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우리가 보낸 순간_김연수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날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로는 형편없는 글이라도 나는 썼다. (중략) 그렇게 해서 지난 8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그 결과, 몇 권의 책이 출판됐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8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소설가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 그건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도 생각한다. 날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매일 연습한 셈이니까. 그 연습의 결과, 나에 대해, 나의 꿈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습관이 사라졌다. 그러자 모든 게 달라졌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그런 건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부주의한 비판들과 스스로 가능성을 봉쇄한 근거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뭔가 선택해야 한다면,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넌 소질이 없어”라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모두 아이들이었다. 늘 밝게 웃으며 호기심에 가득 차 재미있는 일만을 찾아다니며 다른 이들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두려움 없이 원하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소질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매일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재능이란 지치지 않고 날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평생 그런 재능을 발휘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2010년 12월 김연수
표지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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