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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관계를 삼키다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

by 루이보스J

나는 누군가 내가 남긴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론 이제는 가족 이외에 그런 일을 기꺼이 해줄 사람이 없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다.

음식이란 단순한 칼로리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먹는 행위는 때론 관계를 정의하고, 때론 거리를 무너뜨린다.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서로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한다.


먹는 것이 설렘이 된 첫 순간은 고3 겨울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지방 여고생들이 서울로 진학한 선배들과 조인트 동문회를 가졌다. 장소는 흔한 중국집.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던 나는 짬뽕을 절반 이상 남겼다.


“다 먹었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선배가 물었다.


“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짬뽕 그릇을 가져가더니,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내 일부를 받아들여주는 듯한 이 낯선 감각. 내 타액이 묻었을지도 모를 국물까지 마시는 그의 행동이 주는 묘한 친밀감. 그렇게 나는 그 선배를 짝사랑하게 되었고, 꽤 오랫동안 혼자만의 설렘을 품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대학 입학 후, 룸메이트 언니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햄버거를 먹던 날이었다. 룸메이트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빠와 나만 남았다. 나는 양이 꽤 많은 햄버거를 반쯤 남긴 채였다.


“다 먹은 거야?”


“응.”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햄버거를 집어 들었고, 마지막 한 입까지 말끔히 먹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나’라는 존재가 그의 입을 통해 흡수되는 듯한 감각.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키우지 않으려 했지만, 확실히 흔들렸다.


고대 영어에서 ‘eat’이라는 단어는 ‘etan’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consume(소비하다), devour(게걸스럽게 먹다)’의 의미를 포함한다.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내포한 단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남긴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 행위는 단순한 허기 해결이 아니다.

그것은 경계를 허무는 행위이며, 보이지 않는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To share food is to share life.”

먹는다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이며, 심지어 누군가의 남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의 흔적까지도 기꺼이 수용하는 행위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본능적으로 연결되고, 때론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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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다. 배가 고파서, 시간이 돼서, 혹은 습관적으로. 하지만 가끔은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넘어, 관계의 언어가 될 때가 있다. 나눠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들여다보고, 스며드는 일이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 내가 설렜던 건, 단순히 누군가가 내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말로 하지 못했던 감정이, 남겨진 한 입을 통해 전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표지사진:Unsplash

#음식#친밀감#인간관계#함께#먹기#푸드#Eat#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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