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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Nov 09. 2022

멀리 가지 않고도 여행하는 법

낯설게 하기 (2014)

웬만한 오지를 다녀와도 더 이상 ‘이국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여행은 흔하디 흔한 것이 되었다. 내 첫 해외여행은 대학교 때 떠난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외국 공항으로는 난생처음 갔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너무 복잡해서 겁이 날 정도였다. 학회 참석 차 나보다 먼저 유럽에 가 있었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마른 체형에 유행이 지난 안경을 낀 동양인은 보이지 않았다. 단숨에 나를 호빗족으로 만들어버린 덩치가 어마어마한 유럽인들만이 부산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망망대해 같은 공항 한복판에서 정지 화면으로 서있던 나는 거의 울음을 쏟을 뻔했다.


우습게도 오랜 전 그날 느꼈던 완벽히 낯선 곳에서의 막막함, 당황스러움이 종종 그립다.  여행이 익숙해지면서 어디를 가도 그 대책 없던 막막함을 느끼지 못한 지 꽤 되었다. 뿐만 아니라 'the genie out of the bottle' 스마트 폰 덕분에 낯선 곳에서의 고군분투는 정말이지 옛 풍경이 돼버렸다. 구글 맵이나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앱으로 모든 게 뚝딱 해결된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현지인들에게 길이나 맛있는 식당 따위를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행이 편해진 딱 그만큼 여행의 낭만도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다. 스마트 폰은 진정 여행의 독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실존전 나’ 보다는 ‘사회적 나' 가 사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내 멋대로’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곳까지 와서 국내 뉴스를 확인하고, SNS에 올라온 음식 사진이나 보고 있다니?! 그럴 땐 애꿎은 스마트 폰을 화장실 변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물리적 이동으로도 익숙한 세계에서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는 것은 "connected wolrd"의 비극이 아닐까?

(하루키는 여행 중에 현지에 몰입하기 위해 사진조차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온 감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몸에 각인한단다. 멋진 광경을 보면 자동적으로 카메라를 찾는 나는 아직 내공이 한참 부족하다.)


더 이상 낯설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스마트해져 버린 여행.  이 위태로운 시대에도 여행은 의미가 있을까?


동대문 일대에는 오후가 되면 중국인 관광객이 어머 어마하게 몰려든다.  왁자지껄 들떠있는 여행자 부대는 야외 카페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서울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벤치에 삼삼오오 걸터앉아 길거리 음식을 와작 와작 먹으며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매일 여행 부대가 바뀌어도 그들이 자아내는 생동감은 거의 비슷하다.  찬찬히 여행자들을 보고 있자면 만사가 귀찮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여행자 사이를 살짝살짝 피해 다니는 서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공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처럼 극과 극일 수 있다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흥분의 공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풍경에 불과하다.  그 풍경이 파리 에펠탑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단순함에 이르는 길은 길고 복잡하다고 했던가?  가까운 일본에서 저 멀리 아르헨티나까지 다녀왔지만 이제야 여행의 묘미를 알 것만 같다.  ‘낯설게 하기’ 시선을 거두지만 않는다면 어디서든 여행의 흥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서울 한 폭 판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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