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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Nov 25. 2022

하루키와 당근

[상실의 시대]와의 이별

당분간 책을 사지도 말고 거의 매일 드나들던 도서관도 잠시 쉬기로 했다. ‘뭐라도 쓰자’ 생각은 하면서 못쓰고 있던 이유가 다름이 아닌 너무 많이 읽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책장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얼마 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를 읽고 느낀 바가 컸다.  물건을 처분하거나 정리 정돈하여 가뿐하게 살라고 조언하는 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니멀리즘 관련 책이라면 전에도 여러 권 읽었다.  그 책들을 보고 나서도 자질구레한 물건들이나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찔끔찔끔 처분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끼는 책들까지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가 뭔가 기발한 정리정돈이나 처분 법을 제시해서가 아니었다. 정리 정돈의 궁극적 도달점은 최고의 수납법을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 정돈해야 할 물건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며, 애초에 물건이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도구’였다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을 뿐이다. 물건이 흔해지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낼 목적으로 물건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때문에 늘 새로운 물건을 갈구하고 어느새 물건의 노예로 살고 있다고 저자는 설파한다.  ‘물건의 노예’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몇 시인지 확인만 하면 되면 되는 손목시계에 몇천만 원 만을 쓰는 일을 그 외에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책도 물건인 건 마찬가지다.  내방 책장도 어지러워진 지가 한참이다.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무조건 사고 보니 어느 책이 읽은 책인지, 읽을 책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방법도 있지만 읽으면서 맘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줄을 긋는 습관이 있어서 빌려봤던 책이 맘에 들면 꼭 사고야 만다.  정말 좋았던 책들은 시차를 두고 두 번 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책들은 순전히 장식용으로 모셔 두기도 한다.   ‘나 이런 책 보는 사람이야’라고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10년 가까이 모셔두기만 했다가 최근에서야 완독 했다. (지금껏 읽어본 과학서 중에서 단연 가장 아름답고 문학적인 책이었다!)  한 챕터 이상 읽지도 못한 책들도 많이 꽂혀있다.  진짜 보고 싶은 책들부터 소장하면 그럴싸해 보이는 책들까지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책은 늘 ‘애장품’ 카테고리에 속한지라 처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다른 책도 아니고 애지중지 간직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당근에 내놓았다.  사실 다른 하루키 책들과 함께 처분하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연습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팔겠다고 내놓긴 했지만 내심 팔리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  ‘띵동’ 구매 의사를 밝힌 이웃의 알림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정말 [상실의 시대]와는 이별할 때가 왔구나.  대학 2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 소개로 읽고 난 후 다시 열어 보지 않았던 책이다.


그 쓰라린 젊음, 상실, 사랑 이야기는 한 번으로 족했다.  


20여 년 만에 펼친 책 속의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는 불안하지만 여전히 생동감 있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시절 내 첫사랑은 바래버린 지 오래지만.  책 뒷면에는 지금은 칠십을 넘긴 노 작가가 된 하루키의 젊은 시절 사진도 담겨있다.  (몇 년 전에 나온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표지 사진을 보면 하루키는 참 멋지게도 나이 들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읽을 때마다 깊은 울림을 주기에 당분간은 처분할 생각이 없다.) 청춘 하루키 사진 밑에 한국 독자들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심오하기 그지없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티슈 한 장 뽑아 앞표지와 뒤표지를 번갈아 가며 몇 번씩 정성스럽게 닦고 나서 행여 스크래치 날까 곱게 포장을 한 후 상자에 담았다.


이제야 내 이십 대에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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