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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Nov 18. 2022

잃어버린 '요리' 시간을 찾아서

[요리를 욕망하다]를 읽고 

[요리를 욕망하다(원제:Cooked)](마이클 폴란 저), 책 장에서 몇 년째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은 왜 산 거지?’ 그냥 처분하긴 아까우니 목차만 보고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박스에 넣으려 했는데…어라? 서문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위트가 발산된다. 저자는 요리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중요한 활동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맞추고, 음식을 나누며 자제심을 기르면서 문명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집 음식보다는 공장에서 만든 '음식 같은' 제품을 더 많이 먹고 있다. 요리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대신 유명 셰프나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것을 ‘관람’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요리가 일종의 스포츠로 변모한 셈이다. 이 책이 나온 게 2013년인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탈요리 현상’은 한층 심화된 듯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요리를 번거로워하는 편이라 샐러드 재료를 자르고 연어를 굽고 간단한 달걀 요리를 하는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배달음식이나 밀 키트를 즐기는 편도 아니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면 어찌나 짜고 단지 먹는 게 고역스러울 때도 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밀키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달음식이나 밀키트가 담겨오는 여러 개의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도 죄책감이 들게 한다.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플라스틱에 담기면 그 맛을 잃어버린 듯하다. 다행히도 같이 사는 사람이 요리를 즐기고, 가까이 계시는 양가 어머니들이 주기적으로 음식을 해다 주셔서 건강한 집 요리를 먹고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있다. 


요리에는 확실히 우리 정서 어딘가를 원초적으로 건드리는 그 무언가가 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은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와 음식의 냄새, 촉감, 질감으로 되살아난다.  매일 아침밥이 거의 다 되었을 때쯤 요란하게 칙칙 거리던 압력밥솥 소리는 알람을 대신했다. 단내를 내며 모락모락 수증기를 뿜던 갓 지은 흰쌀 밥은 ‘평온함’의 신호였다. 그 시절 한동안 엄마 아빠는 다툼이 잦았다.  다음 날 아침은 매일 들리던 압력밥솥 소리도 멈추었다. 그런 날은 어린 내 마음에도 멍이 들었다.  안온함과 불안함이 뒤섞여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엄마의 요리가 켜켜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시절, 엄마의 요리 

엄마는 밀가루에 달걀을 잔뜩 넣어 팬케이크처럼 만들어주었다. 안은 카스테라처럼 폭신하고 겉은 노릇노릇 약간 바삭했는데 엄마는 그걸 팔 등분해서 우리 사 남매에게 두 조각씩 나눠주었다. 우리는 그걸 ‘계란빵’이라고 불렀다. 사 남매에 시모까지 모시고 살던 집이라 총 일곱 명분의 식사를 만드는 일은 엄마에게 큰 노동이었을 싶다. 아빠는 전형적인 옛날 남자로 손 까딱하나 하지 않으셨던 분이고, 할머니는 중풍으로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셔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셨다. 어린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고는 밥그릇에 밥을 뜨고 식탁에 밥숟가락, 젓가락을 놓는 정도였다. 매끼 요리를 하는 게 힘들었는지 엄마는 가끔씩은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주시곤 했다. 엄마는 커다란 냄비에 라면 8~9개와 스프 5~6개를 넣고 달걀을 풀고 파를 송송 잘라 흩뿌렸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배식을 받는 것처럼 엄마가 공평하게 나눠주는 라면을 후루룩후루룩 잘도 먹었다.  그런가 하면 가끔씩 오리탕 냄새가 온 집을 가득 메웠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의 보양식이었다. 빨간 국물에 기름이 둥둥 떠있고 미끄덩한 오리 고기가 담긴 오리탕을 우리 사 남매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온갖 좋다는 약용 재료를 넣어 주기적으로 오리탕을 만드셨지만 할머니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만두도 빼놓을 수 없다.  내 젊은 엄마는 밀가루를 치대서 기가 막히게 얇은 피를 만들었다. 딱 만두소를 지탱할 만큼의 두께라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았다. 거기에 당면, 온갖 야채, 간 고기를 버무린 만두소를 올려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든다. 모양만 봐도 누구 솜씨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느 한 군데 못난 구석이 없이 가지런한 만두가 엄마가 빚은 것이고, 터진 데는 없지만 들쭉 날쭉한 게 내가 빚은 거고, 만두 옆구리, 앞 구리, 뒷구리까지 터진 건 오빠나 남동생이 만든 만두다. 엄마는 그런 못난이 만두를 다시 가져다가 만두소 터진 부분만 잘 매만져서 하얀 광목천이 깔린 찜기에 하나씩 얹어둔다. 엄마는 다 익었는지 젓가락 하나로 만두 하나를 살짝 찔러보고는 다 됐다 싶으면 작은 파를 송송 잘라 만든 간장과 함께 만두를 식탁에 내놓으셨다. 아직 뜨거운 만두를 호호 불면서 한 입 깨물면 만두소가 폭신하면서도 고슬고슬 살아있었다. 그 소박하고 담백함이 가득했던 맛을 기억하는 한 앞으로도 냉동만두를 집어먹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릴 적 ‘김밥’이란 말은 ‘소풍’의 동의어였다. 소풍날 아침이면 집안 가득 참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사 남매 중 한 사람만 소풍을 가도 그날은 김밥 잔치였다. 소풍 안 가는 형제들 점심 도시락은 물론 나머지 식구들 아침도 모두 김밥이었으니까.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뚝딱 김밥 산을 만들어두셨다. 엄마 김밥의 묘미는 얇은 밥에 있다. 참기름과 약간의 소금이 들어가 있는 밥이 거의 한 알 두께로 맨 아래 깔리고 그 위로 따로따로 볶은 당근, 시금치, 단무지, 달걀, 소시지가 올라간다. 날씬한 김밥 허리를 잡고 엄마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그 위에 통깨를 뿌린다. 밥이 얇아서 엄마 김밥은 한 입에 쏙 들어간다. 엄마는 김밥을 만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금은 어묵이라고 부르는 오뎅국을 만들어주셨다. 멸치, 파, 무로 우려낸 육수에 퉁퉁 부른 오뎅이 만들어낸 희멀건 국물이 예술이었다. 김밥 하나를 집어먹고 오뎅 국물을 후루룩 먹으면 그 궁합이 절묘했다.


이제 우리는 사다 먹고, 배달해 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여성들이 요리 노동에서 해방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절 때마다 기름 냄새가 질릴 정도로 전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송편도 간단하게 사다 먹게 돼서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는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전도 지지고, 누가 누가 예쁘게 만드나 만두와 송편도 빚고, 마술처럼 뚝딱 음식을 만들어내던 엄마 주변을 맴돌며 재잘거리던 그 시절의 감흥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우리 삶의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던 요리까지 산업에 내어주고 얻은 소중한 여가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나. 고작해야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온라인 쇼핑이든 각자의 휴대폰 세상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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