구름은

누군가의 깊은 한숨이거나

편지 끝에 남겨진 말줄임표거나

비 오는 날, 마르지 못한 이불 한 귀퉁이 같다


세상에선 아무도 모르지

그녀가 아침마다 허공을 걸어

잊힌 이름들을 되짚는다는 걸

무심한 하늘조차

그 발자국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걸음이

가장 조용한 언어로,

누군가의 가슴에 흘러든다는 걸


구름 아래

작은 고백처럼 피어나는 꽃

그건, 그녀가 지나간 자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작시] 커피 얼룩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