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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 비행기 안에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by 루이보스J

“무소식이 희소식.”

그 말이 이렇게 가슴 저릿하게 와닿을 줄은 몰랐다.


제주 항공 참사가 일어난 후, 나는 탑승객 명단을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참혹한 사고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이미 수많은 이름이 희생자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중 절반이 내 고향 광주 사람들이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혹시라도 내가 아는 얼굴이 그중에 있다면 어쩌나. 겁이 나서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중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OO 소식 들었어?ㅠㅠ“
메시지 뒤에 붙은 “ㅠㅠ”라는 표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나는 얼른 답장을 보냈다.
“혹시… 비행기?”


“응.”
“나도 몰랐는데, 의사 부부라고 뉴스에도 나왔대.”


“어떻게 이런 일이…”
“아이들은 괜찮은 거지?”

나는 절박하게 물었다.


잠시 후 온 답장은 짧았다.
“... 가족 전부래.”


그 한 줄에 머리가 하얘졌다.

남편과 아이들 둘, 함께 떠난 여행이 그들의 마지막이 되었단다.


그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상하게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늘 교실 복도에서 스치던 얼굴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는 이과, 나는 문과였고, 졸업 후에 나는 서울로 오면서 더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워낙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서로의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들었다.


친구는 워낙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거뜬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고향에 남아 국립대 의대를 선택했다. 졸업 후에는 소아과 의사로, 두 아이의 엄마로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건 10년 전이었다.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교복을 입고 머리를 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머리를 기르려면 땋는 게 전통이었지만 우리가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발 규정이 사라졌다) 몰라보게 성숙한 모습에 서로 반가워했지만, 다시 만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던 나날들 사이에, 이렇게 믿을 수 없는 비보가 끼어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비극을 마주하며, 깊은 허무함에 빠졌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얼마나 무겁고 깊을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삶은 때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설명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답은 단순했다.

아니,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에 사로잡힐 틈이 없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오늘을 살아내는 일, 그것이 남겨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수 밖에.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의 향을 깊이 느끼며,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 한 줄기의 냄새를 기억하며 숨을 고르는 것.


그리고 매일 밤, 그날을 정리하며 한 줄이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


삶은 어쩌면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채영아,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길.

너와 가족이 마주할 새로운 세상은 더 따뜻하기를 바랄게..

표지/본문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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