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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지 마라"에 대한 변론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는 마음_마종기 시인

by 루이보스J

하루 종일 이어진 통역을 마치고, 말에 지쳐 녹초가 되어 돌아온 어느 날 저녁.

주문해 두었던 시집 한 권이 말없이 책상 위에 놓여,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말들을 쏟아낸 입술과 어깨 위엔 아직 피로가 남아있었지만,
그 시집 한 권의 침묵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의 기쁨이 샘처럼 차올랐다.


지난 4월 중순,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한 통계 논문을 발췌하여 게재했다. 그 결론은 두 개의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5백 권 이상의 장서를 가지고 있는 집의 자녀들은 10여 권의 책 밖에 없는 집의 자녀들보다 지능 지수가 더 높고 사회생활의 적응도 빨라서 자라면 더 좋은 직장을 가진다.


둘째, 책도 책 나름이다. 셰익스피어나 기타 고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특히 자녀의 성공률이 높다. 시집이 5백 권의 장서 중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으면 그 자녀의 성공률은 교양서적을 가지지 못한 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하다. 그런 집의 자녀는 방랑자가 몽상가가 되기 쉽고 현실 적응력과 경쟁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에 부적합하게 되기 쉽다. 이 기사의 제목은 '시를 읽지 마라'였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실용주의만 맹종하는 미국에서 왜 이런 공연한 수고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몇 마디의 변명을 나름대로 붙여보고 싶었다.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서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의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태껏 성심을 다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겨우 한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종기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표지 사진: UnsplashIgor Kasalovic

#시#시집#마종기#문학#기쁨#꿈#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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